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김택희
늦은 커피 한 잔에 깊은 밤도 환하다
먼저 잠든 어깨에 꽃무늬 이불 당겨 주니
모퉁이 꽃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약력: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2009년 <유심>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눈썹>이 있다.
하루
김택희
늦은 커피 한 잔에 깊은 밤도 환하다
먼저 잠든 어깨에 꽃무늬 이불 당겨 주니
모퉁이 꽃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약력: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2009년 <유심>으로 등단.
시집 <바람의 눈썹>이 있다.
진통제 최서진 소리가 들리지 않는 다큐멘터리를 본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어 빗방울 하나 주워 들고 파도 소리를 듣는다 날개를 갖지 못한 새는 모두 꽃이 될까 수국이 지면 장마가 오는 이유 모란이 가고도 다시 모란이 오는 이유 어둠을 모아 흰나비로 날려 보내야 하는 이유 꽃자리마다 숨겨 둔 슬픔이 있어 열꽃이라는 말에는 뜨거움과 서늘함이 함께해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어쓰고 지워지고 싶은 날 스스로 제온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어 바다거북이처럼 폭염이 유난했던 하루가 서쪽 하늘에 펼쳐진다 꽃을 실은 바람이 불어 구름이 잠깐 흔들리고 오늘부터 빨강 구름을 믿으려고 해 해열진통제를 먹고 이마를 가만히 짚어 본다 해열 진통제를 보면 이마를 짚어 주던 한 사람이 떠오르고 오늘의 장보기 리스트, 따뜻한 아이스크림 『지구의 모든 저녁이 모여 있는 곳』 (파란 , 2026년)중에서. 2004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외 3권. 김광협문학상, 발견문학상 수상.
공복 이돈형 배워도 배워지지 않는 게 있다 사람의 일렁임이 광활해질 때 그 광활함에 내가 죽을 수 있겠다 싶어 잘못 배운 놈처럼 일렁임을 죽이려 했으니 사람아 맥박을 타고 놀던 사람아 속속續續에 물들어 슬금슬금 가물거림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아 가물가물 보다 먼저 산산散散해지는 사람아 소沼를 떠난 물 같은 사람아 한 모금쯤 되는 사람아 여지껏 배웠다고 배웠는데 익히지 못한 내 안의 공복이 울어 제끼니 손쓸 틈 없이 울어 제끼니 사람아 오늘은 자빠진 슬픔을 뒤집어놓고 몸 어딘가를 싸돌아다니는 사람을 끄집어내려 하니 애초에 내가 없었으면 좋았으려니 사람아 여린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은 저 광활한 우주가 있어 혼들리는 게 아니라 바라보는 내가 있어 흔들리는 것이니 흔들리는 사람아 시집 『나의 태몽은 나무랄 데가 없으니까요』 (지혜, 2025) 중에서 이돈형 시인 2012『애지』로 등단 2018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김만중문학상, 애지작품상, 선경문학상 수상 시집 『뒤돌아보는 사람은 모두 지나온 사람』, 『잘디잘아서』,『나의 태몽은 나무랄 데가 없으니까요』등
나방 손석호 건강한 102세 어미가 야윈 팔십 대 딸의 손에 이끌려 요양원에 맡겨졌다 어둠을 몰고 와 창가에 앉는 불나방 아파도 약을 주지 말라는 딸의 말을 엿듣고 파닥인다 낮 동안 조용하던 어미 난다 경북 영주 출생 1994년 공단문학상, 2016년 [주변인과 문학] 등단. 시집 [나는 불타고 있다] [스파이더맨], 2025년 제1회 무등문학상 작품상 수상.
기린이 살고 있다 이 석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놀이터에는 기린이 살고 있다 네 다리는 쩍 벌리고 허리는 반듯하게 머리는 하늘을 바라본다 기린은 등에 줄을 매달고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어준다 줄에 매단 의자가 출렁거릴 때 기린은 세렝게티를 달린다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는 무리의 중심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않은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수컷 기린이 있다. 평원을 달리는 기린은 꿈을 꾸지 않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에는 꿈을 꾸는 아이와 꿈을 지켜주는 아빠가 그네를 타며 평원을 달린다. 우리 아파트 중앙에는 꿈을 꾸고 있는 기린이 살고 있다 본명: 이동석 용인 대학교 대학원 졸업 경희 사이버 대학 재학중 용인문학회 회원 우리문학 등단
나는 간다 이기형 (1917 ~ 2013) 역마다 백두산표를 안 팔아 나만 미쳤다고 쑥떡인다 과연 누가 미쳤나 흑발이 백발이 되도록 귀향표를 살려는 놈이 미쳤나 기어이 못 팔게 하는 놈이 미쳤나 그럼, 나는 간다 미풍 같은 요통엔 뻔질나게 병원을 드나들어도 조국의 허리통엔 반백년 동안 줄곧 칼질만 해대는 저놈 메다꼰지고 걸어서라도 날아서라도 내 고향이 옛날처럼 나를 알아보게끔 하얀 머리는 까맣게 물들이고 얼굴 주름은 펴고 어리고 찢어지는 가슴 쓰다듬으며 나는 간다 걸어서라도 날아서라도 이기형 1917년 함남 함주 출생. 언론인 · 시인이며 재야 민주화 운동 인사. 『이기형 대표시 선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