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박찬종 후보에 백기완 후보까지 나서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웠던 14대 대통령 선거일을 딱 1주일 앞둔 1992년12월11일 이른 새벽.
부산 남구 대연동의 ‘초원복집’에 검은 세단이 연이어 도착했다. 세단에서 내린 면면은 김기춘 법무부 장관과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시 교육감,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이상 당시 직책) 등 김 법무장관을 제외하곤 이른바 부산의 내로라하는 기관장 및 지역유지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김대중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은밀한 선거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공직자인 이들의 불법적 회동은 정주영 후보 측의 통일국민당에 의해 도청되어 일부 언론에 녹취록 전문이 폭로됐다. 반값 아파트 공약 등으로 다크호스로 부각 중이던 정주영 후보 측이 당시 민자당 정부의 관권선거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등과 공모하여 음식점에 도청 장치를 몰래 숨겨서 녹음을 한 것이었다.
부산지역 기관장들의 적나라한 선거개입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정국은 요동쳤다. 야당은 범정부적 관권선거행태가 드러났다며 총공세를 폈다. 하지만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하고 “주거침입에 의한 불법도청이 더 문제다”며 역공을 폈다.
보수 주류언론마저 김 후보 측의 주장에 편승하는 바람에 통일국민당은 오히려 역풍을 맞았고, 반대로 김영삼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층이 순식간에 집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여세를 몰아 김영삼 후보는 무난하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수사에 나선 검찰은 도청장치를 설치한 3명을 주거침입 혐의로, 이들에게 도피자금 2000만 원을 제공한 정몽준 의원은 범인은닉혐의로 기소했다. 또한 검찰은 복집 회동자들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으나 “공식석상이 아닌 사적 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가지고 처벌할 수는 없다”며 무혐의처분하고 다만 모임을 주재한 김기춘 장관에 대해서만 불구속기소했다.
하지만 김 장관측이 이듬해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을 규정한 구(舊) 대통령선거법 제36조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참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위헌”이라며 위헌제청을 신청, 위헌결정을 받아내고 이를 근거로 법원이 무죄나 다름없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림으로서 사건은 싱겁게 종결됐다.
이 사건은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로 끝나긴 했지만 이듬해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여당과 야당은 진통 끝에 “누구든지 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우편물의 검열, 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제공하거나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통비법을 제정했다.
통비법은 불법 도청을 억제함으로써 인권을 한 단계 신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나 한편으로는 엉뚱한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다.
2005년 MBC의 이상호 기자는 안기부가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과 중앙일보의 사주가 만나, 특정 후보에게 대선 자금을 불법적으로 지원하기로 공모한 내용 등이 담겨 있는 도청 테이프의 내용을 입수해 폭로했다.
이 사건은 한국의 고질적인 정경유착, 국가정보기관의 일상적 도청 문제 등을 낱낱이 드러냈으나 정작 파장은 엉뚱하게 튀어 MBC 이 기자 등은 통비법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최근 민주당 손학규 대표실 도청의혹 사건이 정국을 달구고 있다. 이미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아무리 공익 목적이라 하더라도 도청행위는 불법이다.
MBC 이 기자가 처벌받았듯이 공당의 대표실에서 이뤄진 회의내용을 이해당사자로 지목된 KBS가 도청한 게 사실이라면 이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경찰의 철저한 수사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또한 혹시나 KBS가 취재기법으로 회의내용을 입수했더라도 이를 특정정당에 회사차원의 이익을 위해 자료를 건넸다면 이 또한 언론윤리에 심각하게 반하는 행태다. 경찰수사 이전에 KBS가 먼저 진실을 고백하는 게 순리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