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는 과거의 걸쭉한 액션스타답게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영화배우 출신인 이대엽 전 성남시장의 비리사건을 보며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쉰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마치 <복마전 성남시 습격사건>을 방불하게 하는 이번 사건은 그간 드러난 지방자치단체장 비리사건의 종합판이나 다름없다.
주연배우는 당연히 이대엽 전시장인데 친인척 일당이 조연배우들인 점도 어이없다. 검찰에 따르면 그는 승마연습장 허가와 택지개발에 개입해 2억여원을 받았다. 또 업무추진비를 가짜 영수증으로 처리하거나, 관사의 가정부를 공무원으로 속여 예산에서 임금을 주는 등 2억 5000만원의 시 예산을 횡령하기도 했다. 한때 ‘작은 시장’으로 불렸다는 그의 조카도 공영주차장 신축공사에 개입하는 등 6억여원을 챙겼고, 조카의 아내는 공무원 17명으로부터 인사청탁과 관련해 1억 5000만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 말썽많은 호화청사를 지으면서 17억원 짜리 조경공사를 조카의 아들에게 맡겼다. 이 전 시장 일가 6명이 챙긴 뇌물만도 8년 동안 21건에 15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주연과 조연들의 비리 연기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 세트도 어이가 없다. 이 전시장의 집을 압수수색해 보니 온갖 선물과 원, 달러, 엔화 등 현금 뭉치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선물 중에는 해외 경매시장에서 5000만원에 거래된다는 로열살루트 50년산을 포함해 몇 백만 원대 양주가 수두룩하고 포장지를 뜯지 않은 고급 넥타이 300개, 명품 가방 30개 등도 발견됐다. 주인공들이 이처럼 도둑고양이질을 하니 엑스트라급인 측근 공무원들도 덩달아 날뛰었다. 구속된 공무원 2명과 청원경찰, 불구속된 공무원 등 4명의 범죄는 뇌물 액수만 적을 뿐, 이 전 시장의 행태와 대동소이하다.
필자가 그의 파렴치 행위에 유난히 실망한 것은 한때 그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이대엽은 23세이던 1958년 한형모감독의 <나 혼자만이>로 데뷔해 1997년 <내! 아바디 오마니>로 은퇴할 때까지 40년간 4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대형배우였다. 그는 1960년 첫 주연으로 출연한 <경상도 사나이>가 크게 히트하면서 단숨에 ‘털털한 경상도 사나이’이미지로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이어 <철조망><젊은 표정><또순이><굳세어라 금순아><그리움은 가슴마다>등의 화제작에 잇달아 출연했다. 특히 1960년작 <철조망>출연시에는 당시 남자배우 중 최고의 개런티를 받기도 했다. 특히 그는 박노식, 장동휘, 황해 등과 더불어 액션스타로 스크린을 누볐다.
그는 인기가 하락하던 40대 중반 갑자기 정치인으로 변신해 이목을 끌었다. 그는 1981년 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성남 광주지역구에 신정당 후보로 출마, 당선되며 일약 화제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이후 13대까지 3선을 기록하고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을 역임하는 정치인으로도 성공했다. 이후 10여년 활동이 뜸하던 그는 2002년 4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성남시장에 출마, 당선 내리 연임하며 8년동안 시장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의 성공가도는 거기까지였다. 지난 지방선거에선 그가 임기말에 추진한 호화청사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바람에 결국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문제는 재직 8년 동안 그가 이처럼 구린내나는 ‘비리 백화점 장사’에 나설 때 왜 그 같은 행각이 발각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지난 8년간 그가 소속한 정당이 성남시의회의 절대 다수당이었던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같은 당 출신 시장에게 의회가 견제와 감시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같은 사례는 여러지역의 비리 사건이 여실히 보여준다.
10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8월 구속된 오현섭 전 여수시장은 측근을 통해 같은 당 소속 시의원 7명에게 뇌물을 나눠주었다. 지자체장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암암리에 거래되는 공천헌금, 그리고 고비용 선거풍토와 관련이 깊지만 단체장과 시의회의 다수당이 같은 당일 경우도 큰 요인이다. 바로 이 같은 점 때문에 현재 전국적으로 단체장과 의회가 특정정당으로 과점된 지역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보다 큰 감시활동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