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일찍이 공자에겐 둔하지만 어리석지 않은 현자 증자가 있다. 그는 공문십철(孔門十哲)에도 공문사과(孔門四科)에도 심지어 공문 72문도에도 못 들지만 제자 하나를 잘 키워 성인의 반열인 종성(宗聖)이 됐다. 제자는 스승을 잘 만나야 하고 스승은 제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공자의 손자 자사가 그의 제자다. 그의 속가제자에게 격대(隔代)교를 받은 자가 바로 아성(亞聖) 맹자다. 천하미색인 아내가 공부하는데 방해가 된다하여 쫒아낸 이해 못 할 사내. 그의 재가제자가 차성(次聖) 순자다. 인류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게 만든 장본인. 그의 애제자 이사는 진시황의 2세와 스승 환관 조고로 인해 허리가 잘려죽었고 또 다른 제자 한비는 동문수학한 친구 이사에게 죽는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그의 책. 강호는 그 책을 일러 한비자라 한다. 그 후 한비의 책들은 패자가(覇者家)의 전가의 보도처럼 숨겨져 읽혀 내려왔으며 영가량 진효공 참모 상앙은 한비자의 책으로 부국강병을 만들지만 자신은 한비자의 책으로 인해 저자거리에서 거열형으로 사지가 찢긴다. 암튼 한비의 책은 양날의 검처럼 언제나 비수가 되어 읽는 자의
▲ 안작가, 학자금 대출을 안겨주신 부모님 맘에 차지 않는 학교 졸업해서 놀고 있는 선배 예쁜 여학생만 좋아하는 교수님 장학금 정보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 친구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적분 같은 그녀 무엇 하나 잘 하지 못하는 나 어떻게 취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 5면 만평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5 흰 그늘 속, 검은 잠 조유리 한 삽 푹 퍼서 언덕 아래로 뿌리면 그대로 몸이 되고 피가 돌 것 같구나 목단 아래로 검은 흙더미 한 채 배달되었다 누군가는 퍼 나르고 누군가는 삽등으로 다지고 눈발들이 언 손 부비며 사람의 걸음걸이로 몰려온다 다시 겨울이군, 살았던 날 중 아무것도 더 뜯겨나갈 것 없던 파지(破紙)처럼 나를 집필하던 페이지마다 새하얗게 세어 먼 타지에 땔감으로 묶여 있는 나무처럼 뱃속이 차구나 타인들 문장 속에 사는 생(生)의 표정을 이해하기 위해 내 뺨을 오해하고 후려쳤던 날들이 흑(黑)빛으로 얼어붙는구나 어디쯤인가, 여기는 사람이 살지 않는 감정으로 꽃들이 만발한데 죽어서도 곡(哭)이 되지 못한 눈바람이 검붉게 휘몰아치는데 ---------------- 누구든 죽어본 적 없으니, 우리가 죽음을 알 턱 없으나 죽음을 모르고 어찌 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고찰 없이 어찌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죽음이 생의 목적지는 아닐 텐데 우리는 어째서 넋 놓고 살다 죽음 앞에 도착해서야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는 것일까. 왜, '타인의 문장 속'에서 당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냐. 단 한 줄이라도 나의
새 정부와 화부도 소통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다.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 우리는 선진 국가에서도 못한 여성 대통령을 뽑았으니 대단한 국민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이력도 평탄치 않다. 지난 달 25일 취임일을 맞아 당선인자를 뺀 박 대통령이란 호칭을 들으면서 불현듯 박정희 대통령이 연상된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두 살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청와대 생활을 시작했던 박근혜 대통령. 그녀는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피격 사건으로 암살된 후 22살에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마저 피살되면서 청와대 생활을 마감했다. 그리고 미혼으로 살다가 정계에 입문했고, 급기야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두 사람의 시대는 분명 전혀 다르다. 개발도상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 몸부림쳤던 산업화 시대로부터 경제 강대국들과 어깨를 견주는 정보화 시대이니 말이다. 일국의 아버지와 부녀가 대통령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부자 대통령이나 북한의 세습 정권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존재한다. 소련 대신 중국과 미국이 패권을
죽음은 사람의 인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인생의 마지막 문턱이다. 또한 가장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사기 항우본기왈 오강정장이 배를 대고 기다리며 항우에게 말 한다. 강동은 비록 땅이 작으나 지방이 천리이고 사람이 수십만 명. 왕이 되기에는 충분하니. 대왕께서는 빨리 건너십시오. 지금 신만이 배를 가지고 있으니, 유방의 군사가 도착하더라도 건널 배가 없을 것입니다. 항우는 웃으며 말한다. 하늘이 나를 망쳤는데, 내가 어찌 건너겠는가. 강동자제 팔천 명이 강을 건넌 이후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준다고 해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는가. 즉 하늘이 망하게 하였는데, 고향땅으로 피한들 뭘 어쩌자고 패군지장은 유구무언이라 했거늘. 결국 서초패왕은「면목」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한때 불가일세의 패왕이었고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초패왕이었지만, 지금의 이런 꼬락서니와 몰골로 고향에 돌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촌놈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던 것이다. 이른바 패자의 쩌는 오만함. 고향으로 돌아간다 해도 고향의 부로향친들을 대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정천입지(頂天立地)의 대장부가 고가과인(孤家寡
오룡의 역사 타파(23) 삶의 출발은 비슷했으나 마지막은 달랐던 민영환과 이완용 신문에 실려 인구에 회자된 혈죽가에서는 놀랍고도 신긔하다 우리 민충정/ 어리석고 블상하다 우리 국민들()/ 대한 중흥 어서 해보셰라고 하여 사후에 기적을 일으켰다는 민영환을어리석고 불쌍한 백성의 스승으로 삼았다. 나라가 무너져가는 시대에 자살이라는 소극적 형태로라도 저항을 보인 민영환은 친일하거나 보신주의로 일관한 다수의 고관대작과 대조적으로 군계일학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민영환 영웅 만들기에 앞장섰던 대한매일신보등 매체들이 절대 언급하지 않았던 사실도 있었다. 임오군란의 원인 제공자로, 민씨정권 부패의 상징으로 군란의 와중에서 피살된 민겸호(1838~82)의 아들 민영환. 22살의 나이로 벌써 정3품의 성균관 대사성(국립대학 총장)이 되고 그 뒤 30살도 채 되지 않아 이조참판호조판서병조판서까지 두루 역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척족정권의 핵심적 소장 멤버라는 태생적 신분이 있었던 것이다. 전봉준(1854~95)의 공초에는 민영환이 매관매직부정부패의 주역으로 지목되고 있다. 어느 정도가 사실인지 지금 확인할 길이 없지만 1890년대 전반에 민영환이 매관매직을
▲ 5면 만평
▲ 안준섭 작가 한참을 바라 보았다 자석에 고정된 것처럼 그런 풍경이 있다 모든 기억이 와락 쏟아지는 구토같은 그때 왜 그랬어 다그쳐 묻고 소리도 없이 멀리 사라져버린 그런 풍경이 있다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24 골목의 자유 김유석 황망히 뛰지 말 것, 실밥처럼 드르륵 뜯겨질 수 있으므로 모퉁이와 모퉁이를 누벼 만든 오래 입은 옷 같은 협궤 설거나 곰곰이 두리번거리지 말 것 튀밥 냄새 나는, 모든 것들을 조금 부풀어 보이게 하는 하오 수선집 재봉틀 소리가 내리막처럼 보이는 오르막 도깨비 길목을 밟아가는 네 시 방향으로부터 그늘이 지는 도시의 막후에서 함부로 침 뱉지 말 것, 내 그림자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뫼비우스의 띠일 뿐인 생의 담벼락에 낙서를 하거나 오줌을 갈겨 본 적 있다면 동전처럼 불쑥 뛰쳐 구르는 노는 아이들 소리에 놀라지 말 것 내일 때문에 늙어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므로 밤에만 문을 여는 만화점 모퉁이, 혹은 문득 막다랐다 싶은 집 앞 결코 앞서는 법 없이 바래다주는 불손한 기척들 헛기침으로 딱 한 번 돌아다볼 것 골목은 혈관, 피톨인 우리들은 골목을 돌고 돌며 살아간다. 아침마다 출근 시간에 쫓겨 골목을 내달리는 피톨들, 하루 종일 혈관을 돌고 돌아 저녁에야 겨우 집으로 돌아온다. 밥이 익고 찌개가 끓기도 하지만, 가끔 밥그릇이 날아다니고 상다리가 부러져 밥상이 주저앉기도 하는 우리들의 집구석. 구석구석 피가 돌지 않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