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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철 초부리 시첩

신유목시대, 방랑과 정처(定處) 사이를 부는 소슬한 갈바람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말라가는 나뭇잎 사이를 부는 바람소리가 소슬하다. 쏴아-으아아-, 갈바람소리에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어있다. 엄마 젖꼭지 물고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엄마는 간 곳 없고 환한 햇살만 베어드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먼 머언 날의 그 울음소리.

어머니 여의고 선배들이 하던 ‘난 이제 고아야’라는 말을 흘려듣곤 했는데, 아니다. 막상 어머니 상을 겪고 보니 이 말이 이제 뼛속 깊이 사무쳐온다. 온 세상 통통 털어 봐도 기대일 데 없는 이 몸과 마음, 허허롭기만 하다.

가을날 해거름 녘 마을 집집에서 올라오는 포르스름한 연기만 보아도 밥 뜸 들이는 냄새가 나 ‘엄마’하고 왈칵, 눈물 났었는데. 이제 아니다. 내가 태어나고 돌아가야 할 그런 집으로서 이제 어머니는 없다. 이 고아의식은 또 이 사이버, 신유목시대를 사는 우리네 뿌리 잃은 의식 아닐 것인가.


처음엔, 바다였지
짙은 해무(海霧) 속 은빛 날개
차오르는 자랑이었지

아니, 설원(雪原)이었어
아랫도리 푹푹 빠지는 눈밭
솟대나무 박차고 나는 기러기였어

아냐, 그냥 구름밭이야
몽글몽글 피어나는 양떼구름
가없는 유목의 족속들이야

아, 뿌리도 없이 흐르는 먼, 먼 날들이여!


연초부터 무슨 일이 있어 비행기 타고 가며 창밖을 내다보고 메모해 뒀다 쓴 시이다. 땅을 박차고 올라 양떼구름 위 허공을 날다보니 그런 유목의식이 나도 몰래 새어나왔는데. 이제 그런 허공에서인 듯 울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내 귓바퀴에 맴돌고 있다. 고향으로 날아 돌아가려는 우리 민족의 솟대나무 기러기, 어머니의 표상도 없이 울음소리만 맴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님 서넛이 주교님을 모시고 세 들어 사는 초부리 우리 집을 보러왔다. 사정상 주인댁에서 집을 매물로 내놓아 주교관으로 쓰려 보러와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갔다.

말은 없어도 살아온 날들이 그대로 얼굴로 드러나는 인자한 인상의 그 주교님이 참 좋았다. 상심한 가을날 유목민의 이 내 심상을 부드럽게 위무해주는 표정. 아차,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 집이 팔린다면 난 또 다른 데로 떠돌아야 할 게 아닌가.

처음 이사 올 때 이 집을 사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네”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전원주택 하나 갖는 것은 우리네 로망 아니던가.

“나 돌아가리라. 전원이 거칠어지려는데 아니 돌아가리오 (歸去來兮 田園將蕪 胡不歸)”로 시작되는 도연명의 장시 「귀거래사」가 여전히 감동으로 읽히는 것도 인류의 보편적 로망이 바로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과 일체되는 것. 그런 장소로서의 전원주택을 갖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퇴직 후 전원에 내려가 좋은 집 보란 듯 지어놓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와 살며 애태우는 선배들도 적잖게 봐왔다. 그런 선배들에게 전원주택은 애물단지가 돼 있었다. 그래 난 집의 노예가 되기 싫어 일단은 세 들어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젠 결정을 내려야한다. 뿌리 없이 자유로이 떠돌 것인가, 아니면 이곳에 닻을 내려야할 것인가. 자유로우나 허허로운 떠돌이냐, 정처(定處)있어 안온한 정착민인가를 이리저리 저울질해봐야 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서로를 알아주고 위해주는 이웃이 있어 좋다. 마을 길이 끝나는 집 바로 이어지는 산 능선이 있어 좋다. 내 손바닥만한 하늘의 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별같이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심심찮게 볼 수 있어 좋다.

교통도 어지간하고. 그래 다 좋다. 이만하면 이곳 초부리에 뿌리내리기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이 소슬한 갈바람, 귓불을 스치는 서늘한 촉감에 오소소 귀소(歸巢)본능이 소름 돋우면서도 ‘또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며 스며드는 서럽디 서러운 이 도저한 방랑의 낭만의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