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을 씹다
최은진
식물성의 당신과 육식성의 내가
연애를 하기로 한다
사슴을 사냥해서 사자가 먼저 먹는 부위는 위(胃)
그것은 오랜 공복에 대한 위로겠으나
네 개나 되는 위(胃)를 차례차례 정성껏 씹어 먹으며
사슴이 했던 반추시간을 되짚어 가늠해 보려는 건지도
되새김질의 자세로만 삶을 유지해 온 사슴에게도
인내의 끝에 맞이한 한 끼 식사로
사슴의 내장을 씹고 있는 사자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가 곧 죽고 사는 문제였으니
남의 살이 이토록 맛있게 느껴지는 게
내 모든 비극의 시작
여름이 몸집을 불려가는 동안
허공에서 드라이에이징되는 심장 두 개
당신의 채식에 나의 육식이 곁들여질 때마다
맹수의 날 선 이빨같은 죄책감이
문득문득 나의 살을 파고들었고
당신과 내가 이렇게 다르다는 걸
먹고 사는 문제가 되새겨줄 때
우리 연애는 끝난다
잘 먹고 잘 살라는,
처절한 마지막 인사
공복을 살찌우는 밤
한때 애인이었던 당신을
여물씹듯 되새김질한다
최은진
경주 출생.
2019년 <서정시학> 등단. 용인문학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