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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숙영 국립중앙청소년디딤센터 원장 |
아늑한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디딤센터는 폭력, 분노, ADHD 등 초중고등학교의 중증 문제아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요람으로 자리를 굳혔다.
2012년 10월 시범사업에 들어가 2013년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간 디딤센터는 개원 1년여 만에 문제아에 마침표를 찍고 꿈꾸는 청소년들로 거듭 나게 하는 최고의 시설이 됐다.
이는 순전히 초대원장으로 부임해 이달 18일 퇴임하는 정숙영 원장 덕분이다.
틀에 박힌 운영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한번 하기로 한 사업은 최선을 다해 추진하는 그녀의 업무 스타일은 이곳 청소년들에게 사회복지, 청소년상담, 상담심리 분야의 진로를 꿈꾸게 탈바꿈시켰다.
입교식 석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라. 여기서 해봐라. 기존 프로그램 중에 없으면 이야기 하라. 할 수 있는데 까지 지원 하겠다”고 끼와 꿈을 지원했다. 목표가 생긴 아이들은 입교 후 달라졌다.
미용에 관심 있는 아이를 여기저기 수소문해 미용학교에 입학 시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왔다. 작곡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는 유인촌 전 장관을 통해 작곡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실습 올 때 있을 거냐”며 어머니 같은 정 원장이 어디라도 갈까봐, 혹은 자신들이 달라지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다짐을 받는다. 원장 방은 늘 오픈이어서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드나들면서 바램과 고민거리를 털어놓는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센터에서, 정 원장 품에서 사랑과 소통을 먹으며 다시 태어나고 다시 자란다. 세상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꿈꾸는 아이들로 제2의 탄생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만나자마자 이별이라고 18일 퇴임한다.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탄탄하게 기반을 다졌기에 후임이 와서 잘 할 것이라고 믿음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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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는 60명 정원으로 4개월 단위로 1년에 2번 새로운 청소년을 뽑는다. 1개월 단위의 단기반도 운영한다. 그러나 대기자는 100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센터에 입소 자격이 있는 중증 청소년들만도 25만여명에 이른다. 정 원장은 좋은 선례를 남겨야 앞으로 전국에 센터가 속속 설립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밤잠을 설쳐가면서 운영 방안을 고민한다. 대안 교육이나 상담 외에 승마, 원예, 미술, 야외수업, 도서관, 동아리, 여행, 봉사 등을 통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면서, 건강한 청소년으로 복귀시킨다.
“미국으로 벤치마킹을 다녀왔는데, 네브라스카 보이스타운 같은 경우는 우리센터 같은 시설이 타운을 이룹니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보이스 타운 같은 경우는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건립한 점도 부러웠다고 말한다.
그녀는 업무 차질 없게 추석 연휴기간을 이용해 다녀왔다. 투어한번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5시까지 일주일 일정을 빡빡하게 소화해 가이드의 두 손 두 발을 들게 했다. 다녀오자마자 미국처럼 연구팀을 신설했고 학생 담당 인력도 늘렸다. 그녀는 필요한 것은 즉각 시행한다.
사실 41년 11개월에 걸친 정 원장의 공직 생활 동안의 업무 추진 스타일이 모두 그러했다.
그녀에게 머뭇거림이나 좌절, 포기란 없었다. 최근에야 조금 나아졌지만 정 원장이 공무원을 시작하던 70년대는 여성 공무원에 대한 편견은 고사하고, 인식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여성공채로 당당하게 입사해서 처음부터 남성 공무원과의 경쟁에 뒤지지 않고 똑 소리 나게 일처리를 하면서 여성이라서 안 된다는 통념을 하나 둘 깨뜨려나가기 시작했다. 여성공무원의 다양한 보직, 양성평등진흥원설립의 토대 마련, 1과 1여성공무원제도, 여성의 지방정치 진출 등 오늘날 후배 여성 공무원과 도내 여성들이 누리는 지위 향상은 많은 부분이 그녀가 쟁취해 놓은 결실이다.
여주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고양시와 경기도청, 경기도공무원교육원 교관, 도 가정복지 과장, 구리시부시장, 도 여성가족국장을 거치는 42년여 동안 오로지 주민을 위한 봉사에 매진했다.
매사 무섭게 돌진하는 업무 스타일과 한번 목표로 정하면 이뤄내고야 마는 승부 근성은 당당하고 탄탄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여성 고위직 공무원에 이르게 했다. 미온적이던 파주의 평화누리 마을 조성 사업은 그녀가 맡자마자 일사천리로 추진됐다. 건축 토목 조경 등의 설계서를 세밀히 검토하면서 10일 동안 새벽 2시까지 설계도를 검토할 정도로 악바리같은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해 탁월한 업무 추진 능력을 자타에 인정받았다.
경기도여성정책 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종합행정을 다루는 구리부시장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 한 그녀의 일생은 불꽃같은 삶이었다. 부시장도 여성이라서 안 된다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설득해 부시장에 취임했고, 어느 남성 부시장보다 현장과 소통을 중시하면서 부지런하게, 불도저식으로 일을 추진했다.
그녀가 일궈 놓은 신화는 참으로 많다. 이제 여주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여주를 한눈에 보는 그녀는 여주의 비전을 당당히 제시한다. 시의 발전은 시장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전공무원이 시장과 같은 철학으로 함께 뛸 수 있어야 하며, 시민도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동체 의식과 소통과 합의체를 이루고 싶어하는 그녀. 세종대왕릉의 한글로 먹고 살도록 할 것이며, 명성황후 등 9명의 왕후가 탄생한 여주의 가치를 활용하고, 신륵사, 도자가마 등 문화재와 문화를 통해 여주의 미래를 열어낼 자신감을 보여준다.
자신의 자서전 제목을 여주 콩나물이라고 했다. 콩나물 하면 떠오르는 온정처럼 하나하나를 품에 안겠다는 의미와 물이 빠져나가 자랄 것 같지 않은 콩나물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며 자신이 여주의 물이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제는 여주만을 생각할 것이라는 그녀, 시장은 일하는 자리라며 잠을 편히 못 잘거라고 벌써부터 마음을 다지는 모습에 여주의 밝은 미래가 점쳐진다.
“일은 삶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고 가치죠. 일하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41년 11개월을 일하면서 단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자란 아이들에게도 말합니다. 너희가 커서 엄마만큼만 자기 일을 사랑했으면 좋겠다고요. 그게 바로 행복한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보람된 삶이 최고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