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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철시인의 초부리시첩 - 층층이 꽃세상인데…, 이마음은 어이 할거나

   
5월이면 온통 꽃 세상이다. 초부리 우리 집 앞뜰에는 바닥에 울긋불긋 꽃잔디 꽃 깔아놓고 철쭉꽃이 붉게 피어오르며 5월을 맞는다. 철쭉꽃 위엔 또 커다란 모란꽃이 피어오른다. 부처님 각시처럼 곱고 귀하게 피어올라 훈풍에 보랏빛 실크 치맛자락을 날리던 모란꽃 이파리 이파리들.

훈풍에 날리는 모란꽃 이파리들의 부귀영화 위에서는 또 소나무가 노랗게 노랗게 꽃을 피운다. 부귀영화는 남 일이란 듯 사철 꼬장꼬장 푸르기만 하던 소나무도 애써 꽃 피워놓고 바람 기척만으로도 송홧가루를 천지가 먹먹하게 날리고 있다.

어버이날이 있고, 스승의 날이 있고, 또 성년의 날이 있는 5월에는 가정에도, 도심에도 꽃들이 넘쳐난다. 장미 한 송이 주고받으며 성년이 됐음을 자축하는 앳된 젊음들이 꽃보다 훨씬 더 예쁘고 부럽다. 푸름이 더해가는 가운데 완숙한 꽃들의 세상인 5월은 인생으로 따지자면 분명 성년의 계절일 터.
   

꽃잔디꽃 위에 철쭉꽃
철쭉꽃 위에 모란꽃
부처님 색시 같은 모란꽃이 피었습니다.
모란꽃 위에 소나무꽃이 피었습니다.

사월이라 초파일 우리 집 앞마당은
눈 머문 층층이 다 맞춤한 꽃세상인데
천지간 부칠 데 없는 이 내 마음만
송홧가루 되어 아리게 날리고 있습니다.


층층이 꽃세상인 5월, 본 대로 느낀 대로 그대로 써본 시이다. 부러 짓거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보려 한 시이다. 심심하고 밍밍하게 보일지라도 옅은 냇물에서 빨가벗고 헤엄치는 아이같이 아무 가린 것 없이 훤히 보이게 쓰려한 것이다.

아, 그러나 또 ‘이 내 마음’이 문제이다. 번식을 위해 송홧가루는 바람에 흩어지고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도 기쁜 일일 텐데 나는 또 그것을 내 마음을 얹어 ‘아리게’ 바라보고 있으니. 이 내 마음 부분을 아무리 지워버리려 해도 그럼 너무 심심할까봐 한사코 지워지지 않는다.

   
5월 이 성년의 계절에 내 마음 하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나는 아직도 미성년인가 보다. 영국 시인 워즈워드는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나는 여직 다시 그런 동심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나 보다.

5월 어린이날을 맞아 실시한 어린이 시화전 심사를 얼마 전 맡았었다. 어린이들이 도화지 위에 쓰고 그린 작품들을 보며 어린이의 마음이야말로 우주 삼라만상의 본디 모습이고 자연 그대로임을 다시금 실감했었다.

“초록 여의주는 바람/파랑 여의주는 물/빨강 여의주는 불/노랑 여의주는 흙”이라며 단박에 우주의 원소를 다 불러내고 있는 동시를 보았다. 초록 파랑 빨강 노랑 색깔로 회오리치며 날아오르는 용으로 우주 운항의 역동적인 모습도 드러내고 있는 그림과 함께. 초등학생이 쓰고 그린 그 시화 자체가 우주 운항의 순리였고 이게 곧 우리네 꾸밈없는 마음임이 그대로 드러나 “맞아,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야”라며 감동했었다.

   
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던가. 삼라만상은 다 마음이 지어낸 것이니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렸단 말이다. 그러나 어디 마음을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인가. 내 마음 하나 다스리기 얼마나 어려운지 살아오며 우린 모두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린이 같은 마음, 본디의 마음으로 돌아가려 해도 완고하게 똬리 튼 아집(我執)을 버리기 너무 힘들다.

아집, 내 마음을 버리고 다시 가는 5월을 바라보니 숨죽여 커다랗게 피어오르던 자줏빛 모란꽃의 부귀영화도, 철쭉의 화사함도 다 졌다. 대신 하얀 찔레꽃 죄없이 와르르 피어오르고 있다. 눈 들어 앞산을 보니 온통 하얀 아카시아 꽃세상이다.

아카시아 하얀 꽃을 쪼는 산새 소리에 흩어져 날리는 아카시아 꽃향기. 하늘에는 아카시아 꽃향기 같은 새털구름이 층층이 층층이 흘러가고 있다. 이젠 그리움의 기색도 없이 내 마음도 가볍게 가볍게 흰 구름 되어 흘러갔으면. 아 그러나 아서라, 뜻 없이 흐르고픈 이 마음의 원망(怨望) 또한 아집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