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아저씨는 늦둥이 딸에게 큰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언니 오빠와 스무해 넘게 차이난다는 막내딸은 쑥스러운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하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취하신 아저씨는 소리가 조그맣다며 더 크게 부르라 하고 가게는 어느덧 아이의 크고 예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아저씨는 흐뭇하게 웃으시고 고개를 떨구셨다. 우리는 서둘러 아이가 멋쩍지 않게 박수를 아주 오랫동안 쳤다.
사람들은 생각에 따라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살기 위해 먹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라면 이왕 먹을 것을 좋은 것으로 고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고,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각자가 두는 가치에 따라 먹고 사는 의미조차 다르게 나타나듯이 한 가지 음식을 두고도 먹는 사람에 따라 맛을 느끼는 감각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맛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그 유명한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던 날은 비가 몹시 내렸다. 장화가 진흙탕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패장이 되어 퇴각하는 모습은 참담했다. 질풍노도처럼 대륙을 질타하던 나폴레옹이었기에 그의 몰락을 가져온 이날의 패배는 더욱더 비장감마저 풍기게 했다. 나폴레옹 개인의 운명은 물론 유럽 대륙의 역사마저 바꾸어 놓은 이날의 패배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 용병의 천재라는 나폴레옹의 치명적인 약점과 결함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후세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적절한 시기에 맞춰 도착한 오스트리아 원정군의 영향으로 나폴레옹도 불가항력적인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우연의 일치는 패인의 일부
얼마 전 서울프레스센터에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경제상황 및 정책방향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행사는 D대학교 학부와 대학원 출신의 언론 ․ 광고 ․ 홍보 분야 종사자들로 구성된 남산미디어포럼이 주관했다.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비판을 받아온 현 정부 경제수장인 박 장관의 강연을 듣고 기자가 느낀 것은 국가 경제정책은 결코 쉽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계 주요 국가의 복잡한 경제 스펙트럼을 모두 의식하고 반영할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 분야임에 틀림없다. 박 장관은 지난 4~5년간 내리막길을 걸어온 우리 경제가 앞으로도 몇 년 간은 오르막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분석을 내놓았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인기에 영합한 경제 정책이나 가계 부채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정치권의 압박 또는 유혹이 있다는 뉘앙스를 보이면서도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박장관은 다음날 정부중앙청사에서 위기관리대책회의 주재를 통해서도 유럽 재정위기 탓에 유럽 23개국 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고 미국의 재정절벽(fiscal cliff)우려가 남아있는 등 불안 요인은 여전하다면서 올해 세계은행의 기업환경
용인중앙시장 이야기-33 김량장동 용인중앙시장(상인회장 이순환)은 용인의 대표적인 종합 도소매시장으로 1차식품과 의류, 생활용품, 음식점 등 다양한 업종으로 구성됐다. 특히 재래식 순대로 유명한 순대골목과 떡 골목은 단골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금학천변을 따라 열리는 용인민속 5일장은 백암 5일장과 더불어 용인을 대표하며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중앙시장에 점포를 갖고 삶의 활기를 찾는 점포주들의 노하우와 경험담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 이정섭 대표 미니골드 용인점(대표 이정섭) 연 락 : 031-339-2222 010-6245-5984 주 소 : 처인구 김량장동 131-14 위 치 : 시장입구 맥도날드 옆 품 목 : 패션쥬얼리 전문(1418K) 회원 되면 혜택 커 구입상품, 무료A/S 중앙시장 입구 맥도날드 옆, 지나는 사람들이 한 번씩 다시 쳐다볼 정도로 황금빛으로 치장한 미니골드 용인점(대표 이정섭)은 유행을 앞서가는 패션쥬얼리 전문점이다. 주로 14, 18금을 이용한 제품으로 귀걸이, 목걸이 등 선물용과 연인사이에 좋아하는 커플 상품을 취급하며 최첨단 유행상품을 자랑한다. 유행에 민감한 20~40대가 주
사주명리로 본 세상이야기 사주는 성격이며 그릇이다. 사주상담은 그 사람의 사주만 보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사주는 한마디로 그릇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주는 태어난 환경과 문화, 그리고 지역의 특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외부상황을 이해하지 않고는 통변하기가 힘들어진다. 똑같은 사주라도 미국에 태어났는지 한국에 태어났는지에 따라 다르다. 비슷한 구조의 사주도 예전 어른 사주를 봐줄 때는 공부이야기는 빼고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지 만을 보게 되는데 그것도 이런 이유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부모들이 정말 잘해준다. 따라서 고생해야 성공할 사주가 공부만 하고 있는 실정이 많아서 인생의 목적도 잡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 밖으로 나다니며 고생 좀 하게 나두세요.라고 말해보지만, 부모는 공부 못하면 아주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오로지 공부만을 시키려한다. 좋은 환경이 그 사주를 망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실례가 된다. 세상은 참으로 넓다. 모든 직업이 공부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님을 우린 잘 안다. 안정된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 보다는 장사하고 잡일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누구든 인정할만한 좋은 직장은 2000:1이라는 비율로 경쟁이 심하다고
굿푸드 프로젝트는 용인 음식문화발전을 위해 용인신문, 용인가로수, 용인음식문화발전연구소, 용인아이, 티브로드기남방송, 수지기흥처인구 외식업지부가 함께 합니다. 굿푸드-큰마당감자탕(대표 방대석) ▲ 방대석 박진희 부부 가격과 양, 맛으로 승부 최대한 베푸는 맘으로 감자탕을 이모님께 배웠습니다. 생각도 필요했지만 최대한 부딪치며 몸으로 배웠습니다. 1년여 만에 식당 관리도 가능하다는 이모님의 허락을 받고 2개점을 관리운영하며 서비스도 배웠습니다. 이모님은 구리에서 잘 알려진 30년 전통의 원조뼈다귀 5개점을 직영하고 있습니다. 감자탕을 이모님께 배웠습니다. 생각도 필요했지만 최대한 부딪치며 몸으로 배웠습니다. 1년여 만에 식당 관리도 가능하다는 이모님의 허락을 받고 2개점을 관리운영하며 서비스도 배웠습니다. 이모님은 구리에서 잘 알려진 30년 전통의 원조뼈다귀 5개점을 직영하고 있습니다. 방대석 대표는 감자탕 요리의 진수를 터득한 뒤 경기도 병점에서 원조뼈다귀로, 충남 논산에서 큰마당감자탕으로 대박집을 운영하며 어렵게 배운 감자탕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 2008년 9월, 현재의 기흥구 보라동 578-1, 민속촌 입구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대형
따뜻한 세상/용인가정 호스피스(회장 임계호) 삶만큼 임종에도 가치부여를 처음 암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의 환자는 왜 나야?라며 부정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분노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면 무신론자일지라도 절대자에게 타협하곤 합니다. 종교를 갖게 되지요. 조금 지나면서 우울증을 경험합니다. 결국은 수용하게 되는데 수용할 즈음 임종을 맞게 됩니다. 임계호 회장은 잔여 생명이 6개월 미만인 주로 암 환자의 임종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지난 2003년, 뜻을 같이 하는 10여명과 용인가정 호스피스란 단체를 설립했다. 임 회장은 자신이 고생했고 지금도 치료중인 갑상선암을 극복한 뒤 암 환자의 어려움을 본인이 아는 만큼 돕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 호스피스는 죽음이 가까운 환자를 입원시켜 위안과 안락을 얻도록 도움 주는 특수 병원이란 뜻으로 이들은 단체를 설립, 어려운 경제 형편으로 병원 대신 가정에서 임종을 기다리는 암 환자를 찾아가 가치 있는 임종을 돕고 있다. 현재 33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고 대부분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주부로 이뤄졌으며 전문 호스피스 자격증을 갖췄거나 공부하는 중이다. 회원들은 모두 태어나서 죽기 전에 좋은 일을 해
▲ 15면 길눈이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11 血書 채상우 가지 않았다 묵호에 가지 않았다 주문진에 가지 않았다 모슬포에 가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햇빛 그러나 가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 쿠바에 유고슬라비아에 가지 않았다 내 의지는 확고하다 창문을 휙 긋고 떨어지는 새처럼 무진은 남한에도 있고 북한에도 있지만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가지 않았다 약현성당에 가지 않았다 개심사에 가지 않았다 길안에 가지 않았다 길안은 내 고향에서 삼십 리 떨어진 동네 평생 가지 않았다 담배를 사러 가지도 않았고 술을 사러 가지도 않았다 아직은 그리하여 가지 않았다 파리에선 여전히 혁명 중인가 광주에선 몇 구의 시체들이 또 버려지고 있는가 게르니카는 아직 그려지지 않았다 꽃잎이 피고 또 질 때면 그날이 또 다시 그러나 가지 않았다 애인은 지금 열심히 애무 중일 테지만 가지 않았다 앵초나무에 꽃이 피려 한다 이제 최선이 되려 한다 그러나 가지 않았다 레바논에 사이공에 판지셰르 계곡에 가지 않았다 가지 않았다 못 견디겠네 그러나 가지 않았다 그날 그때 명동에 신촌에 종각에 미도파백화점 앞에 꽃잎 꽃잎들 가지 않았다 그날 오전 열 시 민자당사에 구치소에 그날 새벽 미문화원
A: How was your interview? 면접은 어땠나요? B: I havent gone to the interview yet. Its tomorrow. Im so nervous. 아직 면접을 보진 않았어요. 내일인데 너무 떨리네요. A: Dont worry. You should do fine. Remember, you need to show them how easy-going and understanding you are to let them know you can work well with people.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잘 할거에요. 당신이 일을 서두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면서, 동료들과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B: Thanks. Ill keep that in mind. 고마워요. 명심할게요. 이주의 속담! Many hands make light work. 백지장도 만들면 낫다.
속마음을 숨기고 남을 대하는 것 집 밖을 나서면 나를 유혹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은행이든 상점이든 공항이든 들어서는 순간 상냥한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입가에 환한 미소로 간도 녹인다. 저들이 친절한 것은 당신이 좋아서가 아니라 약자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마라. 약자를 사랑해서란 의미가 아니다. 아직도 당신에게 뜯어먹을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약자를 뜯어먹고 사는 사회 구조로 되어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쥐어뜯으며 돈을 안 쓰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돈은 더 쉽게 빠져나간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오늘날의 젊은이는 그마저 살 돈 조차도 없다. 말이 좋아 돌고 돌아 돈이라지만 가난한자의 주머니에 돈은 절대로 돌고 돌지 않는다. 가난을 마치 죽어도 못 잊을 기둥서방처럼 붙들고 살다가 죽을 때쯤이면 자식에게 그 몹쓸 기둥서방을 대물림 하고 죽는다. 그 놈의 웬수? 같은 가난. 이는 가난한자가 치러야할 삶의 허약성이자 고통이다. 사는 게 고역(苦役)이란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를 꿰 뚫어본 것이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다. 다섯 달란트 받은 거부와 두 달란트 받은 부자와 한 달란트 받은 가난한자 이야기가 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