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벚나무 실업률
손택수
해마다 봄이면 벚나무들이
이 땅의 실업률을 잠시
낮추어줍니다
꽃에도 생계형으로 피는
꽃이 있어서
배곯는 소리를 잊지 못해 피어나는
꽃들이 있어서
겨우내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벚나무 아래 노점을 차렸습니다
솜사탕 번데기 뻥튀기
벼라별 것들을 트럭에 다 옮겨싣고
여의도광장까지 하얗게 치밀어 오르는 꽃들,
보다 보다 못해 벚나무들이 나선 것입니다
벚나무들이 전국 체인망을 가동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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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사람들의 이야기. 특유의 정서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서정시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손택수 시인. 전통을 견지함과 동시에 도시적 삶의 애환을 그리며 시적 갱신을 도모하고 있지요. 오늘의 시 <벚나무 실업률>에서도 삶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감각과 관찰력으로 생의 뒷면을 차분히 응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꽃에도 생계형으로 피는”, “배곯는 소리를 잊지 못해 피어나는 꽃들이” 있을까요. 이 꽃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벚꽃만은 아닌 것 같지요. 시적 풍경을 들여다보면 이 꽃은 바로 “겨우내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벚꽃을 향해 달려온 노점의 상인들. 그들의 고달픔을 “보다 보다 못해” 그 들과 함께 피려고 “전국 체인망을 가동시킨” 벚나무들이지요. 시와 경제, 경제학자는 수학자이자, 역사가이자, 정치가이며, 동시에 철학자여야 한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 봄날 오후.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