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말리다
박승민
마을 영감님이 한 짐 가득 생을 지고 팔에서 막 빠져나온 뼈 같은 지팡이를 짚고 비탈을 내려가신다. 지팡이가 배의 이물처럼 하늘 위로 솟았다가 다시 땅으로 꺼지기를 반복하는 저 단선의 봉분. 짐만 몇 번씩 길 밖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길 안으로 돌아와서는 간신히 몸이 된다. 짐이 몸으로 발효하는 사이가 칠순이다. “말리다”에서 “말리다” 역(驛)까지 가는데 수없이 내다 버린 필생의 가필(加筆)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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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는 한 생의 역사가 있지요. 시인이 그려낸 풍경에도 그러한 역사가 고스란히 자리합니다. 시 속의 ‘말리다’는 ‘물이나 물기가 다 날아가 없어지게 하다’와 ‘하지 못하도록 막다’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지요. 시인은 이를 동시적으로 활용해 슬픔에 응전하고 있습니다. 젖은 슬픔을 ‘말리면서’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서려’ 하는 것이겠지요. 평론가 고봉준은 시인의 첫 시집 『지붕의 등뼈』 해설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깁니다. “‘슬픔’이 박승민 시를 느리게 관통하고 있다. 슬픔의 정서와 슬픔의 언어가, 고단한 삶의 슬픔과 상실의 비애가 그의 시를 휘감고 있다.”고 말이지요. 시인의 신간 시집 『슬픔을 말리다』를 펼치면 시인의 말이 들려옵니다. 그는 스스로 묻고 있지요. “또 시가 올까? /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生이라는 허공의 그늘에 걸터앉아/조는 듯 귀를 열어놓고/결핍과 자긍 사이에서/다시 막연해지는 일”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 일에 동참하는 일, 일상이 모여 일생이 되는 그 시간을 당신과 함께.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