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을 비롯,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가정의 날, 16일은 성년의 날 들이 잇달아 포진해있다. 굳이 가정의달이 아니라 해도 5월은 노천명 시인님의 말씀대로 ‘계절의 여왕’답게 아름답고 포근한 달이다.
그런데 어린이 날을 앞둔 4일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는 통계수치 하나가 발표됐다. 우리나라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주관적 행복지수’가 3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지난 3∼4월 ‘2011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의 국제비교’라는 주제로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641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4일 발표했다. 주관적 행복지수란 삶의 만족도와 주관적 건강, 외로움, 학교생활 만족도, 소속감, 주변 상황 적응 등 6가지 영역에 대한 학생의 응답률을 수치화한 지표다. 올해 한국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65.98점(OECD 평균 100점 기준)으로 세계보건기구(WHO)와 OECD가 각각 2006년과 2003년에 실시한 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와 비교했을 때 OECD 23개국 중 가장 낮은 점수였다. 우리나라는 2009년(64.3점)과 지난해(65.1점)에 이어 3년 연속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자료에 따르면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113.6점을 기록한 스페인으로 우리보다 47.6점이나 높았고, 우리의 바로 앞 순위인 헝가리(86.7점)도 우리보다 20점 이상 높았다.
이 수치는 아시아권인 일본, 중국과 비교해도 한국 청소년이 느끼는 행복도는 크게 낮음을 보여준다. 올해 설문과 2006∼2007년 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러 가지 면에서 행복한가’란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우리나라 고교생 비율은 2006년 13.7%, 올해 11.7%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6년 같은 질문에 대해 일본 학생들은 32.3%, 중국은 39.1%가 ‘매우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 연구를 주관한 연세대 염유식 교수는 그 원인으로 ‘입시 스트레스’를 꼽았다.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스스로를 외로운 존재로 인식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염 교수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경쟁적인 삶에서 가족과의 연결고리도 탄탄하지 않아 외로움을 느낀다”며 “공부 때문에 잠도 부족해 늘 피곤한 상태도 문제”라고 말했다.
굳이 염 교수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필자도 어이없는 경험을 한 적 있다. 10여년 전 미국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데리고 들어온 딸아이 얘기다. 귀국 당시 고1이던 딸은 미국 고교에서는 상위권 성적이었는데 한국에 온 뒤로는 학업이 힘들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럴 만도 했다. 한국과 미국의 학제는 서로 비슷해서 교육과정 수준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수학과 과학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이 과목은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통해 고교 전과정을 마친 것을 전제로 곧바로 수능대비 문제풀이를 하고 있어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는 학교수업은 포기한 채 주말이면 학원수업을 통해 1년여를 고생한 끝에 겨우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이른바 선행학습과 이를 전제로 한 입시위주 교육이 보편화한 현실, 이게 바로 한국 청소년들이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불행의 늪에 빠지게 한 원흉이다.
하지만 수월성위주의 경쟁만능 교육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들어 청소년들의 어깨에는 나로 새로운 짐이 더 늘어만 가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도 ‘orange’를 ‘오렌지’가 아닌 ‘아륀지’로 배워야하는 ‘영어강의’가 청소년들의 발목을 가로막는다. 기성세대의 공부일변도 드라이브에 내몰린 학생들이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이번 조사의 질문에 초등학교 4년생 54.4%가 ‘가족’을 꼽은 반면 고교 3년생들은 가족(20.5%)보다 돈(26%)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더 높게 응답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이제 기성세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일제시대에 ‘경성에 단스홀을 허하라’고 요구했듯이 이제 ‘청소년들에게 놀이를 허하라’며 학부모들이 교육개혁의 전면에 나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