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요즘은 낮잠을 잘 일이 거의 없다. 그래도 가끔 낮잠을 자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주말 오후 3~4시쯤 빛이 길게 집에 들어오는 때엔 나른해지면서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신나게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한숨 자면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를 깨웠다. 밖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들을 들으며 일어났었다. 낮에 꾸는 꿈은 밤의 꿈보다 더 허무맹랑하고 달달하다. 그런 꿈을 꾼지가 언제인지! 다음 주말에는 오랜만에 낮잠을 자야겠다.
용인신문 | 어떤 일을해도 힘을 빼는 것이 최종 숙제가 아닐까. 잘해내고 싶은 일 앞에서 긴장되고 힘도 잔뜩 들어간 내 모습을 본다. 힘은 뺄수록 좋다. 대충한다는 말이 아니다. 의외로 힘빼는 게 더 어렵다. 수영을 오랜만에 하러 가면 온몸에 힘을 준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앞으로 밀어내는데 쓰여야 할 에너지가 낭비되기 때문이다. 두어바퀴 돌고나서 몸이 지치면 그때야 비로소 꼭 필요한 때에만 힘을 주게 된다. 행동 사이사이 불필요한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힘을 줄때와 놓을때를 알고 흐름을 만들어 가야한다. 어깨에 잔뜩 들어간 긴장을 몸을 털어 떨어낸다. 찰랑찰랑 물이 흔들린다.
용인신문 | 친구가 자꾸 죽는다. 그만 잃고 싶다. 지금껏 몇몇 장례식장에는 가지 못했고 갈까말까 저울질하기도 했다. 그리곤 곧 후회했다. 되돌릴 수는 없었다. 후회보단 방문이 낫다. 그리고 방문보다 중요한건 기억이다. 처음엔 죽은 이를 위해 방문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장례식장은 산 자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이를 보낸 친구가 걱정되어서 방문하고, 소중한 친구를 잃은 내가 걱정되어서 방문하는거라고. 첫 이별엔 얼떨떨했고 각자 아파했다. 두번째 이별엔 더 많이 아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번째 이별엔 찾아가지 않았고 후회했다. 네번째 이별에는 찾아가 울었다. 이번엔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 만나면, 죽은 친구에 대한 기억을 나눌것이다.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하며 살려고 한다.
용인신문 | 새로운걸 배우면 어서 잘하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지고는 한다. 급해진 마음을 느리게 바꾸는데에 힘을 쓴다. 하다보면 언젠가 잘하게 되겠지. 시간을 꼼꼼히 들여야지. 하나를 알았으니 이제 연습을 오래오래 해야지. 그러다보면 어느새 익숙하게 해내는 날이 올거라고. 마음 급하게 하다보면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 실망해서 금방 그만두고 만다. 이쯤 했으면,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포기한다. 자주 그래왔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 처음 해봐서 깨닫는 순간들을 즐긴다. 시간을 들여서 반복하면 어느순간 다음으로 가있겠지.
용인신문 | 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얼마나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고작 옷 몇 벌과 수저 젓가락이면 어디서든 살 수 있는데. 내가 가진 것은 왜 이리 많고, 여전히 많이 가지고 싶어 하는지. 짐을 싸보면 신기하게도 일주일 치 짐과 한 달 치 짐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 크기 이상으로 커지지 않는다. 배낭의 크기가 욕심의 크기라는 말이 있다. 매번 꼭 필요한 것만 챙겨가야지! 다짐을 하고 짐을 싸지만 직접 메고 걸으면 그 무게에 허덕인다. 욕심을 부려 챙긴 작은 스피커와 예쁜 원피스는 한두 번 겨우 꺼낸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필요한 것 사이의 간극을 느끼고 돌아온다. 그렇게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질 때가 오면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용인신문 | 마음이 끌리는 장소들이 있다. 분위기가, 조명이, 음악이, 커피가, 음식이 좋아서 일 수도 있고 그 모든 것이 좋아서 일 수도 있다. 사람에게 좋아하는 장소를 소개시켜 준 적이 있다. 장소와 사람을 매치시키는 것은 취향의 문제라 마음 속으로 몇번이나 이어보게 된다. "잘 맞을거야" 라고 생각 될 때, 작은 보물을 꺼내놓듯 이야기 한다. "나랑 여기 가자. 내가 발견한 곳이야." 친구들 동네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같이 걸어다니면 모르는 동네여도 내 동네같은 마음이 들거든. 내가 애정하는 친구가 이런 동네에 사는구나. 여기서 야채를 사는구나, 여기서 주로 책을 읽는구나, 놀고, 전철을 타고, 산책하는구나. 가늠할 수 없는 친구의 일상을 상상하면서.
용인신문 | <자화상> 남을 그리는 것보다 나를 그리는 게 더 쉽다. 닮지 않아도 나는 나니까. 생을 살면서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는 나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잘 알 수록 잘 지낼 수 있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힘들어하는지, 어떤 쉼의 방식이 맞는지. 하나하나 찾아나가다 보면 더 능숙하게 나를 다룰 수 있어진다. 하고싶은 걸 다 하다가 몇번의 크고작은 번아웃을 겪고 나서 알았다. 왜 긴장하고 있지? 왜 불편하지? 와 같은 문제들은 주로 내 마음가짐을 바꾸면 빠르게 해결된다. 바꿀 수 있는건 바꾸고, 해결해야할 건 해결하고. 안되는건 무조건 배웠다고 친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을 깨닫고는 자신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용인신문 | 내가 참 좋아하는 가수가 있다. 그가 노래할때는 당찼다가, 신났다가 차분하다가 반짝반짝 빛난다. 잘 웃고 그만큼 잘 운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영상은 여행지에서 기타 하나 달랑 가지고 마이크도 없이 찍은듯한 영상이다. 담담히 이야기 하듯 노래를 부른다. 노래가 끝나갈 무렵에는 갑작스레 비가 내린다. 그것까지 자연스럽게 담은 영상. “뿌리를 두지 않고 걸었지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찾아서 단서는 부족했지만 시간을 친구삼아” 몇번이나 불렀을 자신의 노래를 부를때 더 단단해지는 까르. 노래만들기는 ‘내가 생각한 나의 세계로 다른 사람을 초대하는 과정’이라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이야기의 미래까지 듣고 싶다. @까르
용인신문 | 핸드폰만 들면 시간이 사라진다. 쇼츠(릴스)를 주의해야 한다. 일을 하고 온 날이면 이상한 보상 심리 때문에 쇼츠의 늪에 빠졌다가 늦게 잠든다. 새로운 자극을 자꾸만 나에게 던져줘서 그런 것 같다. 손가락을 밑으로 쓸어내리기만 해도 새롭고 짧은 영상들이 나타난다. 10초 안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가차 없이 다음 쇼츠를 찾으러 내려간다. 관심있는 주제가 아닌 쇼츠들도 금방 안녕. 정신 차리고 나면 몇 시간이 흘러있다. 기분은 찝찝하고 억울하다. 소중한 내 시간 어디 갔어. 쇼츠가 나의 시간을 몇 번 훔쳐 가고 나서는 화들짝 나오는 것을 택했다. 탐색 탭은 클릭하면 안 돼! 다음으로 넘기기 전에 나와…!!! 아니면 30초씩, 1분씩 야금야금 나의 시간을 뺏기고 만다.
용인신문 | 엄청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비슷한 마음인 친구들을 수집했다. 각자 큰 캔버스를 들고 일단 모였다. 이만한 크기에 그려본 적 없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첫 캔버스 그림을 같이 시작하고 끝내보는 경험을 하고 싶었어. 모두 모이니 저녁 9시! 그렸다.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 시간 반이 후딱! 두런두런한 말소리가 사라지고 조용해지면서 각자의 그림에 집중하는 시간이 좋았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짜이도 끓여 먹고, 과자도 먹고, 낄낄거리며 바람도 쐤다. 그리다 막힐 때는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날에도 계속. 점심 먹고 또 만나자며 헤어졌다. 그건 그렇고 무서웠는데 시작하니 또 그려지네. 역시 시작이 반이다.
용인신문 | 넓은 하늘을 좋아한다. 하늘이 넓으면 해질 때 그 만큼 더 많은 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분홍색과 보라색 하늘색 그러다가 빨개졌다가 어느순간 짙은 남색이 된다. 도시에 살기 때문에 어디든 탁트인 곳을 가면 하늘이 넓다며 좋아하곤 했다. 그런데 몽골의 하늘은 이제껏 경험한적 없는 크기였다. 앞뒤 양옆 모두 지평선이니. 거리 감각도 상당히 다르다. 저 앞에 보이는게 3km 거리에 있는 게르라고? 하늘이 너무 넓으니 오히려 하늘같지 않다. 내가 이제껏 경험한 하늘은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한쪽으로 트여있는 하늘이 전부였으니까. 여전히 넓은 하늘을 좋아한다. 그 안에서 내가 작아지는 걸 또 느끼고 싶다.
용인신문 | 디깅은 채굴, 발굴 등을 뜻하는 단어인데 어떤 것을 집중해서 파고드는 것을 의미한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꼼꼼히 파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는 이게 왜 좋을까? 어느 지점이 마음에 들고 어느 지점은 아쉬울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이 사람의 태도일까? 쓰는 색일까? 주제일까. 깊이 파 내려가다 보면 중심 단어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내가 정의한 나만의 단어들이 생기면 쉬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내 안에서 부자의 정의는 무엇일까. 행복이란? ‘잘 산다’라는 건? 논문을 쓸 때도 알아보려는 것에 대해 정의하고 시작하듯이. 단순한 단어로는 각자의 해석이 너무나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정의가 쌓이면 정확지도 않은 남들의 기준에 대한 입장이 생긴다. 끊임없이 뒤처지고 있는 기분에 대한 유일한 돌파구는 나만의 단어장을 만들어 나가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