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시로 쓰는 편지 74 걸음 차성환 걸음은 걸으면서 걸음마다 피는 꽃들과 녹아내리는 얼음을 생각하고 방향이 없이 방황하는 걸음은 구두 뒤축처럼 딱딱하게 굳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른 걸음이 올 것 같은 골목에 서서 걸음 속에 걸음이 왼발과 오른발이 번갈아 움직이면서 엉덩이와 어깨가 춤추듯이 흔들리는 길을 따라 흘러가는 걸음의 리듬을 기다리는데 나는 걸음을 가두는 걸음에 갇힌 채 걷지도 못하고 바다로도 가고 싶은 걸음이 산에도 못가고 집에도 못가고 걸음을 포기하고 걸음으로 남아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걸음을 자책하며 눈물을 흘리고 걸음이 흘러내리고 녹아내리고 바닥에 스며 새로운 걸음을 완성할 때까지 또 다른 걸음을 꿈꾸는데 계단을 오르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걸음을 따라 걸으면 죽은 걸음이 온통 가득 넘쳐 출렁이는 걸음의 파도 걸음의 슬픔 걸음의 얼음 걸음의 덧없음 걸음의 넘어짐 움직이지 못하는 걸음 그대로 압정으로 벽에 꽂아 걸음을 걸어놓고 걸음걸이를 감상하고 그러고 보면 걸음은 걸음을 멈출 때 가장 걸음에 가깝고 걸음은 내 시의 거름이 되어 치사하게 머릿속에 얼어붙은 걸음으로 시를 쓰고 나를 여기서 저기로 옮겨주는 걸음은 문이 없는 걸음으로 걸음을 끝내려
서력 13년, 공무원미술대전서 국무총리상 수상 취미로 시작한 서예, 이제는 제자 기르는 스승 ▲ 꽃담 구정옥 수상자 제 25회 공무원 미술대전에서 꽃담 구정옥 작가가 서예한글부문 최고상인 금상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고 지난 9일 상장을 전수받았다. 출품작은 남도진 작 낙은별곡으로 서체는 궁체고전이었다. 그는 이렇게 큰 상은 기대도 안했는데 금상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았다며 앞으로도 우리글에 더욱 관심을 갖고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꽃담은, 스승인 동탄서예아카데미 오광석 원장이 지어준 구정옥 작가의 호다. 꽃으로 장식한 옛 궁궐 산책로의 담을 칭한 것으로 우리 한글을 아름답게 알리라는 스승의 뜻을 담았다. ▲ 수상작과 함께 처인구 양지면에서 태어났고 처녀시절 용인시청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결혼 후에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자녀들이 제 몸을 건사할 수 있을 즈음인 지난 2004년, 노블카운티에서 실시하는 서예 강좌를 접하고 그저 취미삼아 등록했다. 점점 흥미를 느낀 구 작가는 기흥구 영덕동 자택 근처의 서실을 찾았고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정식 등록했다. 당시 오 원장은 우리글을 아름답게 묘사해보라는 주문과 함께 한글 서예를 권했
신유목시대, 방랑과 정처(定處) 사이를 부는 소슬한 갈바람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말라가는 나뭇잎 사이를 부는 바람소리가 소슬하다. 쏴아-으아아-, 갈바람소리에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들어있다. 엄마 젖꼭지 물고 잠들었다 깨어나 보니 엄마는 간 곳 없고 환한 햇살만 베어드는 방안에서 들려오는 먼 머언 날의 그 울음소리. 어머니 여의고 선배들이 하던 난 이제 고아야라는 말을 흘려듣곤 했는데, 아니다. 막상 어머니 상을 겪고 보니 이 말이 이제 뼛속 깊이 사무쳐온다. 온 세상 통통 털어 봐도 기대일 데 없는 이 몸과 마음, 허허롭기만 하다. 가을날 해거름 녘 마을 집집에서 올라오는 포르스름한 연기만 보아도 밥 뜸 들이는 냄새가 나 엄마하고 왈칵, 눈물 났었는데. 이제 아니다. 내가 태어나고 돌아가야 할 그런 집으로서 이제 어머니는 없다. 이 고아의식은 또 이 사이버, 신유목시대를 사는 우리네 뿌리 잃은 의식 아닐 것인가. 처음엔, 바다였지 짙은 해무(海霧) 속 은빛 날개 차오르는 자랑이었지 아니, 설원(雪原)이었어 아랫도리 푹푹 빠지는 눈밭 솟대나무 박차고 나는 기러기였어 아냐, 그냥 구름밭이야 몽글몽글 피어나는 양떼구름 가없는 유목의 족속들이야
열 개의 별 이야기 (계 癸 - 상상의 날개를 가진 자) 계수(癸水)는 모든 것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것은 생명수 같은 물이 되어 생(生)을 만드는 힘이 있다. 물론 태어남은 축복이 되고 다양한 존재의 변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태어남의 고통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우연을 당연함으로 시작하는 계수는 안개와 구름이 되어, 빗물처럼 내려와 맑은 시냇물과 옹달샘도 되지만, 사나운 눈꽃과 얼음도 된다. 계수(癸水)는 다변(多變)하다. 결코 한가지로 정의내릴 수가 없는 어떤 성질이 된다. 물과 불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성질이 있다. 특히 계수(癸水)와 정화(丁 火)는 그것을 재촉한다. 정화는 죽음을 만들고 계수는 생명을 만든다. 사실 죽음보다 생명이 더 잔인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살아 있는 것들이 언제나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면 계수(癸水)의 성질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창의성과 창조성은 변혁의 성질을 가지고 있고, 거기엔 새로움의 기쁨과 놀라움도 있지만, 낯선 느낌과 섬직한 공포도 함께 있다. 그래서 계수(癸水)에겐 기쁨과 공포가 함께 한다. 씨앗인 신금(辛金)에 계수(癸수)의 물을 주면 매끄럽
요양보호사 자격취득 후 봉사단 입단 사람이 그리운 독거어르신 우리이웃 ▲ 김만익 단장 지난 2008년 구성농협에서는 실버요양보호사 교육을 실시했다. 당시 노령사회에 대비한 양질의 자원봉사자 양성과 봉사활동 선도를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교육 수료생들은 그들을 필요로 하는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요즘은 교육생이 점점 젊어지는 관계로 실버라는 단어를 제외했다. 그들이 모여 구성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애초 간병 교육을 받은 회원들이 운영하던 실버봉사단과 합류하면서 구성봉사단으로 개명했다. ▲ 봉사모습 처음엔 모든 회원들이 함께 지역의 노인정을 찾아다니며 발마사지와 노인정 청소 등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김만익 단장은 날짜를 정하고 노인정에 통보한 후 방문하면 처음엔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마사지를 받고 이곳저곳 지적하며 청소할 곳을 알렸다며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어르신들은 발 내놓기가 미안했는지 방문 시간이 되면 발을 씻고 미리 청소도 하는 등 봉사자도, 수혜자도 어색한 시간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 봉사모습 지금은 12명 회원이 노인정 봉사보다는 독거, 장애, 조손가정 등 동 주민센터에 의뢰하거나 회원들의 추천을 받은 재가 어르신들에
용인만평
길눈이
최은진의 BOOK소리 41 영원을 향해 직선으로 흐르는 요요같은 사랑 가짜 팔로 하는 포옹 ◎ 저자 : 김중혁 / 출판사 : 문학동네 / 정가 : 13,000원 특별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는 없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사랑은 첫사랑이고 애틋하다. 그러나 공감할 수 없는 남의 연애사는 지루하고 진부하게 느껴지기 마련. 총 8편의 시간과 사랑에 관한 이 단편소설집에는 달콤한 연애도 없고 연애세포를 깨우지도 않는다. 우리가 치열하게 사랑했던 한 시절에 대한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독자를 집어삼킨다. 특별한 사건과 평범한 인물들만으로도 속도감 있는 세련된 문장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그들 사랑의 끝은 남겨진 거 없이 너덜너덜해지고 시간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뻔할 수 있는 상황들과 사랑에 빠졌을 때만 알수 있는 사소한 감정과 남녀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미묘한 틈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그 틈은 이를테면 술잔에 맺힌 물기 같은 거란다. “나는 차가운데, 바깥은 차갑지 않아서, 나는 아픈데, 바깥은 하나도 아프지 않아서.”
사관의 붓끝에는 눈이 없다. 임금 이 편전에 계신데 민린생이 문밖에서 엿보고 있었다(上御便殿 閔麟生從戶外以窺). 임금이 왈, “엿보는 자가 누구냐(上見之問於左右曰 彼何人耶)” 하니, 좌우에서 “사관 민린생입니다(左右對曰 史官閔麟生也)”라고 말했다. 감시당하는 것이 불쾌했던 임금은 말한다. 이제부터 사관의 입궐을 금하라(自今史官毋得每日詣闕). 그러자 사관은 경연 때는 병풍 뒤에 숨어서 엿들으며(經筵窺何屛障), 연회 때는 절차도 없이 숨어 들어왔다(又直入內宴). 태종은 극도로 사관을 싫어했고 두려워했다. 어느 날. 태종은 사냥을 갔다. 친히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져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한다.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親御弓矢 馳馬射獐 因馬仆而墜 不傷 顧左右曰 勿令史官知之). 그러나 얼굴을 변장하고 몰래 미행했던 사관(掩面面從)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관은 알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말에서 떨어진 것이 뭐 그리 큰 실수라고 사관이 모르게 하라 했을까. 이는 평생을 말 타고 천하를 누빈 강골이 말에서 떨어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했고 창피했으리라. 그러나 사관의 붓끝에는 눈(?)이 없었다.
용인신문-시로 쓰는 편지 73 단풍주의구간 안영선 풍경은 말의 재단사였을지도 몰라 (단풍주의구간입니다 주의 운전하시기 바랍니다) 내비게이션의 낭랑한 소리가 들렸지 알록달록 물든 단풍이 골짜기를 품고 있었어 하늘은 온통 바다 빛으로 채색된 날이었을 거야 말은 저속으로만 풍경을 즐기는 시간을 허락했어 아내는 모든 말이 단풍처럼 선홍색이거나 노란색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지 풍경은 차창에 가까워질 때마다 선명한 말을 쏟아냈어 저 앞선 곳 고라니 한 마리 풍경에 갇혀 쓰러져 있었지 (야생동물출몰지역입니다 주의 운전하시기 바랍니다) 붉게 물든 풍경은 가끔 말을 놓치기도 하나 봐 말을 놓친 풍경이 도로 위에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지 단풍주의구간 아내에게서 처음 들어본 말이야 두근대는 아내의 속내를 귀가 먼저 읽어낸 말이지 도로표지판에 없는 말 인터넷에 검색되지 않는 말 풍경이 꼭꼭 숨겨두었다 이 계절에만 끄집어내는 말이었지 아내는 시월이면 단풍주의구간을 달리고 싶어 했어 풍경이 전하는 말을 듣고 싶어 했지 ----------------------------------------------------------------------------- 처서가 지나고, 이제 초록들은
방치되는 용인의 문화재 - 이종무 장군 묘 앞에서 이종무라는 사람이 있다. 사전을 보면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왜구를 격파했고 제2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웠으며 쓰시마 섬을 정벌했다고 나온다. 아마도 조선 초기에 가장 유명했던 무장이고 요즘 어린이들도 대마도 정벌 이종무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 사람의 묘가 용인시 고기동 산골에 있다. 원래는 이곳이 묘가 아니었지만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묘를 훼손 할까봐 후손들이 이곳 깊은 산중에 이장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한 때 잊혔다가 재발견되고 그 후손들에 의해 한국전쟁 이전까지 대규모의 시제도 올려 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개발의 열풍이 불고 그의 산소 아래까지 집들이 들어서면서 땅값은 치솟아 누가 그 이득을 봤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제 사유지로 변한 주변으로 인해 묘소로 들어갈 길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역사학자,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역사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헛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수상 아베의 역사 왜곡이 극에 달할 때는 일부러 대마도 정벌한 이종무 장군 보고 싶어 아이들과 왔다가 길이 없어 실망하고 간일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어봤다. 용인시청 문화재팀장 윤재순씨는
오룡의 역사 타파(83) 백성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 망해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중에 지식인이 있었던가?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군대가 해산된 1905년부터 1909년 사이의 의병투쟁은 가열찼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계층의 의병들이 봉기했지만 애국 계몽주의자들인 지식인들은 다수가 외면했다. 이들은 ‘지금은 헛되이 목숨을 버리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때가 아니라 본업을 지키면서 실력을 길러 후일을 기약하라’며 의병들을 질책했다.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이주하여 삼원보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새운 이회영 형제와 이상룡처럼 무장 투쟁론을 강조한 지식인은 소수였다. 의병들을 흉도라며 비난했던 계몽 지식인들의 대다수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굴복했다. 그들은 실력 양성운동을 외쳐댔다. 언제까지 실력을 키울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안중근의 행위는 국격을 떨어뜨리는 만행이라고 맹렬히 비방했던 대한제국의 지식인들은 진사(陳謝) 사절단을 일본에 파견하며 사죄했다. 3일 동안 음주가무는 금지되고 대한제국은 비통함에 빠져들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1932년 10월 26일 남산기슭 장춘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