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틈나는 대로 집 뒤의 광교산을 찾는다. 요즘은 햇살도 화사하려니와 신록마저 눈이 부시게 짙푸르러서 산길에 접어드는 순간, 모든 시름을 잊는다. 광교산은 관악산이나 북한산, 도봉산처럼 높지는 않으나 산세가 완만해 무릎에 별다른 무리를 주지 않아서인지 특히 노년층이 많이 찾는다.
수지성당 옆길을 통해 형제봉(448m)→비로봉→광교산→백운산→바라산을 거쳐 고기동 유원지쪽으로 내려오면 얼추 네다섯시간 걸린다. 고기동 유원지에는 값싸고 맛있는 밥집도 많다. 광교산 등산은 용인에 살면서 누릴 수 있는 행운 가운데 최고가 아닐까 싶다.
평일에 산행을 하다보면 유난히 많이 띄는 게 노인들이다. 노년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인지 거의 매일 빠짐없이 나오시는 분들도 많다. 가끔은 너럭바위에 앉아서 쉬는 그분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산을 좋아하는 분들답게 모두들 열린 마음을 갖고 대화에 응해준다.
최근 나이 지긋한 할아버님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용인, 특히 수지구 쪽에 유난히 노년세대가 많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용인시에 알아보니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얘기였다. 용인시 통계에 따르면 3월말 현재 용인시 인구는 89만7,354명이다. 최근 5년간 평균 인구증가율이 5.7%로 전국 최고수준이다. 최근 들어서는 수지구 성복동, 신봉동, 동천동, 상현동 등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는데 새 입주자의 대부분이 서울이나 분당쪽에서 전입해온 은퇴자들이다.
며칠 전 산행에서도 노인 몇 분과 김밥으로 간단히 허기를 때우면 얘기를 나누었다. 정년퇴직한 전직 회사동료들인 그들에게 난 왜 용인으로 이사를 해 왔는지, 그리고 용인에서 살면서 느낀 게 무엇인지 물었다.
“번잡한 서울이 싫었는데 은퇴 후 살 곳을 둘러보다 풍광도 아름다운데다 서울이 그리 멀지 않은 용인이 맘에 들었다”
“서울 강남 아파트의 전세값이면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아파트를 살 수 있을 만치 집값이 저렴해 좋다”
“보바스 노인병원 등 노인복지를 위한 인프라도 잘 돼 있는 것 같다”
“주중에 서너번 씩 골프를 치는데 골프장이 가까워서 좋다. 우리집에서는 태광골프장이 바라다 보인다. 말 그대로 용인은 골프8학군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용인찬가’를 불렀다. 하지만 얘기가 길어지다 보니 그들에게도 한두개씩의 아쉬움은 있었다.
“용인으로 이사 오는 퇴직자들의 경우 각 방면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췄던 베테랑들이다. 그런데 이 능력을 그냥 썩히는 게 안타깝다”
“요즘 재능기부라는 말이 유행하던데 비록 우리가 한물간 사람이긴 하지만 나름대로는 각 분야의 전문가였다. 이 전문성을 재활용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다”
이들의 말을 요약하면 현역 때 체득했던 지식과 지혜를 지역사회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데 그럴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대학교수는 해당 전공학문, 기업가는 경영노우하우, 직장인들도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학생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들과 대화를 하다 이들의 재능이 사장돼서는 안되겠다는 아쉬움과 함께 사회를 위해 뭔가 봉사하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인시와 교육청에 건의하고 싶다. 용인시에 살고 있는 퇴직자들 가운데 자신의 전문성을 사회에 되돌려주고 싶어하는 분들을 수소문해 이들의 바람을 채워줬으면 한다. 초중고생을 상대로 멘토역할을 하게 해주든지, 혹은 특강 강사로 활용하든지, 행정적 의지만 있으면 좋은 활용방안이 나올 것이다. 용인의 소중한 자산이라 할 퇴직 전문가의 재활용책을 시가 적극 검토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