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용인은 나에게 제2의 고향이다.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구례지만, 어린 나이에 서울로 이주해서 줄곧 서울 사람으로 살다가, 2004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속 외국어고등학교(현 용인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설 고등학교) 개교 준비 선임교사로 임용되어 용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용인에 살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용인외고 설립 교무부장으로 학교 발전의 토대를 다져 외대부고를 명실상부한 전국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로 자리매김하는데 미력하나마 일조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 용인지역 중학생을 정원의 30% 할당하여 100만 인구의 용인시 교육 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개교 초기 용인시와 학교법인 동원육영회와 한국외국어대학교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도 외대부고는 용인의 자랑으로 남을 것으로 믿는다. 문학적인 삶에서도 용인은 풍요로운 토양이 되었다. 용인문학회에 가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용인문학회 시창작반에서 문단의 원로이신 김윤배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2016년에 계간 『시에』로 시인으로 등단하고,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시조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용인문학회의 전·현직 회장님과 문우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격려가 창작 활동에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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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 문정영 나를 입은 그가 서 있다 낭하는 위험을 느끼는 정신이 가지는 골목,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는 입가의 상처를 껴안고 산다 그의 몸을 안을 때 나는 전부를 풀어놓는다 가냘프다고 말하는 것은 골목에 대한 실례, 그의 몸피가 줄어들면 나는 스스로 펄럭이는 깃발 하루는 깊고 깊은 잠을 입어야 사라지고, 그가 나를 벗은 후에 하루는 차곡차곡 접힌다 그의 꽃이 지는 것을 본적 있다 중심이 세워졌다가 사라져가는 것을 모르는 척했다 바람과 햇빛을 입지 않은 山처럼 내 안에서 뻗어나가는 것이 어찌 슬픔뿐이랴 나를 입은 그가 가벼워진 神話처럼 납작하게 누워 있다 문정영은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이듬해 첫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를 상재한 후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이번 시집 『꽃들의 이별법』은 대상과 자아의 동화와 투사를 통해서 시가 빚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운」은 이와 같은 동화와 투사가 드러난 작품이다. ‘나를 입은 그가 서 있다’는 전형적인 동화의 현상이다. 그리고 ‘그의 몸을 안을 때 나는 전부를 풀어놓는다’는 투사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의 공간은 병원이다. 그러므로 그가 입고 있는 가운은 환자용 가운
[용인신문] 30년 전 중국 둔황에 처음 갔었다. 고비사막이 펼쳐지며 서역으로 가는 실크로드의 관문, 오아시스 도시가 둔황이다.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러지기도 하는 사막을 걷고 또 걸어 모래산 명사산에 올랐다. 서역 하늘과 사막을 아득히 물들여가는 노을도 보았다. 그러다 해 지면 도심으로 돌아와 야외 무도회장을 구경하곤 했다. 극장 앞 조그만 광장에 남녀노소들이 모여들어 밴드 연주에 맞춰 춤을 춘다. 여럿이 군무를 추기도 하고 또 블루스 같은 쌍쌍의 춤을 추기도 한다. 러시아나 몽골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예의 TV 화면 속 평양도 그렇고. 그런 무도회를 며칠간 밤마다 구경하며 황량한 사막 가운데 있는 조그만 오아시스 도시에서 인간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예의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블루스를 추면서 가슴이 닿을 듯 말 듯한 적당한 거리 유지가 그리움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낳고 또 야만이 아니라 문화와 문명을 낳은 거라고. 이런 거리에 대한 실감적 명상을 위해 그 후로도 대여섯 차례 실크로드 사막기행을 해오고 있다. 사그라지던 코로나 19 집단전염 불씨가 서로 몸 부비고 소리소리 지르며 춤추는 이태원 클럽발로 되살아나고
[용인신문] 안지추가 거친 청춘을 보낸데는 9세 때 부모를 여읜 탓<便丁>도 있으리라. 인성교육에는 가초檟楚가 절대적이다. 공부를 게을리하면 개오동나무<檟>로 만든 회초리를 들어 훈계하고 예의가 없으면 가시나무<楚>로 만든 회초리를 들어 가르친다는 말인데 문제는 부모 없이 자란 형이 동생의 인성교육까지 감당하기란 무리였다. 그럼에도 형은 동생을 위해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논어 학이편 1-4문장 증자의 말. “나는 매일 하루에 세 번씩이나 반성한다”는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등의 문장을 귀동냥해서 동생들에게 들려주곤 했다. 이들 형제들이 살던 시대는 한가로이 경전구절이나 외워도 되는 넉넉한 세상이 아닌 격변의 시대였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하필왈리何必曰利를 묻고 따지던 전국시대의 맹주로 군림하던 위魏나라 대량大梁의 시대가 아득한 세월로 지난 서위西魏, 북제北齊, 북주北周를 거쳐 수隋나라로 통일되면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야말로 다섯 나라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자가 안지추다. 그가 험한 시대를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를 도와주면 거기에는 반드시 콩고물이 떨어진다는 인정을 터득했던 것이다. 형은 이 부분에서 반대를
[용인신문] 용인시의 발전속도는 타 도시보다 기형적으로 빨랐다. 그만큼 도시발전속도보다 도시 인프라 조성은 턱없이 늦었음을 의미한다. 특이한 것은 100만 시민 중 70~80%는 20여 년 안팎으로 타 도시의 경계를 넘어 이사 온 신 유목민들이다. 지금도 수없이 도시를 넘나드는 유목민의 삶이 안쓰러울 정도다. 아파트와 전원주택에서 신공동체를 만들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웃사촌도 인스턴트식 관계다. 용인시엔 젊은 층의 유입이 많아 세입자들도 적지 않다. 자연스럽게 정주의식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주택 계약 기간이 끝나면 언제든지 떠나가야 할 사람들이니 부평초 같은 삶일 수밖에 없어 어쩔수 없는 노릇이다. 대신 주택 실소유자들은 부동산 가격 동향에 민감해서 지역사회의 다양한 분야에도 관심이 많다. 주민센터를 비롯한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하다. 이들은 교통문제나 난개발 등이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있기에 매우 적극적이다. 무엇보다 자녀들의 교육문제와 부동산 동향과도 직결되다 보니 커뮤니티는 압력단체 수준으로까지 커졌다. 도시인들에게 있어 삶의 무대는 정치무대와 다를 바 없다. 시민들은 무대 위의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형국이지만, 이젠 정치참여를 하는 무서운 관
부모님 일궈온 버섯 농장 20대부터 이어받아 남동생 새로운 종균·소비자 맞춤 생산 연구 누나는 디자인·유통·기획 등 판매업무 총괄 [용인신문] 이제는 청춘도 브랜드다. 청춘 표고버섯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청춘표고’ 용훈농장 장용훈 대표(33)와 장은비(35) 남매 CEO. 이들 남매는 처인구 도심에서도 그다지 멀지 않은 이동면 서리에서 부모님이 90년대 초반부터 일궈온 표고버섯 농장을 20대 때부터 계승해 현재 10여년째 전면에 나서서 운영 중이다. 이들 남매는 전문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각기 전문성을 살려 일의 특화를 통한 효율적 운영을 하고 있다. 버섯 전문가인 장용훈 대표가 표고버섯의 새로운 종균연구 등 온도와 병에 강하고 소비자 취향에 맞는 상품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면, 장은비씨는 디자인, 유통, 기획 등 판매와 관련한 대외적 업무를 책임을 지고 있다. 남동생인 장용훈 대표는 고등학교시절부터 아예 부모님의 버섯 농장을 계승하기로 결심하고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진학해서 제대로 버섯을 전공한 버섯 전문가다. 부모님이 본인 땅 없이 모두 임대로 시작해서 피땀 흘려가며 일궈낸 농장이기에 자신이 계승을 하지 않으면 대가 끊기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당시 두 살
15세 때부터 현재까지 전통악기와 함께 한 삶 12줄 가야금 농현의 맛 사라진 25현 안타까움 거문고 등 작품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기증 [용인신문] “지금 나는 일을 하기는 해요. 아쟁만 만들어요. 진짜 아까운 것이 가야금 선생이 없다는 것이에요. 오리지널 선생을 만나면 오리지날 악기를 만나야 하잖아요.” 한 평생을 가야금, 거문고, 아쟁 만드는 일에 신명을 바쳐온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0호 최태순 악기장(현악기). 요즘은 예전같이 가야금 주문이 많지 않아 동백 공방이 썰렁하다. 그의 말대로 12줄 가야금을 가르칠 제대로 된 선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태순 선생은 15세 때부터 악기를 만들기 시작해서 벌써 65년여의 세월을 악기와 함께 살아왔다. 그런 그가 국악의 쇠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악기를 만드는 장인이지만, 그 누구보다 소리를 잘 들을 줄 안다. “진짜 나같이 귀동냥 많이 한 사람 없으니까. 딱 들어보면 알아. 잘 하는구나. 그러니까 그 사람 선생이 누구냐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그 사람한테 배웠어도 배운 사람이 성음이 않나오면 그건 아냐. 첫째 목적이 성음이야. 그것이 않나오면 끝이야.” 올해로 81세가 된 최태순 선생은 젊은
[용인신문] 교육부가 오는 13일부터 고3을 시작으로, 순차적 등교 일정을 발표했다. 지난 5일 무관중 개막을 한 한국프로야구도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농번기를 맞아 분주하게 모종 심는 모습에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모처럼 자유가 느껴지는 5월, 생활방역으로의 전환은 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닌 ‘스스로 방역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본지 객원사진기자>
[용인신문] 삼손이 헌헌장부의 때 다시 올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에는 델릴라에게 빠져 영안이 흐렸으며 눈을 떴을 땐 낙타 턱뼈로 삼천 명을 쳐 죽였으며 그가 눈을 감았을 땐 신전을 무너뜨려 그 안에 모든 사람을 깡그리 죽였다. 그는 행운아다. 눈이 멀어 괴물이 된 자신을 보지 못했으니까. 삼손을 신전에 묶지 않고 그냥 보내 줬더라면 모두가 살지 않았을까. 어둠을 많이 본 사람은 눈이 먼다<마6:22-23>. 삶이란 가끔이지만 살아온 순간들이 나를 정의할 때도 있다. 이 점이 인간이 종교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종교의 가르침은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에서 시작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눅9:18>’는 예수의 돌연한 물음은 삶의 표층이 아닌 깊이다. 그 중심에 실천으로서의 기독교가 있다.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막12:31>.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며<마5:39>,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이다. 이 숨 막히고도 절대 불가능한 명제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사과상자의 이설 전다형 어떤 사과를 담았던 것일까 골목에는 각들이 없다 홀가분하게 속을 비워낸 상자가 각에 대해 각설 어제를 치고 오늘을 박다 뽑은 못 구멍 숭숭한 사과상자 눈에 밟혔는데 사과가 사회로 읽혔다 반쯤 아귀가 비틀린 자세로 골목을 물고 늘어졌다 상자가 불량한 자세로 한껏 감정을 부풀렸다 생채기에서 흐른 사과 진물이 그 진통을 기록해 놓았다 아프면서 큰다는 말, 싸우면서 정든다는 이설 옹이에 옷을 걸고 햇살 쪽으로 기운 나이테를 읽자 빈 사과상자 부등켜안고 끙끙거린 내 안의 사과가 쏟아졌다 사과밭 모퉁이를 갉아먹던 사과벌레가 내 늑골 아래 우글, 다 파먹을 요량이다 사과가 알량한 고집을 잡고 늘어졌다 사과를 비운 상자는 성자다 꺾인 전방 마주 선 내 볼록 눈거울이 맵다 전다형은 2002년《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등단 후 10 년 만에 첫시집『수선집 근처』를 내고 그 후 8 년 후에 이번 시집 『사과상자의 이설』을 냈으니 과작의 시인이다. 그녀는 활달한 언어의 운용과 예리한 이미지로 자신의 내면의 풍경을 노래한다. 「사과상자 이설」은 골목에 버려진 사과상자에 대한 사유와 인식의 시편이다. 눈에 띄는 키워드는 각설과 이설이다. 사과
[용인신문] 용인 살이 10년 차, ‘살이’라는 말이 참 좋다. “커피 마실래요?” 아이를 유치원 보내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부른다. 벚꽃이 활짝 핀 날, 우리는 종이컵에 담긴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 이웃과 소통의 매개가 되었던 믹서 커피. 커피 향이 벚꽃만큼 진했던 날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던 나에게 다가와 준 친구의 다정함은 4월 만개한 벚꽃 같았다. 지금도 간간이 안부를 묻고, 연중행사로 얼굴을 마주하는 친구다. 아이들과 함께 자란 너와 나는 어느덧 쉰이라는 나이에 서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본다. 커피는 사람의 관계를 확장해나가는 행복 바이러스의 원형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혼자서 마시는 커피는 외로움을 도닥여 주고, 친구를 부르게 만들고, 이웃을 만들어 주니깐. 히힛. 새순 돋듯 별들이 고개를 내미는 초저녁이 되면, 나는 보정카페거리 속으로 들어선다. 이곳은 나에게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커피 향이 섞여 판타지 공간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아늑함과 그리움이 뒤섞인 시간의 공간.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는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 하얀 여백을 만들어 내는 너희를 만나고 싶을 때, 내 안의 나를 마주하고 싶을 때 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