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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81 ㅣ뜨거운 곡선ㅣ박성준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1



뜨거운 곡선



박성준





기념하고 싶은 날을 만듭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꿈이

꿈을 꿉니다 나는 내 숨소리에서 네가 가장 두렵습니다



남자가 안개처럼 눈을 감으면 만나지 못한 방들은 햇빛이 됩니다

이때 여자는 눈을 감고 겨우, 냄새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새들이 제 그림자를 쫓아가 울면 맥박은 조금 더 분명해졌을까요

어떻게 한 번쯤 죄인이 되지 않고서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는지



먼 곳에서 물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말이든 해달라는 얼굴로

늘상 고함을 쳐도 좀체 구름 떼는 짐승 바깥으로 돋지 않고



용서나 허락이 필요한 아침입니다

창문들이 어디론가 메스껍습니다



손톱처럼 웃던 여자는 하품을 하다가 눈물을 흘립니다

종이에는 의자가 숨어 있고 물속에는 죄다 수술 자국뿐입니다



벌써부터 도착해 있는 자목련은 남자의 이마를 닮았습니다

신작로 위에 분분하던 잿빛들은 놀랍게도 무릎이 아닙니다



대체 이게 다라면, 남자는 계단을 내려가고 여자는 계단을 붙잡아 지웁니다

우리는 평평하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하품을 하면 눈물이 나는 이유는

꿈에서나 슬퍼할 일을 먼저 예감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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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질문. 불모성에 대한 시인의 탐색이 깊어져가고 있습니다. 문득 ‘거절당한 나’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일, 이처럼 그의 시적 실험은 ‘나’에게서 배제된 채 ‘나’를 구성하고 있는 그 무엇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있지요. 언제나 그렇듯 ‘내가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 때문’이라는 깨달음은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박성준 시인은 제 16회 박인환 문학상 수상소감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기고 있습니다. “아침이 두렵고, 해야 할 일들은 어쨌든 해야 할 일들일 뿐,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공포 때문에 나는 나에게 할애된 시간조차 권태로웠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전부를 쓴 나의 시간에서 정작 내가 없었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오늘의 결론. ‘나의 시간’에서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앞서 ‘나는 존재하는가’에 대해 질문해야 될지도 모른다. 가장 만나기 어려운 존재, ‘나’의 ‘나’에게.





이은규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