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농의 세설 귀신도 울고 갈 두 시인의 붓글씨-2 붓글씨의 기준은 일감사미(一感四美)인데 붓글씨를 감상한다함은 첫째, 글자의 위 아래 균제미. 둘째, 좌우의 조형미. 셋째, 탈 속적인 고박미(古薄美). 그리고 넷째는 글 전체적인 조화미(美)를 볼 수 있다. 이런 연후에야 시각적 생동감이 몸으로 체화된다. 그래서 붓글씨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이러한 이유로 붓글씨는 서예가가 아닌 방외지사 시인이나 고승의 글씨를 천하제일로 친다. 시인도 아닌데 고승의 글씨를 시인과 동격으로 놓는 이유는 시(詩) 자(字)가 절(寺)에서 하는 말(言)이 시(詩)이기 때문이다. 이는 시인이나 고승들의 마음은 자연에 가장 가까이 있다는 의미다. 창암(蒼巖) 이삼만(1770~1847)은 71세(1840년)때 서예 이론서 서결을 쓰는데 붓글씨는 자연에서 비롯되어 음(陰)과 양(陽)이 생겨나고, 형(形) 세(勢) 기(氣)가 붓에 실려 부드러움과 거침, 바름과 기괴함이 생겨나니 세참과 빠름, 느림과 껄끄러움의 묘미만 터득하면 서예는 끝이라고 했다. 창암은 조선 말기인 19세기 호남 서단을 평정하며 유수한필(流水閑筆)로 필명을 떨친다. 서울의 천재(天才) 추사(김정희1786~1856),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31 나는 저 아이들이 좋다 이성복 나는 영혼에 육신을 입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너무 사랑했다. -세르게이 예세닌, 「우리는 지금」 나는 저 아이들이 좋다. 조금만 실수해도 얼굴에 나타나는 아이, “아 미치겠네” 중얼거리는 아이, 별 것 아닌 일에 ‘애들이 나 보면 가만 안 두겠지?’ 걱정하는 아이, 좀처럼 웃지 않는 아이, 좀처럼 안 웃어도 피곤한 기색이면 내 옆에 와 앉아도 주는 아이, 좀처럼 기 안 죽고 주눅 안 드는 아이, 제 마음에 안 들면 아무나 박아 버려도 제 할 일 칼같이 하는 아이, 조금은 썰렁하고 조금은 삐딱하고 조금은 힘든, 힘든 그런 아이들. 아, 저 아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내 품에 안겨들면 나는 휘청이며 너울거리는 거대한 나무가 된다. ................................................................................................................................................. 좋다, 라는 말 참 좋지요. 그 어떤 말보다 투명한 말인 것 같습니다. 실수가 아닌 잘못, 잘못이 아닌 죄를 짓고도
김종경의 용인이야기 경전철, 이제부터 시작이다 용인경전철 최대 숙원사업이었던 수도권통합 환승할인제가 시행됐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그동안 노력해온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와 더불어 박수를 보낸다. 이 문제는 용인시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서울시와 경기도, 코레일 등이 참여하는 수도권 교통카드시스템 개선회의에서 기관별 쟁점에 대한 협의를 거쳐 도입됐다. 이 과정에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면 용인지역 공직자들과 일부 정치인들의 노력도 컸지만, 중앙부처에 근무 중인 용인 출신의 모 인사가 큰 역할을 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이름을 밝히진 않지만, 언젠가는 그를 인터뷰하고 싶다. 예상컨대 공직자의 무한책임과 애향심이 만들어낸 성과물로 보인다. 그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제야 비로서 용인경전철의 미래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용인경전철 사업을 최초 발표한 시점은 민선1기였다. 그러니 무려 20년이 다 되어 개통된 것이다. 개통 전까지 만해도 재정파탄의 주범으로 혹독한 비판을 받으면서 전국 지자체의 대표적인 선심성 실패 사업이란 오명까지 썼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에서 가정 안타까웠던것은 용인시와 사업권자인 용인경전철 주식회사와의 협상 실패, 그리고 사
우농의세설 문인의 붓글씨를 본다는 것은 일생을 두고 영광이 아닐 수 없다. 1 붓글씨는 처음과 끝이 일목요연은 하되 결코 획일적이어서는 안 되고 각 자마다 획순에 변화가 있어야한다. 그리고 같은 글이 겹칠 때는 어떤 형태로든 앞 글자와 다른 맛을 느끼게 써야한다. 우암의 고제 호남팔현 권상하가 조선육창의 맏형 창흡이 적소에서 죽자 그의 아들이 묘비명을 다 써와서 우암에게 수결(싸인)만 해 달라하니 때는 우암이 정읍에서 사약을 받던 중 이다. 우암 왈, 선비가 죽었거늘 어찌 가벼이 쓸 수 있겠는가라며 사약을 받던 것을 미루고 창흡의 묘비명을 써주었는데, 이것이 우암이 생전에 쓴 600여 편의 묘비명 중 백미로 꼽힌다. 이를 지켜보던 권상하가 우암의 손자 석주에게 했다는 말이라 전 한다.(이때 먹을 간 사람은 손자 석주라 한다.) 붓글씨는 크게 산 글과 죽은 글로 나눌 뿐 잘 쓰고 못쓰고를 논함은 군자가 할 짓이 못 된다. 권문세도가 종학(宗學)에서 나온 말이다. 그 권문세도가 문중 후학 중에 당대 1인자 서예가가 있는데 학교 문턱에도 안 가본 유학자 권우다. 권우는 일생에 한번 노년에 이르러 조선전통필법을 강의한적 있다. 그는 유학자답게 붓글씨도 률(律)로 쓴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30 잘 익은 사과 김혜순 백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을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 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 멀리서 가까이서 잘 익은 사과향. 당신에게 여치와 자전거 바퀴, 그리고 보랏빛 바람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요
오룡의 역사 타파(60) 꽃처럼 아름다운 화성 - 미완의 개혁, 정조의 죽음은 조선의 비극이었다. 호위를 엄하게 하려는 것도 아니요, 변란을 막기 위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나의 깊은 뜻이 있다. 장차 내 뜻이 성취되는 날이 올 것이다(정조실록 15년) 정조는 1792년 초여름 정약용을 조용히 불렀다. 수원에 새 성을 쌓겠다는 뜻을 밝히고 좋은 방책을 강구해 보라고 이르고 관련 도서를 내려주었다. 정약용은 고심 끝에 기중가(起重架)의 설계 도면을 바쳤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도구였다. 1794년 2월 시작된 공사는 2년 7개월만에 완성됐다. 성 쌓기에 일반 백성이나 승군(僧軍)을 불러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인부와 장인을 모집해 노임을 주고 거처를 제공했다. 5만5000명의 인부가 몰렸다. 정조는 내탕금 86만냥을 내놓았다. 화성은 팔달산을 끼고 낮은 구릉을 따라 쌓은 평산성이다. 성 중간에 작은 냇물이 흐르며 평지에는 방어호를 둘렀다. 총 둘레는 5520m이다. 성의 특징은 자연석이 아닌 벽돌을 섞어 사용하면서 돌의 규격을 맞추어 축조했다는 점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읍성의 기능과 방어의 역할도 겸했다. 정조는 왜 막대한 물량을 들이면서 성을 쌓았을
▲이상일 국회의원 2011년에 창립된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해체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야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그리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서 안타까움과 함께 크나큰 상실감을 느낍니다. 프로야구 구단의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했거나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들이 부활과 재기의 꿈을 키운 곳이 고양 원더스였습니다. 열정에게 기회를이란 고양 원더스의 슬로건은 이들 선수들의 용기를 북돋웠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김성근 감독의 뛰어난 리더십과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이 한데 어우러져 고양 원더스는 감동적 장면을 수없이 연출했습니다. 팀은 갈수록 훌륭한 성적을 거뒀고, 그 결과 2013년 이희성 선수(LG)를 시작으로 22명의 선수들이 프로구단에서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쟁에서 한번 탈락하면 재기하기 어려운 프로 스포츠계에서 고양 원더스는 패자부활의 상징적 존재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2012년 9월 고양 원더스 구장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강한 의지가 좌절과 어려움을 겪는 많은 국민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고 응원하면서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좌절로 이어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