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예로부터 이런 말이 전해 내려왔다. “낙천적인 여성이 임신도 잘하고, 순풍순풍 아이도 잘 낳는다.” 미신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과학적 근거를 들여다보면 허투루 흘려들을 이야기는 아니다. 낙천적인 사람은 스트레스에 덜 휘둘리고, 고비가 닥쳐도 다시 일어나는 회복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마음의 완충 장치가 단단하여 작은 자극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셈이다. 오늘날 연구는 이러한 태도가 실제로 임신과 출산의 결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임신은 생명의 신비를 품은 특별한 시기이지만, 동시에 여성에게는 중대한 도전의 시기이기도 하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호르몬은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며, 미래에 대한 불안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만큼 스트레스는 임신부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동반자다. 문제는 이 스트레스가 단순히 엄마의 기분에 머물지 않고, 태아의 성장과 발달에까지 직접적인 흔적을 남긴다는 점이다.
“엄마가 편해야 아기도 편하다.” 임신부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말은 이제 단순한 속설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로 뒷받침된다. 엄마의 정서적 안정이 곧 태아의 몸과 마음을 형성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은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본래는 위험 상황에서 몸을 각성시키고 싸우거나 도망칠 수 있도록 돕는 생존 기제다. 그러나 임신 중에는 일부가 태반을 넘어 아기에게까지 전달된다. 단기간이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높은 수준이 장기간 이어지면 태아 발육이 더뎌지고 저체중이나 조산의 위험이 커진다는 보고가 있다. 즉, 산모의 긴장이 단순한 순간의 불편에 그치지 않고 아기의 체중과 건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뇌의 변화가 특히 흥미롭다. 감정을 조율하는 편도체가 엄마의 스트레스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산모가 늘 긴장 상태라면 아기의 편도체 역시 쉽게 흥분하고 불안에 예민해질 수 있다. 태내에서 깔린 이러한 회로는 자라서도 지속되어 정서적 안정성과 스트레스 대처 능력에 흔적을 남긴다. 결국 엄마의 마음 상태가 아이의 마음 그릇을 미리 빚어 놓는 셈이다.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면 태반의 기능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혈류가 줄어 산소와 영양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성장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햇볕과 물을 충분히 받지 못한 나무가 더디게 자라는 것과 같다. 이는 단순한 정서적 불편을 넘어, 생리적 기능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태교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실험에서는 더욱 직접적인 증거도 확인된다. 산모가 긴장하면 태아의 심장 박동이나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이다. 엄마의 불안이 곧장 아기의 리듬에 새겨진다니, 경이롭고도 섬뜩하다. 그렇기에 태교는 단순히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거나 좋은 책을 읽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바로 그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절대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말은 불가능한 요구다. 임신 중에는 몸이 낯설어지고 생활이 불편해지며, 미래에 대한 걱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억지로 없애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다스리는 법을 익히는 일이다. 규칙적인 수면, 균형 잡힌 식사, 가벼운 산책, 명상 같은 습관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힘은 곁에 있는 이들의 지지다. 배우자의 다정한 말, 가족의 따뜻한 배려는 어떤 약보다 강력한 완충제가 된다.
엄마의 심장이 잔잔히 뛰면 아기의 심장도 그 리듬을 따른다. 엄마가 한숨 돌릴 수 있을 때, 아기도 편히 숨을 쉰다. 임신부의 작은 감정의 파동이 생명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누군가 건네는 이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태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그것이 엄마와 아기 모두에게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