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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부재 정권의 한 단면

요즘 들어 ‘소통(疏通)’이란 단어가 화제다. 인터넷상의 백과사전이라 할 위키백과에 따르면 소통, 특히 의사소통(意思疏通)이란 “사람의 의사나 감정의 전달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흔히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고도 한다.”고 정의돼 있다. MB정권 집권 이래 이제 커뮤니케이션론이나 사회언어학에서 주로 쓰이던 이 용어가 ‘소통 부재 정권’이란 새 조어로 자주 활용되면서 이젠 일상생활에 흔히 쓰이는 보통명사로 까지 친숙해졌다. TV의 개그 프로에서도 부모로부터 혼쭐나게 야단 받던 초등학생 아들이 “아버지와는 도통 소통이 안된다”고 투덜댈 정도다.

커뮤니케이션학의 한 분야인 휴먼커뮤니케이션(Human Communication)론에서 통상 소통은 조직의 효율성과 민주화의 척도로 사용된다. 부자간, 부부간, 혹은 고부간의 소통정도는 가정 민주주의의 수준을 반영한다. 마찬가지로 직장, 정부기관 등 조직과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소통정도는 그 조직과 국가의 건강성을 드러내 보여준다. 소통이 안되다 못해 아예 불통되는 시대여서 흔히 ‘소통 부재’로 통칭되는 MB정부의 일방통행식 통치의 극치는 단연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의 전경버스 장벽이다. 정부는 지난해 촛불시위 이후 시민들의 주요 집회가 예정돼 있을 경우 예외 없이 전경버스를 컨테이너처럼 잇대어 차벽을 쳤다. 보다 큰 규모의 시위가 예상될 때는 버스로도 부족해 아예 진짜 컨테이너로 벽을 쌓곤 하는데 이를 일컬어 네티즌들은 명박산성(明博山城)이라 비꼬아 불렀다.

필자는 최근 MB정부의 소통부재의 실상을 직접 목도하는 고통스런 체험을 했다. 필자는 지난 5월말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기간에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 겸 봉하 현지 장의위 상황실장을 맡아 일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정부, 특히 국민장의 실질적 운영주체인 행정안전부 및 서울시청 앞 노제문제로 문화관광부와 주요 현안에 대해 유족측을 대표해 협의하는 일이었다. 이슈에 따라 협상의 상대는 아래로는 실무담당자로부터 위로는 장차관일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협의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속출했다. 정부측과 유족측의 입장차가 워낙 커서 서로 밀고 당기는 것은 당초부터 각오했던 바여서 감내할 만 했다. 정작 문제는 정부측 내부에서 서로 말이 엇갈리고 일을 떠넘기는 바람에 일처리가 지연되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정부의 A파트와 오가던 얘기를 바로 옆의 B파트는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어 B파트와 협의하려면 다시 현안의 실마리부터 풀어야하는 식이었다. 또한 정부측 내부에서 상부와의 의견조율이 이루어지는 속도가 매우 더디거나 아예 안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예를 들면 장례식의 가장 핫이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와 서울광장의 노제에서 만장을 드는 문제 등 이었는데 행안부 담당자는 무조건 “불가하다”며 완강한 입장을 고수했다. 나는 유족측의 입장을 설명하며 총리실이나 청와대 등 상부에 이 같은 입장을 전달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행안부 고위관리는 “도저히 나는 그 말을 못 전하니 봉하마을 측에서 직접 총리실 등에 요구하라”고 떠넘겼다. 결론적으로 상부에서 곤혹스러워하는 사안은 자신들이 보고하기 어려우니 유족측이 직접 하라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민감한 사안은 (감히 건의할 용기가 없으니) 당신들이 직접 나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를 비롯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나 참모회의에서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유도하며 난상토론도 불사했던 회의체계를 경험했던 필자로서는 MB정부의 동맥경화현상을 현장에서 목도한 셈이어서 씁쓸함을 넘어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정부와 국민과의 의사소통은 고사하고 통치권 내부에서마저 서로간에 의사소통이 이 정도로 막혀있다면 이 정부는 소통부재 정권이 아니라 소통회피, 더 나아가 소통무시, 소통거부 정권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정부는 3일 새로 문을 연 광화문광장의 완전한 개방을 요구하며 기자회견하던 시민단체회원들을 대거 연행했다. 새단장한 한국의 대표적 광장의 소통요구마저도 원천봉쇄한 것이다. 불통정권의 앞날이 참으로 우려스럽기만한 시절이다.
본지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