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룡의 역사 타파(72) 휴일도 없이 일한 노비들, 오늘날의 비정규직처럼 언제든지 버려졌다. 삼국 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노비는 단지 말하는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지배층들은 누구나 노비를 거느렸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사고 팔았다. 1398년 7월 6일 태조에게 올린 형조의 보고를 보면무릇 노비의 값은 비싸봐야 오승포 150필에 지나지 않는데 말 값은 400~500필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축을 중히 여기고 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므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원컨대 지금부터는 무릇 노비의 값을 남녀를 논할 것 없이 나이 15세에서 40살까지는 400필로 하고 14살 이하와 41살 이상인 자는 300필로 하여 매매를 정해야 할 것입니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는 말 한 마리와 노비 열 명을 맞바꿨다. 임진왜란 당시 말 한 마리 값이 은자 열냥 정도라고 했으니 노비 한 명의 값이 은자 한냥에 불과 했던 셈이다. 이처럼 노비는 주인이 맘대로 사고팔 수 있는 동산이었다. 경국대전에는 매매에 관한 규정이 있는데 가옥을 매매하거나 전답을 매매할 때 15일 안에 무를 수 있고 100일 안에 등기를 해야 했다. 그 밑에 작은 글씨로 노비도 또한 이와 같
김종경의 용인이야기 구제역, 방역당국도 구멍 백신까지 무용지물 대책 없나?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의 잇단 발병 때문에 방역당국과 축산농가들이 초비상이다. 더군다나 기온이 급상승한 춘삼월까지도 구제역과 AI 발병이 계속되자 축산농민들이 맨붕 상태에 빠졌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부터 3월17일까지 발생한 전국 구제역 건수는 모두 151건. 이중 지난해 12월 26건. 그런데 올 1월 45건, 2월 48건, 3월엔 17일 현재까지 32건이 발병했다. 발병 평균 건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AI는 전국 9개 시도, 30개 시군에서 133건이 발생했다. 다음 달까지 야생 철새가 이동할 경우 또 다시 산발적 발병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구제역과 AI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축산농가에게는 재앙이다. 용인시의 경우 지난해 연말부터 총 8차례 구제역이 발병, 약38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전체 사육돼지 19만여 마리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지만 소강국면이 아니기에 비상이다. 다행히 AI는 철새 분비물을 통해서만 확인됐을 뿐 용인지역 농가에서는 발생이 안됐다. 그러나 병원균이 이미 지역 간 경계를 허물었기 때문에 발병 가능성을 배제할수는 없다
우농의 세설 찌질이 루저의 칼질이 테러라고? 박학불무택(博學不務擇) 특정 학문을 고집하지 않고 여러 학문을 공부하는 것의 달인 양천후인(陽川后人) 미수 허목은 수암(守菴) 박지화(朴枝華 1513-1592)의 문인이다. 서자 출신으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문도인 그는 솔잎만 먹고 살았으며 곡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한다. 의복은 딸랑 한 벌의 베옷으로 잠을 잘 때는 책을 베개 삼아 15일은 좌로 눕고 15일은 우로 누워서 자는데 베옷은 언제나 방금 풀 먹여 다림질한 듯 벼리가 서있었다 한다. 하루는 제자 미수 문(問), 어찌 주무시고 났음에도 옷이 후줄근하지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수암 답, 지천명의 나이가 되면 옷을 어떻게 입어하는지 잠을 어떻게 자야하는지 알게 될 걸세. 모름지기 남아는 오십이 되면 옷에 주름이 잡히면 안 되지. 남아는 옷의 태가 살아 있음을 보고 수양(修養)의 고저를 알지. 남아의 옷은 곧 강기목 벼리이니라 강기목야(綱紀目也). 얼마 전 현 정권에게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 마치 울고 싶은데때려준 꼴이 발생했다. 오십 중반 왼손칼잡이 미제가자(未齊家者)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혹자의 칼질에 미국 대사 얼굴이 80바
최은진의 BOOK소리 20-인생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 저자 : 마루야마 겐지 / 출판사 : 바다출판사 / 정가 :12,000원 인생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인생이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라고? 이렇게 위험하고 강렬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확고하게 눈치 보지 않고 쏟아내는 사람은 일본의 독설가로 알려진 작가 마루야마 겐지. 주관없이 흔들리는 사람, 부모에게 독립하지 못한 채 무너져 가는 사람, 그리고 감상적인 사랑 놀음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에게 쓴 약이 될 그의 말들을 들어보자.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라든가 신 따위, 개나 줘라라든가 애절한 사랑 따위, 같잖다 등의 말들은 다소 과격하고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남의 손에 급소를 내준 인생들에게 그는 말한다. 불안과 주저와 고뇌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다., 자신의 껍데기를 깨부술 힘은 자신에게만 있다., 자유와 함께하는 삶만이 존재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죽비소리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그런 거침없음은 그의 말과 그의 삶이 일치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는 1966년 여름의 흐름이라는 작품으로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을 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신고식을 치렀지만,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52 콜! 김민정 예컨대 미용실 옆자리에 앉은 여대생이 가수 현미처럼 파마해주세요라고 주문할 때 예컨대 택시를 타고 남가좌동 명지대를 가는데 서울31바9896 남진우 기사 이름이 하필 그럴 때 예컨대 베이징 올림픽 남자 핸드볼 경기에서 해설자가 조지효 선수 참 좋지요라고 말장난을 칠 때 예컨대 쿠싱증후군에 걸린 둘째 이모 양미미 씨가 아침에 짠 스웨터를 밤에 죄다 풀며 죽어갈 때 -------------------------------------------------------------------- 세상은 수많은 ‘예’들로 가득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컨대’라는 말을 쓰게 되는데요. 만약 “미용실 옆자리에 앉은/여대생이/가수 현미처럼 파마해주세요라고 주문할 때” 우리는 의아해 하겠지요. 그런가하면 “서울31바9896 남진우 기사 이름이 하필 그럴 때”도 있답니다. 남진우 시인은 명지대 교수.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우연 같은 ‘예’라고 할 수 있지요. 텔레비전을 보다 미소 짓기도 합니다. “해설자가/조지효 선수 참 좋지요라고 말장난을 칠 때” 우리는 압니다. 한 마디의 말이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걸. 여기까지의 ‘예’가
Life Together-행복을 같이하는 사람들 월 1만원으로 만드는 행복세상 어려운 이웃돕는 든든한 천사 ▲ 회장 안철균 행복을 같이하는 사람들, 줄여서 행같사로 불립니다. 봉사후의 행복은 느껴본 사람들이 말하길 끝이 없다고 합니다. 무한 행복을 함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용인크리스토퍼를 수료하고 수료 후의 실천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함께한 회원들도 있습니다. 생업도 어린이집원장, 자영업자, 공무원, 택시기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합니다. 모두 월 1만원의 회비로 행복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7월 결성된 행복을 같이하는 사람들(행같사)(회장 안철균)은 등록회원이 160여명이고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소외이웃에 정기적으로 봉사할 때마다 30~40명이 봉사요원으로 참석한다. 월 회비 1만원은 도배, 장판교체, 페인팅, 누수시설교체, 단열, 청소를 비롯해 한 겨울 장애가정이나 독거어르신께 드릴 김치나 연탄을 구입하는데 사용한다. 물론 생각을 같이하는 후원자들의 지원 금품도 요긴하게 포함된다. 수혜대상은 자원봉사센터, 시, 구, 읍면동에서 추천을 받고나면 직접 추천받은 수혜 처에 방문해서 어떤 식으로 도울지를 결정한다. 3~4회의 자체 회의를 거
이경철시인의 초부리시첩6-스프링 소나타, 이율배반과 화합의 선율 경칩 지나자 3월초인데도 봄기운이 완연했다. 아니 절기상 분명 봄이다. 환한 햇살에 봄이 어디쯤, 어떻게 오고 있나 보려 집 뒷동산에 올랐다. 쭉쭉 뻗은 소나무 비탈로 들어서니 뾰족한 잎새를 부는 바람소리가 아직은 시렸다. 등성이에 오르니 양지녘은 언 땅 녹아 질척질척했다. 산이 몸을 풀고 있으니 이제 곧 새싹이며 개나리 진달래 꽃 봉오릴 내밀 것이다. 까마귀봉 봉우리에서 까악, 칵 목 터지게 울던 까마귀 메마른 울음소리에도 이제 아르르, 악 물기가 촉촉하다. 뒷동산에서 내려와 내친 김에 마을 앞개울과 그 너머 경안천까지 가 보았다. 혹여 TV 뉴스 화면에서 본,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없을까 하고. 겨우내 소리도 얼었던 물소리가 제법 시원스레 들렸다. 옅은 여울목엔 안보이던 왜가리들이 나타나 예의 한 다리 명상법으로 물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음 풀린 저 물 속엔 필시 봄볕에 기어 나와 나처럼 노니는 피라미며 물고기들이 있을 것. 천변 언덕에는 물을 향한 버드나무 가지들에 연둣빛 물이 잔뜩 오르고 있었다. 요, 요, 요 버들강아지들도 환한 햇살 바람에 그 보드라운 솜털을 날리고 있었다.
김종경의 용인이야기 용인사람으로 산다는 것 김종경의 용인이야기를 10년 넘게 쓰고 있다. 매주 특별한 이슈가 없을 때는 정말 고민스럽다. 쓰고 나면 부끄러울 때도 많았고, 때론 보람도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두렵다. 용인신문은 풀뿌리언론으론 드물게 주간 지령 1000호를 넘겼다. 지방자치 부활과 언론자유 시작으로 창간 23년째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15년 현재까지 용인 풀뿌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들을 함께 했다. 필자가 함께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한국 근대사 출발로도 볼 수 있는 1895년 이후 가장 급변했던 순간들이다. 용인지명탄생 600년 이후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625 전쟁보다도 더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지 모른다. 이토록 중요한 시점에 용인신문 기자로 살아왔다. 직업 선택의 후회도 있었고, 언론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도 있었다. 열악한 언론 환경 탓도 했었고, 자질 부족과 매너리즘에 빠져 언론인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도 고백한다. 그럼에도 필자가 용인신문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토박이 용인사람으로서 용인을 사랑이기 때문이다. 유목의 시대에 엑소도스와 노마드의 유혹에 빠지지 못한 것 역시 아이러니다. 최근 들어 아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