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성균관 유생들은 자부심이 대단했다. 입학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던 최고의 국립대학이었다. 생원과 진사로 구성된 학생들은 대과 준비생으로 출세길이 보장된 예비관료였다.전원 기숙사 생활에 학비 일체를 국가에서 제공해 주며 최고 엘리트로서의 대접을 받았다. 입학은 까다로웠지만 졸업은 정해진 기한이 없었다. 과거에 급제하면 성균관을 떠났으니, 시험에 합격하기까지는 학생으로서 품위유지를 할 수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가 96회나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조정의 부당한 처사, 훌륭한 학자에 대한 문묘배향 요구, 이단에 대한 배척 요구 등이 시위의 주된 내용이었다. 자신들이 배우는 학문과 어긋나는 일, 자신들의 신념에 배치되는 조정의 주장에 대해서 시위를 한 것이다. 이들의 시위에 대해 조선 정부는 굳이 막지도, 조종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유학을 근본으로 한 조선은 유생들의 주장을 국가 발전을 위한 기회로 삼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성균관 유생들은 시위 모의를 위해 몰래 숨어서 할 필요가 없었다. 재회(齋會)라고 하는 학생회와 유사한 자치기구에서 결정하면 행동으로 옮겼다. 명륜동에서 유소(儒疏: 유생들의 서
밥 배불리 먹고 등 따습게 사는 것은 아마도 다수의 지극히 평범한 국민들이 원하는 바 일 것이다. 요(堯) 임금이 나라 안 백성들의 사는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도성 안 밖으로 시찰(視察)을 나갔다. 저자거리에는 팔순을 훌쩍 넘긴 노인들이 「임금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 있으랴.」라며 배 두드리고 땅을 치는 고복격양(鼓腹擊壤)의 노래를 부르며 노는 것이 목격 되었다. 임금은 노래를 한 참이나 듣고 난 후 왈. 「백성이 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사는 것이 태평성대」라고 했다. 이 격양가는 중국 당요(唐堯) 시대의 일로 해 뜨면 일하고 일출이작日出而作 해 지면 쉬고 일입이식日入而息 우물 파서 물마시고 착정이가鑿井而歌 밭 갈아 밥 먹으니 경전이식耕田而食 임금의 은혜가 뭘 어쩌자고. 제력하유어아재帝力何有於我哉 『세종실록 권8』우암(尤庵) 송모(某) 時字烈字의 문인이며 송설체로 명필의 반열에 오른 소두산(蘇斗山)은 왈, 인생살이 백년이면 족하나니 긴 세월을 요 임금 때 격양가 부는 늙은이처럼 살리라. 百年身世生涯足 長作堯衢擊壤翁백년신세생애족 장작요구격양옹 나라를 다스리는 관료나 정치인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고복격양가는 아닐 찌라도 안일(安逸)과 은일(隱逸)한 삶을 보장해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147 패(牌) 이돈형 패에서는 뼈를 오랫동안 우려낸 맛이 난다 패와 패 사이 나를 미끼로 허공에 띄워 뜬구름을 잡아챌 때 훅, 훅, 훅킹의 감촉 패를 든 손에서 다리를 흔드는 버릇이 생겨나고 뼛속 깊이 스며들었던 고집스런 피 맛이 날 때 손 안에는 神이 포기한 외통수가 있고 내가 포기한 당신들이 있고 당신들이 포기한 뒤집힐 판이 있어 패를 까기 전에는 함부로 비웃지 마라 통뼈가 아닌 나는 자주 패를 쥐고도 웃음이 나는 늘 엿이었으며 좆이었으며 가끔은 쥐꼬리였음을 뒤집힌 패에서 다시 피 맛을 보지만 나는 한 순간도 패를 배신한 적 없고 패는 한 순간도 나를 놓아준 적 없는 패는 멀쩡해서 너무나 멀쩡해서 오늘도 패 하나를 까뒤집어 본다 혹시나 엿이거나 좆이거나 쥐꼬리였을 당신을 위하여 상처와 사랑은 얼마나 가까운가. 사랑에 관하여, 우리가 숨기고 있는 마지막 패는 무엇인가. 혹시, 당신은 사랑이 아닌 증오를 손아귀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순간 쇼부(勝負.しょうぶ)를 쳐야 하는 게 우리네 생이라면,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죽음밖에 없을 것인데, 우리는 왜 그토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못해 안달을 하며 살아가는가. 속이거나 속
정부는 1970년대 후반 서울 강북 인구 감소정책으로 강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최고 학군으로의 위장전입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했던 곳이 강남구와 서초구였다. 이른바 제8학군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몇몇 명문고가 이전해오면서 신흥 명문이 탄생된 곳이기도 하다. 고교평준화 이후 서울대학교 등 명문대 진학률이 한 고등학교에서 100명 이상이 나오는 등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고교평준화가 학군의 서열화와 부동산 투기까지 조장하는 등 각종 폐해의 원인이 되었던 셈이다. 평준화의 목적과는 맞지 않는 사례일수도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고교평준화 조건이 되지 않는 처인구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기피지역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중요한 것은 2015년부터 용인시 고교평준화 도입이 기정사실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첫해 고교평준화에 해당되는 현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지역사회는 무관심이다. 당장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나 초등학교 학생들도 피해자가 될수도 있는데 말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처인구 주민들은 고교평준화 제도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지방의원들을
이제 올 한 해도 두 달 가까이 남았다. 나무에 달린 탐스런 감을 보며 올 한 해를 되돌아본다. 한 해를 시작하며 여러 일을 계획하고 노력해 왔다. 정신적인 결실과 물질적인 결실 모두 주렁주렁한 한 해였으면 두 말할 나위 없겠지만 인생이 그렇게 순탄하면 재미없지. 문득 많은 즐거웠던 기억들이 바로 한 해에 얻은 결실이라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반드시 징조가 있다. 그래서 사필은 귀정을 하는 것이고 인과는 응보를 한다. 일찍이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 안자(晏子)는 제나라 경공에게 나라를 위태함에 빠뜨리는 세 가지 이유를 말한다. 첫째는 빼어난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요, 둘째는 인재인 줄 알면서도 등용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등용을 했음에도 믿고 맡기지 않는 것이다. 이는 지도자의 오연(傲然)이다. 오연의 가장 큰 이유는 외민(畏民)이다. 다산 정약용은 『서경』의 위민(爲民)과 애민(愛民)정신을 외민(畏民)의 수준으로 끌어 올려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가장 간절히 희구했던 실학자다. 일찍이 포숙아의 죽마고우 관중은 외민을 주석하길 국민을 존중 하는 것(尊民)과 국민을 따르는(順民)것과 국민을 활용하는(用民)것 이라했다. 쉽게 말해서 정치란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의 뜻을 따르고,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다. 이를 전고(典故)에서는 합려의 아들 부차가 월나라를 치기 훨씬 전인 그의 아버지 오왕 합려 때 일이다. 초나라와 오나라는 강대국이라 그 간극의 자리에 작은 나라 진(陳)은 항상 두 나라의 눈치를 봐가며 국가 생존 전략을 짠다. 어느 한 쪽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동시에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46 몽유 산책 안희연 두 발은 서랍에 넣어두고 멀고 먼 담장 위를 걷고 있어 손을 뻗으면 구름이 만져지고 운이 좋다면 날아가던 새의 목을 쥐어볼 수도 있지 귀퉁이가 찢겨 있는 아침 죽은 척하던 아이들은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이따금씩 커다란 나무를 생각해 가지 위에 앉아있던 새들이 불이 되어 일제히 날아오르고 절벽의 호주머니 속에서 동전 같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올 때 불현듯 돌아보면 공중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있다 거의 사라진 사람이 있다 땅속에 박혀 있는 기차들 시간의 벽 너머로 가고 있는 귀는 흘러내릴 때 얼마나 투명한 소리를 내는 것일까 나는 물고기들로 가득한 어항을 뒤집어 쓴 채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현실이 꿈이라면 우리는 그저 깨어날 일만 걱정하며 살아갈 텐데. 과거에 저당 잡힌 미래 따윈 안중에도 없이 우린 오늘만을 즐기며 살아갈 텐데, 사랑할 텐데. 나비가 되어도 좋고 잔나비가 되어도 좋은 게 꿈이지만, 현실에서까지야 그럴 수는 없지. 나비가 될 수는 없고 잔나비가 될 수는 없고. 그저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돈 벌고, 그저 잔나비처럼 재주 부리며 돈 벌어야지. 언제나 꿈보다 해몽을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