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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04ㅣ토란잎ㅣ송찬호

 

토란잎

 

송찬호

 

 

나는, 또르르르……물방울이 굴러가 모이는 토란잎 한가운데, 물방울 마을에 산다 마을 뒤로는 달팽이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작은 언덕길이 있고 마을 동남쪽 해뜨는 곳 토란잎 끝에 청개구리 청소년수련원의 번지점프 도약대가 있다

토란잎은 비바람에 뒤집혀진 우산을 닮았다 그래도 토란잎 대궁 아래 서면 비가림 정도는 충분하다 ()

 

지난 여름 소나기가 토란잎을 두드려 드럼을 연주하는 가설무대가 선 적 있다 한 달간 소나기가 계속되었고 그 다음 한 달은 폭염이 세상을 지배했다 ()

그리고 지난 여름, 토란잎을 둘러싼 탱자나무 울타리에 커다란 해일이 일었다 그러나 어떠한 사소한 뉴스도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를 뚫고 넘어오지 못했다 다만, 아무도 다치지 않은 채 오직 탱자나무 가시만 홀로 아팠다 그러고 훌쩍, 여름은 지나갔다

언제나, 물방울들은 토란잎 한가운데 모여 합창을 한다 또르르르 또르르르 쉬임없는 물방울들의 합창 또르르르 또르르르 힘겨운 물방울들의 노젓기 토란잎, 이 배가 가 닿는 세상의 끝은 어디인가 나는 게으르게 언덕에 누워 아득히 하늘을 지나는 비행기를 본다 어디 저기에서 쓸만한 냉장고 하나 안 떨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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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여름입니다. 시인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어느새 물방울 마을로 들어섭니다. 토란잎은 우산이고, 풍경이며 기억이기도 하지요. 시원한 소나기의 연주가 들려오는 가설무대. 멀리서 가까이서 도착한 소식들이 탱자나무 울타리 앞에서 되돌아가는 그곳. 그래도 훌쩍 시간은 가고 여름은 지나가는 중입니다. 여름날 소나기가 연주자라면, 물방울들은 합창부. 화음에 귀기울여보아요. 이때의 토란잎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배 한 척이 되겠지요. 우리의 눈부신 상상이 저기 물결 너머 일렁입니다. 약속처럼 상상이 머무는 곳은 언제나 하늘 끝. 생각난 듯, 시 속의 가 비행기를 바라보네요. 의외롭게도 그에게 간절한 것은 비행기보다 냉장고. 무언가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모든 이여, ‘물방울 마을의 하늘을 바라보자. 하늘이 들려주는 문장들, 당신의 목소리만큼 아득한.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