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내정자로 지명되자 한 내정자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사법연수원 13기 출신 검사장들이 2일 퇴임식을 갖고 검찰을 떠났다.
검찰 총수가 바뀌면 검찰총장과 사법고시 동기들이 옷을 벗는 관례가 되풀이된 것이다.
이날 퇴임한 고검장급 간부들은 퇴임식장에서 역시 관례대로 거룩한(?) 퇴임사를 남겼다.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한 내정자와 경합했던 차동민 서울고검장은 조선 초 무명선사와 맹사성의 일화를 소개하며 검찰 후배들에게 국민을 위한 검찰이 돼 줄 것을 당부했다.
차 고검장은 “무명선사는 어린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우쭐한 마음에 찾아온 맹사성에게 찻잔이 넘치도록 물을 따르다가 맹사성이 이를 지적하자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치는 것은 알면서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라고 말했고, 맹사성이 당황해 급히 나가다 문에 부딪히자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인용했다.
차 고검장은 이어 “국민들이 보내는 따가운 시선을 따뜻한 시선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국민과의 진솔한 소통을 통해 의견을 가감 없이 반영하고, 국민이 공감하고 만족할 때까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참으로 백번 지당한 고언이라 할 만하다.
황교안 부산고검장도 퇴임사에서 “검찰의 위기 원인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면서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스스로 과감하게 쇄신해 나간다면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로 수없이 자기 몸을 후려치고 매일 뼛속을 비우는 한 마리 새에게서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다”며 “겸손과 자기쇄신, 국민중심의 검찰권 행사만이 국민신뢰 회복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조근호 검사장의 월요편지’로 잘 알려진 조근호 법무연수원장도 퇴임사에서 “스스로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서 “칼을 쓰는 검찰이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검찰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 법무연수원장은 “수사를 일컬어 ‘칼’이라고들 하는데, 불행한 마음으로 쓰는 칼은 살상용 흉기가 되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쓰는 칼은 사회악을 도려내는 수술용 메스가 된다”며 “검찰이 대한민국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검찰 구성원 스스로 행복할 줄 알아야 한다”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고위직 검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퇴임시 성대한 퇴임식을 갖고 이번에 퇴임한 간부들과 거의 기조를 같이하는 ‘고백록’수준의 퇴임사를 남긴다.
이에 앞서 박영렬 수원지검장도 지난해 퇴임하면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온 ‘청송지본 재어성의(聽訟之本 在於誠意ㆍ송사를 다룸에 있어 기본자세는 성의를 다함에 있다)’를 인용한 뒤 “다산 선생이 제시하신 목민관의 자세를 지표로 삼아 성의를 갖고 국민을 섬기는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고언했다. 그는 특히 고 후배 검사들에게 당부했다.
이번에 법무부장관에 내정된 권재진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2년 전 서울고검장을 물러나면서 “검찰이 안팎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 시기에 혼자 짐을 벗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고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전제하고 “균형감각에 바탕을 둔 정의감, 무모하지 않은 용기를 덕목으로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검찰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근에 퇴임한 간부들의 퇴임사를 음미해보면 모두가 한결같이 ‘국민을 섬기는 겸손한 검찰, 정의로운 검찰’을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문득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최고의 우수두뇌집단이라는 자부심에 충만한 검사들이 왜 재직중에는 ‘국민을 위한 검찰’에는 눈을 닫았다가 퇴임에 즈음해서야 철이 들어 뒤늦은 ‘참회록’을 남기느냐 하는 점이다.
반성도 자주하면 그 진정성도 의심스러우려니와 습관이 되는 법이다. 초임검사들이여, 그대들만은 퇴임식 때 또 다른 ‘참회록’을 남기는 검사가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