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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75 ㅣ밀물 ㅣ 김어영

용인신문-시로 쓰는 편지 75


밀물

김어영


손녀가 할아버지 등에 손가락으로 쓴다
보리 싹 같은 감촉
재미있다는 듯 깊이도 쓴다

할아버지의 등에 혼미가 찾아온다
각질이 무디어진 탓일까
염전의 갈라진 등을 태양이 잠식하고 있다

지난여름 모래 위에 쓰고 지우던
어지러운 마음,
밀물이 가져갔는지 깨끗하다

그새 일 년이 가버렸구나
눈 감으면 가슴에 파도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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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영 시인은 ‘기억의 연금술사’인 것 같습니다.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옵니다. 그 기억의 풍경을 펼치면, 손녀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지요. 손녀는 할아버지 등에 무슨 문장을 남기고 싶은 걸까요. 문장보다 중요한 것은 ‘보리 싹 같은 감촉’일 것. 손끝에서 묻어나올 것 같은 보리향이 풍경을 가득 채웁니다. 일순 환해지는 풍경이란 이런 시공간을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할아버지께서 손녀의 문장을 읽어내지 못하시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보리 싹 같은 감촉’을 느끼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겠지요. 문득, 우리는 지난여름 수없이 썼다 지워버린 마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 어지러운 마음들마저, 밀물이 깨끗하게 거두어간 걸까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일 년이 이렇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급해지는 마음. 어쩌면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리향처럼 푸른 일렁임이 아닐까 합니다. 언제나 청춘인 바다에서 매일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