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폐업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간 곳은 용인 처인구 역북동 뒷골목에서 50여 년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온 ‘신풍슈퍼’.
김종경 용인신문 발행인과 기자가 함께 도착한 가게의 미닫이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365일, 이른 새벽부터 건설 노동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해가 저물면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내던 취객들이 가득 찼던 곳. 하지만 이젠 색 바랜 간판만이 이곳이 한때 배고픈 영혼들의 ‘성지(聖地)’였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테이블 서너 개가 겨우 들어찬 신풍슈퍼 안쪽의 공간을 단골들은 ‘신풍카페’라고도 불렀다. 번듯한 메뉴판 하나 없어도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두부김치, 혹은 김치찌개가 뚝딱 차려져 나오던 곳. 겨울철 연탄난로의 따듯한 온기는 모두에게 위로였고, 단돈 300원짜리 삶은 달걀은 더할 나위 없는 요기였다. 외상 장부도, 계산서도 존재하지 않는 이곳. 오직 주인과 객 사이의 ‘신뢰’ 하나로 반백 년을 버텨온 공간이었다.
우리는 인근 식당으로 주인 윤선엽(87) 할머니를 모셨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구(老軀)의 주인장은 의외로 덤덤한 표정이었다. 평생을 바쳐 6남매를 키워낸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상실감보다는, 당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안도감이 더 커 보였다.
“이제 자식들이 그 터에 집 짓고 산대요. 시원섭섭해…. 그래도 여기서 자식들 다 건사하고,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으니 여한은 없어요.”
할머니의 담담한 회고에 잠시 숙연해졌다.
10여 년 전,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김 발행인과 고 김연주 사진작가, 안준섭 서양화가가 신풍 카페 낡은 벽에 페인트를 칠한 후 신풍슈퍼를 기록한 흑백사진을 걸고 ‘동락전(同樂展)’을 열어 당시 MBC 뉴스에 소개가 됐던 곳이고,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도 나왔던 곳이다. 윤 할머니는 오랜 시간 부적처럼 떼지 않고 모셔놨던 김 발행인이 쓴 시와 흑백 사진들을 어찌해야할 지 몰라했다. 윤 할머니의 인생이 예술의 한 장면으로 스며들었던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개발의 그늘 속으로 50년 된 노포가 밀려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공간이 품고 있던 ‘사람의 온기’와 ‘골목의 서사’마저 헐려 나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제 곧 굴착기가 50년 세월이 켜켜이 쌓인 낡은 건물을 허물 것이고, 투박한 막걸리의 맛과 연탄난로의 온기는 용인 땅 어디에서도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식당 문을 나서는 길, 윤 할머니가 멈춰 서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골목 어귀에서 자식들을 배웅하는 고향의 어머니처럼 느껴졌다.
골목을 빠져나오며 굳게 닫힌 가게문을 한참 응시하던 김종경 발행인이 나직한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50년 세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안녕, 우리들의 영원한 아지트 신풍슈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