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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와 마일리지


공무원이 비행기를 이용해 출장을 다녀올 때 생기는 항공 마일리지는 누구의 소유일까? 공무출장으로 적립된 마일리지를 공무원이 사적 용도로 써도 될까? 참여정부 때인 2004년 이 문제가 이슈가 돼 여론이 분분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공무출장으로 쌓인 마일리지를 개인이 사용하는 게 관행이었다. 즉 외교통상부, 국방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해외출장이 잦은 부서의 공무원들은 공무출장으로 축적한 마일리지를 알뜰살뜰 모았다가 휴가 때 사용하곤했다. 이 같은 사실이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로 알려지자 비난이 비등했다. 결국 정부는 2006년 공무원의 항공 마일리지의 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공무 출장 때에 보너스항공권 구매나 좌석등급 업그레이드에 활용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무 마일리지제 지침을 제정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계기로 고위공직자들의 전관예우가 공정사회를 저해하는 핵심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은 은행의 영업행태를 내외적으로 감시하고 감독해야할 금융감독기관이나 은행의 감사, 사외이사 등이 이를 눈감아주거나 뇌물을 받고 공모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저축은행의 감사나 사외이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담합의 카르텔’을 형성할 수 밖에 없는 구조임이 확연하다. 감사나 사외이사 자리가 금융감독기관이나 경제부처 관료와 청와대·검찰·법원·국세청·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퇴직자들의 ‘양로당’ 구실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금융감독기관이나 경제부처 관리들의 경우 대부분 금융기관 등에서 퇴직후의 ‘2모작인생’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퇴임이 임박한 관리가 새로운 구직처를 상대로 엄정한 감시 감독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전직 관리가 저축은행 사외이사에 재취업하는 실태는 대형 로펌에 전직 고위관리들이 고문직 등 전문인력으로 취업하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조족지혈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김앤장, 광장, 태평양, 화우, 세종, 율촌 등 국내 상위 6개 로펌의 고문, 전문위원 96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중 90%는 퇴임 후 1년 이내에 로펌에 취업했다. 이들 전문인력의 출신기관을 살펴보면 공정위가 19명(19.7%)으로 가장 많았으며 금감원(금융위원회 포함) 출신이 18명(18.7), 국세청(관세청 포함) 출신이 16명(16.6%) 순이었다.
뿐만 아니다.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퇴임후 로펌행이 관행화돼있다. 대충 최근의 경우만 손에 꼽아보면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법무법인 세종으로 갔고, 오영호·이재훈·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은 각각 태평양·김앤장·광장으로 옮겼다. 이석채·유영환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태평양에 몸담았었고 김동수 차관은 광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 이전에도 한덕수 재경부장관, 서영택 건설부장관, 김용덕 금융감독원장, 윤대희 국무조정실장, 김세호 건교부차관 등도 로펌을 거쳤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퇴임 후 로펌에 잠시 머무르다 다시 장차관으로 컴백하기도 했다. 이른바 공직→로펌→공직→로펌으로 이어지는 회전문 인사의 한 연결고리가 로펌인 셈이다. 로펌이 변호사 자격증도 없는 이들에게 수천만원에서 억대의 월봉(연봉이 아니다)을 주며 스카웃해가는 이유는 뻔하다. 자신이 직전에 몸담았던 친정을 상대로 뭔가 영향력을 발휘해주길 기대해서일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자의 로펌 관련 의혹은 그래서 더욱 명명백백 밝혀져야 한다. 그가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김앤장의 국책 토목사업 관련 금융조달 자문 업무를 도왔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도왔느냐가 의혹의 핵심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로펌이 탐내는 고위관리의 이른바 전문성은 그 관리가 30여년 공무원생활을 하며 쌓은 것이라는 점이다. 즉 공직에 복무한 덕에 터득한 결과물인 것이다. 일종의 ‘공직 마일리지’인 셈이다. 때문에 공직자의 전문성은 온전히 본인 몫이라 할 수 없다. 공무원의 항공마일리지가 사적용도로 쓰는 게 문제시 되듯이 공직복무과정에서 쌓은 전문성도 개인의 일자리 찾기에 활용되는 것은 문제인 것이다. 전직 고위관리들의 로펌행이 ‘담합의 카르텔’을 형성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지만 전문성이란 공직 마일리지를 사적 용도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