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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쓰는 편지 64 l 환희가 금지된 l 송승언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4



환희가 금지된

송승언

빈터에서 꽃들이 자란다 빈터를 밀어내며 빈터에서 꽃들은 자란다 지워지는 빈터에서
꽃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다 꽃이 아닌 것들이 빈터에서 자라고 있다 꽃이 아닐 꽃들이 웃고 있다 꽃은 아닌 얼굴들이 빈터에서
웃고 있다 얼굴은 절대 아닌 것들이 빈터에 들어차 있다 빈터에서 그것들이 자라고 있다 그것들이 함께 웃는다 함께 깔깔거린다 함께 이글거린다 함께 일그러진다 빈터에서

무너진다

무너진 것들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일어서려 한다 꽃의 잔상이 되려 한다 그러나 모두 일어서지는 못하고 모두 사라지지도 못하는 빈터에서
잔해를 헤치고 새로운 꽃이 자라고 있다 늘어진 줄기를 곧추세우려 한다 꽃은 아직 제 이름도 혈통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웃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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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빈 터는 어디인가요. 시 속의 빈 터에는 ‘꽃들’과 ‘꽃 같은 것들’과 ‘꽃이 아닌 것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기묘하게도 ‘꽃이 아닐 꽃들’도 웃고 있네요. 인간은 누구나 꽃이지요. 다만 이 세계에서 혹은 빈 터에서 “모두 일어서지는 못하고 모두 사라지지도 못하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시인은 어떠할까요. 시의 행간 사이사이 적요함과 투명한 슬픔의 위력이 흐르고 있습니다. 슬픔은 힘이 세다고 믿는 순간, 금지된 환희는 봉인해제 됩니다. 이렇게 금지된 환희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빛나게 되겠지요. 노동과 예술 그리고 예술과 노동이 불가능성의 가능성으로 빛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문득 떠오르는 우리의 시인의 문장이 들려오네요. ‘온 몸의 시학’을 전하는 김수영 시인은 한 산문에서 “매문을 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하면서 매문을 한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노동과 예술, 예술과 노동에 대한 질문은 여기서 출발하고 또 도착하겠지요. 온 몸으로 웃는 꽃의 진정성으로 매문!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