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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97ㅣ달리기ㅣ 박희수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7


달리기

박희수


어서 오세요, 이리 오세요, 뛰어오세요
깔깔거리는 꽃의 덩굴들이
이리저리 뒤얽혀 있는
흔들리는 들판으로 달려오세요

무서워 마세요, 움츠러들지 마세요
눈꺼풀로 눈을 감싸듯
숨 가쁜 호흡에 안겨 달려가세요

당신의 땀은 꽃씨들처럼
사방으로 사방은 당신의 땅처럼
꽃씨들로 꽃씨들은 당신처럼
숨 가쁘게 숨은 당신이 타고 가는
자동차, 자동차는 당신이 내쉬는
숨 빛의 그림자와 빛의 실선
서로를 따라잡으려
부단히 뛰어가는 두 쌍둥이
한 호흡

달려가세요
달려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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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주체는 우리를 향해 “어서 오세요, 이리 오세요, 뛰어오세요” 말하고 있습니다. 외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까요. 중요한 지점은 장소, “흔들리는 들판”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지요. 어쩌면 우리는 그곳으로의 도착이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약속처럼 들려오는 “무서워 마세요, 움츠러들지 마세요”라는 목소리. 방법은 전무, 그저 “숨 가쁜 호흡에 안겨 달려가”는 수밖에 다른 동력은 없겠지요. 시인의 첫 시집『물고기들의 기적』과 함께 읽다 밑줄 그었던 문장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한 산문에서 시인은 “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장르”인만큼 “언어를 뛰어넘는 언어를 발명해야 된다”(《시작》 2015년 봄호)고 밝힌 바 있지요. 불가능한 것을 이뤄내는 것, 이처럼 시와 기적은 너무 멀리, 가까이 있습니다. 저만치 꽃씨와 숨 빛과 빛의 실선, 귀가 아득해질 만큼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봅니다. 그 모든 것이 ‘당신’으로부터 비롯되는 놀라운 광경을.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