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8 (일)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63 l 유빙(流氷) l 신철규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3


유빙(流氷)

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여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 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


여름의 초입에서 떠올려보는 ‘유빙’. 첫 연을 읽으니 한 그릇의 음식과 두 손의 풍경이 그려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양가적인 의미 사이에서 이다지도 서성이는 걸까요. 입김이 그렇고 눈물이 그렇습니다. 왜 소중한 기억들은 예외 없이 두 물질로 만들어 지는 걸까요. 호-하고 입김을 불어 넣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대면해야하는 문장은 완고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더 이상 우리가 아닌, 한 사람과 한 사람이 이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다 지나간 시간이라고 말하기엔 지나치게 생생한 기억. 미래에서 온 기억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시계를 깨뜨려도 시간은 묵묵히 흐르겠지요. 관계성에 대한 사유를 전하는 시인은 당선소감에서 이렇게 적고 있네요. “나의 구원만큼 타인의 구원도 중요함을 깨닫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유빙’처럼 흐르고 흘러 도착할 여름의 기억.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