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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내 죄는 무엇일까ㅣ김사이

 

내 죄는 무엇일까

김사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낳고 젖을 주고 흙을 다지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따닥따닥 붙은 콜센터에서 상냥하게 친절하게

보이지 않아도 웃고 보이지 않아도 참아서

나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직업소개소를 찾으니

학력 미달 경력 없고 나이 많고 애도 있어

손가락 하나로 끌려나왔다 끌려나가도 그 자리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아이 손을 잡고 광장에 나가지 못한다

네가 죽어도 일을 해야 해서

누가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해서

기약 없는 먼 훗날을 끌어당겨서라도

지금 살아야 해서 촛불을 들 수 없는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쪼들려서, 악착같이, 외로움에, 지책감으로 찌든

수척한 감정들이 들러붙어 빠져나가지 못하는

나는 파란색일까 까만색일까 붉은색일까

 

내가 여자를 입었는지 여자가 나를 입었는지

나를 찾아 출구를 더듬거리며 오늘을 걷는다만

여자의 시간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

 

김사이는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시 공부를 했다. 그의 시가 삶과 밀착되어 있는 것은 그의 젊은 날의 가난과 착취와 분노와 절망과 실의를 견디어 낸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각 연에 배치된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문장은 스스로의 노역을 드러내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그녀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워킹맘이다. 직업소개소에서는 학력 미달이고 나이도 많고 애가 있다고 찬밥이다. 촛불집회도 지금 살아야 해서 나가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출구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고 노래한다. 그녀에게 무슨 죄가 있어서 살아가는 일이 이처럼 고달픈지 모를 일이다. 김윤배/시인

<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