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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76 l 반송 l 주영헌

용인신문-시로 쓰는 편지 76

반송

주영헌


창밖 전화선에 가만히 손을 올려 실을 뜨다
찌릿한 느낌에 손가락을 들여다본다.
회오리치는 지문 속으로
누군가가 보낸 감정이 누전된 것만 같다.

실뜨기를 해 본 사람만이 손과 실의 연결을 이해한다.

실뜨기란,
허튼 고백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는 두 손으로
줄의 긴장감을 이어가는 일
혹은 마음에 새길 다음의 무늬를 짐작하는 일

실의 가닥에서 당신의 감촉을 기억한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맥박(脈搏)
느껴지지도 않은 작은 감정에
설레어 본 적이 있었던가.

전송하지 못하고 면도날처럼 입안에서 맴돌던
몇 줄의 모호한 문장과
눈(目) 속에서 무음으로 잠기던
그대의 뒷모습, 긴 머리카락

생각해보면 모호한 감정의 발신은
잊을 만큼 반송이 늦고,
단호한 몇 개의 단어는 긴 문장을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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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는 ‘마음들’의 이야기. 시인은 우리에게 마음과 마음의 연결지점에 대해 들려주고 있습니다. ‘누군가 보낸 감정’을 ‘누군가 받는 것’. 안타깝지만 ‘시차’를 두고 도착한 마음은 이미 ‘희미하게 느껴지는 맥박’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런가하면 ‘전송하지 못하고 면도날처럼 입안에서 맴돌던/몇 줄의 모호한 문장’은 차라리 ‘눈(目)속 무음으로’ 영원하겠지요. 아니면 청춘 속에서….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마음의 전송과 반송의 기록인 것 같습니다. 그 역사에서 우리가 밑줄 그어야 하는 부분은 다음의 문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베게트는 “남은 것들만 남은 자리 그 옛날 거기에 하나의 잔해가 있어 검은 어둠 속에서 때때로 빛을 발했다.”라고 했지요. 언제나 청춘은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이고, 우리의 기억은 늘 봄을 떠올리지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한 줌의 잔해 혹은 한 줄의 문장, 오고 있는 미래에 닿아 있을 시를 꿈꿔봅니다. 시인의 미래 시편들이 우리에게 전송되기를 바라며 믿으며.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