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의 역사 타파(19) 목화씨의 전래와 조선 농민들의 무명옷 이야기 1363년 공민왕 13년, 문익점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다. 그 후 일 년 만에 돌아 온 그에 의해 이 땅에 무명옷의 시대가 열렸다. 더 극적인 것은 삼엄한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 붓두껍에 목화씨를 숨겨서 들여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려말과 조선초의 기록에는 목화씨를 넣어가지고 왔다거나 그냥 가져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고려사 열전을 보면 문익점은 진주 강성현 사람인데 고려의 사명을 받들어 원나라에 갔다가 덕흥군에 부(附)하였다가 덕흥군이 패하므로 돌아왔는데, 목면의 종자를 얻어 와서 그 장인 정천익에게 부탁하여 심게 하였다. 거의 다 말라죽고 한 포기만 살아 3년 만에 크게 번식되었다. 씨 뽑는 기구와 실 빼는 기구도 모두 천익이 창제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목숨을 걸고 들여온 이야기는 없다. 왜, 목화씨의 전래가 붓두껍에 숨겨들여 온 목숨을 건 씨앗으로 바뀐 것일까? 이는 조선 중기이후 세금 제도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 그렇다면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오기 전에 우리 땅에는 면직물이 없었을까. 당나라 역사서 한원(翰苑)에는 고구려가 백첩포(白疊布)라는 면
서민은 큰 걸 바라지 않는다. 자고 나면 가야할 직장이 있고, 밥 배불리 먹고, 등 따 순 것, 서민이 바라는 것은 그것이 전부다. 이 바램을 해주겠다고 나선 사내가 있었으니 1960년 5월 16일 새벽 4시 250명의 장교와 3500명의 군인을 이끌고 한강을 건넌 검은 나이방의 사내가 그다. 역사는 이를 일러 풍운아 박정희라 한다. 그 에게는 걸출한 여식이 하나 있다. 의학 지식 면에선 안철수만 못하고 체력적으로는 문재인만 못하고 말하는 기술면에서는 이정희만 못하지만 그런 그가 지난달 19일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제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것도 아버지의 5.16 혁명숫자와 똑같은 51.6프로의 국민 지지율로 당선된 것이다. 이와 똑 같은 사건이 기원전 513년 계손 맹손 숙손씨의 삼환의 난이다. 삼십 중반을 넘긴 공자는 난을 피해 제나라로 가니 경공이 환대하며 나라 다스리는 도를 묻자 공자는 군군신신부부자자논어 안연 11즉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명제이지만 또한 질문이다. 각자 자기 분수에 맞게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신분주의(身分主義)에서 직분주의(職分主義)로의 전환
▲ 안작가, 길위의 풍경 진보와 보수, 2030세대와 5060세대 무언가를 잃었던 사람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사람 많은 사람이 좌절했고 또 많은 사람이 안도했습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 참 힘듭니다 5060세대분들, 무언가 지킬 것이 있는 분들이여 우리 젊은이들을 여러분께서 먼저 손 내밀고 따뜻하고 가슴 깊이 안아주세요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16 녹번동 이해존 1 햇살은 오래전부터 내 몸을 기어다녔다 문 걸어 잠근 며칠, 산이 가까워 지네가 나온다고 집주인이 약을 치고 갔다 씽크대 구멍도 막아 놓았다 네모를 그려 놓은 곳에 약 냄새 진동하는 방문이 있다 타오르는 동심원을 통과하는 차력사처럼 냄새의 불똥을 넘는다 어둠 속의 지네 한 마리, 조정 경기처럼 방바닥을 저어간다 오늘은 평일인데 나는 百足으로도 밖을 나서지 않는다 2 산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희끗한 뼈마디를 드러낸 절개지, 자귀나무는 뿌리로 낭떠러지를 버틴다 앞발이 잘리고도 언제 다시 발톱을 세울지 몰라 사람들이 그물로 가둬 놓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곪아가는지 파헤쳐진 흙점에서 벌레가 기어나온다 바람이 신음소리 뱉어낼 때마다 마른 피 같은 황토가 쏟아져 내린다 무릎 꺾인 사자처럼 그물 찢으며 포효한다 3 저마다 지붕을 내다 넌다 한때 담수의 흔적을 기억하는 산속의 염전, 소금꽃을 피운다 옷가지와 이불이 만장처럼 펄럭이며 한때 이곳이 물바다였음을 알린다 흘러내리지 못한 빗줄기를 받아내는 그릇들,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방안에 고인 물을 양동이로 퍼낼 때 땀방울이 빗물에 섞였다 오랫동안 산속에 갇혀 있던 바다가 제 흔
▲ 김태배 소장 고객에 대한 고마움소외이웃에게 지난 5일 처인구 김량장동 주공아파트에서는 현대자동차 용운대리점(대표 김태배)과 주택관리공단 용인김량장관리소(소장 곽상원) 간의 1사 1단지 자매결연 행사가 열렸다. 이들은 단지 내 독거노인, 장애인 등 불우 입주민의 주거복리 증진을 위해 봉사, 현물, 금전 등을 지원하는 사회공헌활동을 공동 추진한다는 약정서에 서명했다. 이날 쌀 370㎏과 생필품이 전달됐으며 용운대리점 직원과 유경석 아파트 주민대표, 이윤숙 부녀회장, 이수환 통장 등 참석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998년 처인구 역북동에 오픈한 현대자동차 용운대리점 직원들은 자동차 판매 영업을 위해 가가호호 방문하는 일이 많았다. 영업 실적이 오르게 되자 2000년부터는 독거노인이나 소외계층 이웃에 직원들이 직접 연탄 구입부터 배달까지 연결하는 연탄배달 봉사를 시작했다. 이즈음 동사무소에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되지 못하고 가족과 떨어져 생활이 곤란한 이른바 차상위계층 생활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직원들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다. 김태배 대표는 직원에게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 듣고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을 결심하게 됐다며
세상에는 철새가 있고 텃새가 있다. 육식동물이 있고 초식동물이 있듯이 다들 각자의 모습으로 산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과 다른 이야기를 보면서 불만을 갖는 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삶의 만족 따윈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안정을 가지고 싶은 사람과 남들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정신적인 행복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과 물질적인 것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는데 전혀 다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면 서로 너무도 달라 소통마저도 안 된다. 한번은 아이의 사주가 너무 좋아서 칭찬만을 잔뜩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듣는 엄마는 근심과 걱정으로 좌불안석이 되는 것이었다. 엄마의 생각으로는 지금 공부 잘하고 있고 착실해서 나중에 좋은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니다가 훌륭한 남편과 결혼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필자는 전혀 다른 말을 해서였다. 그 아이는 창의력과 독창성이 많아서 자기 멋대로 살아갈 사람이었다. 특히 꾸미는 것과 만들기를 좋아해서 피부미용이나 패션계통으로 가면 이름을 날릴만한 사주였었다. 그리고 지금도 학교에서 경연대회 같은 것을 하면 상을 타오는 아이였고
굿푸드 프로젝트는 용인 음식문화발전을 위해 용인신문, 용인가로수, 용인음식문화발전연구소, 용인아이, 티브로드기남방송, 수지기흥처인구 외식업지부가 함께 합니다. 굿푸드-해초락(대표 정용권) ▲ 정용권 대표 해초를 많이탄수화물 적게 포만감 유지하며 장청소까지 해초를 즐긴다. 가공이 필요하지 않은 자연식품 해초를 바다에서 채취, 깨끗이 씻은 후 섭취함으로써 약식동원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고 산성 체질을 알칼리화 시키며 풍부한 섬유질과 낮은 칼로리는 다이어트는 물론 변비 치료와 대장암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지난 2011년 기흥구 동백동 622-9번지 호수마을 동보노빌리티아파트 정문 맞은편 골목 80m 전방에 오픈한 해초락은 세종시에서 촌집이란 상호로 이미 뿌리를 내렸다. 지금은 손님건강을 최우선으로 음식 재료와 밑반찬 등 김치, 장아찌(마늘쫑, 매실, 단감, 더덕 등)를 세종시에 저장고를 두고 숙성시켜서 감칠맛이 돌면 용인으로 옮긴다. 지난 5월 특허청으로부터 서비스표 등록을 마치고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해초가공식품 첫 개발자로 등극했다. 정용권 대표는 해초는 섭취할수록 우리 몸에 이롭기 때문에 손님이 질리지 않고 많이 섭
A: The Korean economy is getting worse. 한국 경제가 점점 악화되고 있어요. B: I cant agree with you more. Nothing is quite the same. 네, 맞아요. 그 어떤 것도 예전같지 않아요. A: Hows your business doing in this recession? 이런 불경기에 사업은 어떠세요? B: Well, Im on the ropes. 위태위태하지요. A: There is no easy way!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군요. 이주의 속담! There is no rest for a family with many children.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
▲ 만평
전시장에 그림을 걸고 많은 술을 마셨다.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 시간들 그러나 카메라엔 75컷의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 사진은 온전히 어제의 기억을 깨우지 못했다. 의식이 무너진 눈으로 바라본 사물과 사람들 흐릿한 흔들림 사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안타깝고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의지는 운명을 이긴다. 그러나 의지가 약했던 사내. 독재자와 혁명가라는 미완의 이름을 가진 불세출의 인물 박정희는 1972년에 유신(維新)을 선포했다. 그때가 1972년 10월 17일이다. 두 달 뒤 12월 17일에 유신은 명실상부한 헌법으로 시행된다. 1953년생인 문재인은 1972년 대학에 입학했고, 유신반대 투쟁 선봉에 독재 타도를 외치다 1975년에 수감됐다. 출감 후 신체검사도 없이 검은 베레모 특전사로 강제 징집됐고 거기서도 살아 돌아왔다. 당시 유신의 딸 박근혜는 1년 전 문세광의 흉탄에 서거한 어머니를 대신해 유신정권의 퍼스트레이디로 왕성한 활동 중이었다. 그리고 40년 하고도 이틀 후 2012년 12월 19일 독재 타도를 외치던 열혈청년 문재인은 인권변호사가 되어 과거 유신 헌법만이 살길이라며 외치던 독재자의 딸과 대통령 선거라는 타이틀 매치로 맞짱을 뜬다. 결과는 문재인이 패했다.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민주주의 제도가 독재자의 딸을 합법적으로 대통령을 만든 것이다. 기원전 399년 501명의 배심원 중 280명이 가결하여 사형이 확정된 재판이 있었다. 악법도 법이다. 이를 외치며 죽어갔던 소크라테스의 재판이다. 사형선고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