1. 정당공천의 허와 실 1991년 풀뿌리 민주주의의 모체인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15년째. 지방자치는 질곡의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희망의 꽃으로 피어났다. 그러나 희망의 꽃이 열매를 맺기도 전에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각종 선거 때마다 낙하산 공천의 비민주성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은 상향식 공천 제도를 도입했다. 최근엔 여야의 대권주자들이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투표자가 자기의 소속 정당을 밝히지 아니하고 투표할 수 있는 예비 선거)를 집중 논의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현 노무현 대통령도 당내의 치열한 경선과정을 통해 대통령직에 올랐다. 막강한 야당 총재로 수년간 재야의 대통령 역할을 했던 이회창 후보가 왜 고배를 마셨는지, 대권주자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정당공천의 위력은 제17대 총선과 5·31지방선거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그렇다면, 상향식 공천은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환경과 절차를 통해 진행되고 있을까. 한나라당 싹쓸이로 2007년 말 대권 구도까지 급변하게 만든 5·31 지방선거. 선거 직전 박근혜 대표에게 가해진 테러. 한나라당에는 절대적 호재로 작용했고, 박 대표의 손은 마이다스로 변해
“경기으뜸이는 경기도가 1년에 한번씩 엄격한 심사를 거쳐 탄생시킵니다. 가업을 계승해 발전시킨 사람이나 투철한 직업의식 및 탁월한 직능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창의적이고 능률적인 사람들이 발굴되고 있습니다.” 2005년까지 모두 138명의 경기으뜸이가 탄생됐다. 도자기를 빚는 장인부터 단조공예 구두제조 술제조 폐백음식 칠 놋쇠 목각공예 인삼경작 원예 등 분야도 다양하다. 그러나 경기으뜸이들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 제품은 수제품으로 명품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유통경로 등이 개발돼 있지 않아 어려움이 많다. 이에 따라 지난해 으뜸이들의 상품을 유통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사)경기으뜸이회(회장 남영희)가 조직돼 회원으로 등록한 업체를 대상으로 전시 판매장을 갖출 계획이며, 올해 2006 경기벤처박람회에 작품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유통 촉진 및 홍보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수원화홍문화제 행사 때 재래시장 축제 코너에 홍보 부스가 마련된 배다리 술도가의 고양 쌀 막걸리와 관련해 남영희 회장은 “사양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막걸리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고양 쌀 막걸리의 공급 지역을 기존 고양시에서 경기도 전역으로
바리톤 김동규를 아시나요. 매력적인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국민 성악가 김동규. 그는 ‘콧수염 바리톤’이라는 애칭이 더 잘 어울리는 한국이 낳은 세계 정상의 바리톤이다. 그는 1991년 베르디 국제 콩쿨에서 1위를 한 뒤 모든 성악인들이 동경하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 오페라극장 오디션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통과했고, 그 후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꿈의 바리톤’으로 불리며 화려한 활약을 펼쳐왔다. 그러나 그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크로스오버 무대에 자주 오르면서 이제는 대중과 아주 친숙한 사이가 됐다. 유명한 성악가에게서 느끼는 거리감 혹은 불편함이 김동규에게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음악으로서 뿐만 아니라 대화의 상대로서도 편하다. 상대를 지극히 편안하게 배려해주는 격의 없는 대화, 편안한 웃음에는 사람을 좋아하는 그의 타고난 성격과 생에 대한 관조, 깊이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만남 김동규를 만나기 위해 논현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 그는 모터싸이클을 타고 등장했다. 점퍼에 가죽 부츠를 신고 머리카락을 날리며 유쾌하게 달려온 그는 “교통체증이 심해서 출퇴근할 때 오토바이를 탄다”고 말한다. 김동규 답다.
가난한 서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애환을 달래주던 구수한 막걸리. 아버지 심부름으로 주전자에 막걸리 받으러 가던 기억이 40대 이상의 연령층에는 아련한 고향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막걸리 가운데서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막걸리가 있다. 세칭‘박정희 막걸리’라고 불리는 ‘고양 쌀 막걸리’. 5대째 이어지는 경기도 고양시 배다리 술도가의 막걸리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마시던 술로 유명하다. 박 대통령이 1966년부터 즐겨 마시기 시작해 1979년 시해 때까지 14년간을 대통령주의 자리를 지켰으니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배다리 술도가는 혼신의 열정을 담았을 것이다. 박대통령주는 그 후에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박 대통령이 마신 막걸리를 마셔 보고 싶다”며 고양막걸리를 주문한 것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공개적으로 전달해 유명세를 탄 것이다. 그 후 2005년 4대 잇는 박관원 (배다리 주 박물관) 관장이 경기으뜸이로 선정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으뜸이 박 관장은 배다리 술도가의 산 증인. 박 관장은 1915년 배다리 술도가 ‘인근상회’를 창업했던 박승언 옹의 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세상은 인간이 중심이고 원래 인간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인간이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중심에 서고 인간이 아름다워야 이 세상이 아름다운울텐데 말입니다. 저희 ‘더 굿 피플’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조금은 더 아름답고 건강함이 넘치는 사회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소중한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마음이 바빠지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영원히 보존해야 할 가치 있는 것들을 서둘러 아름답게 가꾸고 지켜나가지 않으시렵니까. 더 굿 피플은 인생을 참되게 가꾸고 있는 주인공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고자 합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을 보다 값지고 멋진 세상으로 만드는 일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 인간의 가치를 실현할 때 사회가 아름다워지고 살기 좋아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인간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을 보낸 아기들이 가장 먼저 보는 세상! 요즘 들어 같은 산부인과에서 출생한 사람들의 모임이 생길 정도로 산부인과는 예전의 삭막한 병원의 모습이 아닌 삶을 시작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많은 산부인과 중에서도 유독 내 집 같은 편안함과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분당 뿐 아니라 용인에서도 유명한 산부인과가 있다. 바로 2004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분원을 낸 메디파크 산부인과병원이 그 곳이다. 2002년 유니세프가 임명한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모유수유 권장 모범병원)으로 선정 된 메디파크 산부인과병원의 마북분원 개원은 용인지역의 주민들이 분당 본원까지 찾아가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본원에서와 같은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다. 편리한 진료는 물론 환경과 건강 모두를 생각하는 메디파크 산부인과 병원은 현대 엄마들의 최대 고민인 모유수유의 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특히 임신진단부터 출산까지 한 명의 담당의사가 맡는 주치의제도를 통해 환자와 아기가 최대한 편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 엄마와 아기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 “모유수유 하세요,
한국이 그리운 이유를 축구국가대표 이영표는 TV광고에서 서울우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렇고 귀여운 거인 K1 선수 최홍만과 한류 열풍의 주인공 보아 또한 서울우유를 마신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4/1이 매일 서울우유를 마신다. 서울우유는 맛있다. 그리고 믿을 수 있다. 우유를 비롯해 다양한 유제품에 이르기까지 ‘서울우유’가 만들면 먼저 믿음이 가는 이유! 그것은 까다로운 제품생산 공정과 제품개발, 연구에서 비롯된다. 1975년 용인공장을 준공한 이후, 양주·안산공장을 계속해 건립하며 국민 건강을 지켜온 서울우유, 중국 시장 진출을 발판으로 국내 뿐 아니라 세계인의 건강을 위해 발돋움하고 있다. ‘좋은 우유 만들기’ 외길 70여년 서울우유는 1975년 용인공장 준공을 시작으로 양주, 안산공장에 이어 2005년에는 거창공장을 건립, 전국소비자에게 보다 신선하고 깨끗한 우유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우유는 품질의 핵심부분인 첨단 생산설비 시설을 갖춘 이 곳에서 1급A 최상의 원유로 영양이 그대로 살아있는 최고의 우유를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또한 미래에 더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우유팩 재활용, 슬러지 재활용 등 더 푸르
삶의 뿌리를 찾아서 글.배한진 조선일보 기자 인물 탐방 기사를 준비하면서 몇 개의 원칙을 세웠다. 그 첫 번째는 생존 여부 떠나 사람들의 기억에 큰 인상을 남긴 인물. 두 번째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과 접촉이 있었던 인물. 세 번째는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온 인물 등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준을 세워 놓고도 첫 번째 탐방 대상 인물을 선정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첫 번째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조상 대대로 용인 토박이인 필자로서는 자칫 공감대를 얻지 못할 인물을 첫 번째 대상으로 삼았다간 비난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모임이 있을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격의 없는 조사’를 벌여 봤다. 이런 원고를 쓰게 됐는데, 누구를 첫 번째 대상으로 했으면 좋겠느냐는 자문을 구한 것이었다. 질문에 응해주신 분들은 50명 정도. 연령은 30~50대가 주를 이뤘고, 대부분 용인에서 오래 살아온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얻어진 답이 ‘곰보할아버지 故 고성덕(高成德.1923~1999)옹’이었다. 특정 학연이나 지연에 관계 없이 용인 토박이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인물. 개인적으로도 그 분의 이야기를 활자로 남긴
이재용 회장은 창립부터 현재까지 꼭 지키고 있는 세 가지 경영 원칙이 있다. 첫째 고객제일주의다. 고객이 있어야 기업이 있고, 기업이 있어야 임직원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고객의 편의와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투명경영을 신조로 전 임직원이 고객 제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둘째 인재양성의 원칙이다. 기업의 근간은 사람이므로 임직원들의 자질 향상과 업무능력 제고를 위해 설립초기부터 교육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전 직원의 해외 연수를 통한 자질 향상과 단합력을 통해 세람의 임원은 모두 세람에서 성장한 인력으로 충당하며 일당백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셋째 리스크관리 원칙이다. 금융업의 특성상 신용, 금리, 시장, 유동성, 관리, 제도적 변경 등 많은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리스크의 예측과 대처는 이익보다 우선하고 있다. 따라서 지점 개설도 이익보다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넷째 이익실현 원칙이다. 기업이 정당한 기업 활동을 통해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익 실현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고, 고용의 확대와 사회 환원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이
글/홍순석 우리 용인이씨는 신의와 겸손을 가문의 전통으로 계승해 오고 있습니다. 왕건을 도와 고려건국에 공을 세우신 안곡공(이길권)께서는 개국공신의 예우를 사양하였으며, 구성부원군(이중인)께서는 고려말엽 두문동 72현 중에 한 분이십니다. 이후 여러 대의 선조들께서 충직을 내세워 조선초기에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조선조의 청백리공(이백지)은 청렴과 충직을 실천하신 선비의 귀감이십니다. 이러한 정신은 “ 우리 용인이씨 종인(宗人)은 효도와 우애를 행실의 근본으로 삼고, 충직과 부덕으로 덕행을 높이고, 청렴과 정직으로 지조를 갖추자”는 종훈(宗訓)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 중견 우량 저축은행으로 성장 저축은행이 몰려오고 있다. 저축은행은 최근 수년간 다진 수익성을 바탕으로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 시장의 선점을 위해 지점 및 출장소 신설 등 물밑 경쟁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영업점 신설은 금융감독원의 승인 사항으로 재무건전성과 경영성과를 인정받아야 가능하다. 따라서 영업점이 늘어나는 것은 저축은행업계의 경영이 개선됐음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강남 등 특정지역에 몰리던 지점 설립이 금융서비스 소외지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이천 상업중심지에 본점을 둔 세람저축은행은 저축은행의 전성기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세람은 1984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20년 넘게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건실한 영업구조를 바탕으로 11월 용인에 첫 지점을 신설했다. 10년 내에 영업점 3개를 신설할 계획이지만 이르면 내년부터 수원점을 비롯 해마다 1개씩 영업점을 늘려나간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지난 결산(2006년 6월말)에서 당기순이익 63억원(세후이익)을 달성, 설립 이래 유지해온 지속적 성장을 과시하고 있으며 2006년 6월말 현재 총자산 2570억원, 수신고 2250억원, 여신 2140억원, 자기자본 225억원
글.홍순석(강남대교수, 용인향토문화연구원회장) 한 지역의 문화는 지형적 여건과 그 지역에 거주하는 인물군(人物群)에 의해 형성된다. 어느 한 지역에 누군가가 터를 잡아 정착하면서 토지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후손이 증가하고,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동족촌(同族村)이 형성된다. 그리고 가문의 세력이 확대됨에 따라 인근지역으로의 확산과 분화가 이루어진다. 용인지역은 비교적 다양한 성씨가 중소규모의 동족촌을 형성하면서 나름대로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용인의 명가를 통해 용인지역의 문화를 조명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용인지역의 토성사족(土姓士族)으로 명맥을 계승해온 가문은 용인이씨(龍仁李氏)뿐이다. 추계추씨(秋溪秋氏)도 용인에 본관을 둔 성씨이지만 실재하지 않는다. 용인이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면서 중앙으로 진출하였고, 이를 토대로 용인지역에서 명문거족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용인이씨의 시조 이길권(李吉卷)에 대해서 정사(正史)에 전하는 기록은 없다. 용인이씨 세보(世譜)에 전할 뿐이다. 세보에 의하면 그는 신라 효공왕 8년(904)에 용인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었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