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산이 몸을 풀고 있으니 이제 곧 새싹이며 개나리 진달래 꽃 봉오릴 내밀 것이다. 까마귀봉 봉우리에서 ‘까악, 칵’ 목 터지게 울던 까마귀 메마른 울음소리에도 이제 ‘아르르, 악’ 물기가 촉촉하다. 뒷동산에서 내려와 내친 김에 마을 앞개울과 그 너머 경안천까지 가 보았다. 혹여 TV 뉴스 화면에서 본,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없을까 하고. 겨우내 소리도 얼었던 물소리가 제법 시원스레 들렸다.
옅은 여울목엔 안보이던 왜가리들이 나타나 예의 한 다리 명상법으로 물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음 풀린 저 물 속엔 필시 봄볕에 기어 나와 나처럼 노니는 피라미며 물고기들이 있을 것.
천변 언덕에는 물을 향한 버드나무 가지들에 연둣빛 물이 잔뜩 오르고 있었다. 요, 요, 요 버들강아지들도 환한 햇살 바람에 그 보드라운 솜털을 날리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딱, 따르르르’ 온 산을 울리며 천지간을 깨우던 딱따구리 소리도 천변에서 들으니 목탁소리처럼 부드러웠다.
정월대보름 지나 경칩 지나 분명 봄은 오고 있었고 만물은 깨어나 부지런히 봄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며칠 후 3월로서는 9년 만에 처음으로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다.
목에 감기는 찬바람이 목을 베어갈 듯 아리고 무서웠고 꼭꼭 여몄어도 품속으로 파고드는 한기가 뼛속까지 시렸다. ‘이러다 감기몸살 들겠지’ 했는데 영어 단어 그대로 캐치 어 콜드 해 며칠째 앓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푸르디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 투명할 정도로 환한 햇살은 분명 봄을 품고 있는데 찬바람이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야들야들한 봄 햇살 년과 물러나기를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동장군바람 놈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럼 그렇지. 겨울이 매서운 추위 맛 한번 보여주지 못하고 물러나면 겨울도, 오는 봄도 아무
런 의미가 없지’ 라며 이 또한 자연의, 계절의 순리임을 다시금 깨쳤다.
![]() |
||
봄이 오는 이른 새벽 천변川邊에 나선다 미명未明에
잠긴 하늘 똑, 똑 두드리는 별들 딱, 또르르 딱따구리
마른 나무 쪼는 소리 침엽수림 뾰쪽한 잎새를 부는 바
람소리 풀리는 얼음장 밑 겨우 흐르는 여울물소리……
소리에 희붐하게 깨어나는 산등성, 등성이들.
베토벤 스프링 소나타를 듣는다 햇살 잘 드는 카페
창 너머 천변 마른 갈밭머리를 켜는 하얀 봄바람 뚝,
뚝 듣는 고드름 낙숫물소리 봄꿈에 겨운 바이올린 얼
음장처럼 냉정한 피아노가 주고받는 이율배반의 달착
지근한 선율 버들개지 연둣빛 빛살타고 심장 속으로
흘러드는……
아, 또다시 살아내고픈 봄기운이여!
몸살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스프링’을 들었다. 역경을 뚫고 치솟아 오르는 인간의 의지에 그만 귀가 먹먹해지도록 감동의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교향곡 ‘운명’ 등 다
른 베토벤의 곡에 비해 ‘스프링’ 소나타는 참 밝고 맑고 작고 예쁘다. ‘어, 이게 베토벤 곡 맞아?’할 정도로 정감이 아주 부드럽게 녹아 있는 곡이다.
바이올린 소나타이면서도 피아노가 반주에 머물지 않고 오는 봄의 정감을 바이올린과 서로 나누고 또는 돌아서는, 두 악기가 대등한 2중협주곡으로 봐도 좋을 곡이다. 정감에 한없이 풀어지고픈 바이올린과 얼음장처럼 냉정하게 절제해야하는 피아노가 주고받는 이율배반이 화합해내는 선율이기에 밋밋하지 않고 역동적이다. 마치 봄 옹달샘물이 솟아오르듯.
이런 베토벤의 곡을 들으며, 봄과 겨울의 줄다리기 기운을 감기몸살에 걸려 온몸으로 느끼며 위 같이 시로 쓰고 제목은 ‘베토벤 스프링 소나타’로 잡아보았다. 서로 다른 족속과 속성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따뜻한 햇살과 시린 바람. 이 이율배반의 긴장과 조화 속이 봄을 봄답게 부르고 맞이하게 하는 순리 아니겠는가. 그래 이제 누가 뭐래도 봄은 왔다. 꽃샘추위 몇 번 있겠지만 며칠 후면 절기상으로 춘분春分, 봄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이렇게 추위를 기어코 뚫고 봄이 왔으니 김종해 시인의 시구대로 이제 ‘꽃필 차례가 그대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