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상징이었던 태극기가 제98주년 3.1절에는 자취를 감추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 탄핵정국과 관련, 보수단체의 탄핵반대 상징으로 대표되는 ‘태극기 집회’ 영향 등으로 3.1절 풍경도 빛을 바랜 모습이다.
지난 1일 기흥구 동백동의 한 아파트단지 모습. 주민들에 따르면 그동안 3.1절을 비롯한 국경일에는 아파트 베란다외벽에 걸린 태극기 모습을 다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독 올해 3.1절에는 국기를 게양하는 가구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국기게양 안내방송도 사라졌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매년 국경일마다 태극기 게양 안내방송을 했지만, 이번에는 사회 분위기 상 안내방송을 하는 것이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기흥구 지역 내 또 다른 아파트도 비슷한 모습이다. 관리사무소 직원에 따르면 국기를 게양한 가구는 평소 국경일의 1/3도 안 된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해 말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에 맞서 보수단체 등에서 태극기를 들고 탄핵반대집회를 이어가면서,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가 국민 갈등의 상징으로 의미가 전락된 셈이다.
주민 한 아무개(37, 여)씨는 “태극기를 게양하는 행위가 정권을 지지하는 것처럼 비칠까 우려된다”며 “국경일에는 국기를 게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이마저도 고민하게 된 상황이 안타깝다”고 답했다. 이어 “어린이들에게 태극기의 이미지가 잘못 인식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3.1절 태극기 게양을 꺼린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모바일 설문조사 플랫폼 두잇서베이가 지난 달 27일부터 28일까지 인크루트 회원과 두잇서베이 패널 2702명을 대상으로 한 ‘태극기 게양’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2%는 ‘없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국기게양을 하지 않겟다는 이유로 ‘태극기가 특정 집단만의 상징물인 것처럼 느껴져서’와 ‘태극기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이미지가 손상됐다는 느낌이 받아서’라고 답했다.
용인시의회 홍종락 의원은 자신의 SNS에 이 같은 현상을 지적하며 “모두 탄핵기각이다 인용이다 애국자처럼 말하지만, 이들 각자의 주장은 혹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것은 아니냐”고 개탄하기도 했다.
시민 김용택(64·기흥구)씨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의 존엄성이 갈수록 땅에 떨어지고 있는 현실이 3.1절을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며 “태극기 게양에 대해서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애국선열들의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