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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사람

이국에서 땀과눈물… 외국인 노동자의 아픔을 보듬다

응웬 티 투 타오 분당베트남인교회 목사

   
최근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사회의 구성원이지만 한켠으로는 외국인인 그들에 대한 인권과 생활환경 문제는 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이들을 보살피고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는 기관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어느덧 외국인 이주민들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타국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치유해주는 교회가 있다.
수지구 죽전동에 위치한 분당베트남인교회의 응웬 티 투 타오(37ㆍ여)목사는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과 생계를 위해 타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치유활동을 하고 있다.

베트남의 명문대학인 호치민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그녀는 자신의 보장된 미래를 뒤로한채 한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는 이주민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15년 동안 한국에서 거주하며 종교활동과 봉사를 해오며 한계를 느꼈다고 판단해 지난 2010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해 어엿한 한국인으로서 더욱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Q. 한국으로 오게된 계기는?

A. 어린시절부터 선교활동을 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종교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인 선교사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고, 한국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하지만 베트남은 아직까지 공산주의 사상이 강하게 남은 곳으로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결국 당초에 가진 꿈을 포기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지난 2000년 한국의 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른 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아오며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Q. 명문대학을 졸업한 이후 장래가 보장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을텐데?
A. 기독교는 어린 시절부터 접해왔지만 종교로 인해 삶의 진로가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초의 꿈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관료가 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전공도 영문학을 선택했지만 기독교를 가진 사람은 공산당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즉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탓에 사회진출에 제약을 받은 것이다.

이때 당시 사회에 대한 원망도 솔직히 많이 했다. 왜 종교로 인해 꿈을 접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방황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어려움을 겪을 때 나 자신을 바로 잡아준 것은 종교였다.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는 높은 지위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길 이외에도 가장 낮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활동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물론 종교활동을 포기하고 나름대로 사회진출을 모색했다면 지금의 삶은 경제적으로 윤택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같은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방식은 다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길을 지금 개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Q. 한국에 온 이후로 어떤 활동을 해왔는가?

A. 지난 2000년 한국의 한 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른 이후 지난 2004년 구미공단의 한 교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선교와 봉사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재능을 사회를 위해 펼치고 싶었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과 정부기관 및 기업과의 통역을 해왔다.

아울러 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여성들을 지원하는 한편 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후 건강이 악화돼 잠시 용인에서 요양을 하며 선교활동을 했지만, 이곳 역시도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아 이를 외면하지 못했다.

현재의 분당베트남인 교회를 세워 이들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게 됐다.
용인으로 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게 됐으며, 현재는 30여명의 교인들이 활동 중이다.
사실 교회라는 공간은 신을 믿고 종교활동을 하는 공간이지만, 기독교를 믿지 않아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이들을 보듬어주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종교가 가진 순기능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용인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주민 뿐만 아니라 인근의 성남과 광주시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도 이곳에서 서로 위로하는 교류의 장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Q. 한국사회에서 힘겨운 생활을 하는 이주민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A. 타국에서의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있다면 문화적 차이일 것이다. 특히 다문화 가정의 경우 문화적 차이 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간의 나이차로 인한 문제도 종종 발생한다.

때문에 교회를 찾아 가정에 대한 문제를 상담하는 여성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베트남 여성을 아내로 맞이한 한국인 남성들도 이곳에서 상담을 받는 사례가 늘고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에도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해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를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기업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소통을 돕기 위해 어디든 요청이 있다면 통역활동을 해왔다.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사회에서 외국인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꿔야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한국인들의 인식은 가난한 나라에서 못배운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왔다는 인식이 강하다. 아울러 결혼 이주민에 대한 인식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같은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작정 한국인들에게 호소하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것 보다, 우선적으로 이주민 사회에서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문화적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먼저 노력해야 할 것이다.


   
Q. 약15년 동안 외국에서 홀로 생활을 해왔다. 외롭지 않은가?

A. 아버지는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어머니는 베트남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외동딸인 나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가족이 뿔뿔히 흩어졌다.

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부모님과는 전화를 통해 자주 연락을 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함께하는 이들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정부의 지원방안을 구하기 위해 시청을 찾았지만 지원받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다.

바쁘게 살고 종교활동을 하다보면 외로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외로움을 잊게해주기 때문이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A.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여건이다. 이는 우리 교회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다양한 사업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우선은 인터넷 매장을 운영, 한국의 특산품을 베트남에 소개하고 반대로 베트남의 특산품을 한국에 소개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인삼 등의 한국물품은 베트남 현지에서도 인기가 많은 상품이다.

또 베트남식 쌀국수 매장을 운영하는가 하면 번역과 통역, 그리고 티켓예매 등에 대한 사업을 통해 이주민을 돕고 있다.

이와 더불어 베트남어학원을 마련해 다문화가정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다문화 가족 부부에게 서로의 언어를 교육하며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그동안 서먹하던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베트남어로 인사말 정도만 하더라도 많은 유대감이 생긴다.

교회활동을 하며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많은 한계를 느끼지만 많은 사람을 위해 활동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더 이상 편견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은 힘이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많은 활동을 하기 위해 노해왔으며, 지난 2010년 외국인으로서의 한계를 느껴 한국으로 귀화를 했다.

아직까지 재정적 어려움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우리 이웃과 함께 웃는다면 더 나은 미래가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