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용인시민청원은 용인시 홈페이지 ‘시민청원 두드림’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중 용인신문 편집국 자체 검토를 통해 게재하는 코너입니다. 또 시민들이 직접 용인신문사에 보내준 민원성 글도 게재 가능합니다. 시민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용인시는 왜 코로나 확진자 동선과 연령, 집 위치 등을 상세히 공개하지 않고, 시민들을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키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동선을 공개하지 않고 접촉자 파악 등이란 단어만으로는 실제 본인이 접촉자 인지, 우리 아이와 동선이 겹치는지, 어느 학교, 어느 유치원‧어린이집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다보니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지며 더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용인시는 도대체 동선이나 접촉자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맞습니까? 타 지역 지인들에게 용인시는 ‘위험한 코로나 동네’로 각인돼 있다는 사실을 용인시청 공직자들은 못 듣고 있는 것인가요?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고 모든 밀접 접촉자가 다 파악된 것입니까? 학교와 어린이집, 유치원 내에서 있던 모든 일들을 파악해 부모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있느냐 말입니다. 적어도 동선 공개라도 제대로 한
민선5기 김학규 ‘산너울 길’ → 정찬민 ‘사실상 폐기’ 민선 6기 정찬민 ‘태교 도시’ → 백군기 ‘사실상 폐기’ 백군기 ‘산너울 길’ 성지순례길 중 ‘김대건 길’ 부활 일관성 없는 행정 불신 조장…시 예산‧ 행정력 낭비 [용인신문] 용인시 민선 5기 김학규 시장 시절 민‧관 합동으로 추진 선포했던 ‘산너울 길’ 은 민선 6기 정찬민 시장 취임 이후 조직개편으로 사실상 폐기됐다. 또 민선 7기 백군기 시장 취임 후엔 정찬민 시장 때 공식 선포한 ‘태교 도시’마저 사실상 흐지부지되고 있다. 2012~2013년까지 시는 시민 건강증진과 관광 활성화를 위해 기존 등산로와 각종 문화시설 등을 연계한 6개 코스의 산너울 길 총 70여 Km을 조성했다. 산너울 길은 용인의 아름다운 자연생태를 역사‧ 문화와 어우러지게 코스를 설계한 명품산책 도보 길로 기대를 모았다. 시 관광과는 당시 민관추진위원회를 구성해 2012년 1차로 △심곡서원에서 손골성지를 잇는 ‘광교산 너울길(10㎞)’ △양지면 은이성지~원삼면 학일마을의 ‘문수봉·성지순례 너울 길(13㎞)’ △연미향마을~MBC드라미아를 연결하는 ‘구봉산 너울 길(12㎞)’ 등 총 3개 코스 35㎞를 조성, 발표했다. 201
[용인신문] 목적지가 없다기보단 착륙하지 않는 여행이 맞을 듯 싶다. 코로나 19로 비행기 탈 기회가 줄어든 요즘 항공사에서 조종사 운항 자격 유지와 해외여행 기분을 느끼고 싶은 탑승객 니즈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상품이 인기다. 평소 운항고도(9000~10000m)를 3000m로 낮춰 창밖 아래 풍경이 더 잘 보이는 것은 물론 도시 상공을 선회해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기내식이 그리웠던 이들을 위해 식사도 방호복 입은 승무원이 제공한다니 한번 비행에 기분전환이 될 듯하다. 연말을 맞아 '해돋이 원정대' 상품도 있다고 하니 관심을 가져봐도 좋을 듯하다. <본지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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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송강 정철은 56세 때 평안도 강계에 위리안치된다. 위리안치는 가시나무로 집을 에워싸서 안팎으로 누구든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고독을 정점으로 하는 성찰(?)의 형벌이다. 이때 읽은 책이 대학 책이라 하는데 비지備旨다. 비지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한 뜻을 채웠다’는 것이지만 여기에서 비지란 요지를 갖췄다는 뜻으로 ‘집주集註’에 관한 요지를 정리한 책이다. 14세 기말 중국 명나라 홍무洪武 연간 1367-1398에 활약한 생몰년 미상의 인물 퇴암退菴 등림鄧林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의 전거典據를 밝혀 사서비지四書備旨를 썼는데 송강 정철이 그중 대학 비지를 읽었다는 말이다. 참고로 비지에는 고주古注와 소주疏註를 별도본으로 달아놓기도 하는데 송강은 이중 소주疏註 별도본이 있는 비지를 읽었다. 워낙 많이 읽어 소주본은 다 외울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일어나던 해 사면이 되어 향리에 돌아와 비지를 다 못 외운 채 다음 해에 생을 마감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송강의 후손들은 노년에 이를수록 더욱 사서 읽기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는데 그의 현손 장엄丈嚴정호鄭澔에게 까지 이른다. 그는 송강의 장남 정기명鄭起溟의 후손으로 영조 때 대제학大提學
[용인신문] 아느 네스(Arne Naess)의 근본생태학(deep ecology)을 계승하고 확대, 심화시킨 드볼(Bill Devall)과 세션즈(George Sessions), 카프라(Fritjof Cafra), 스나이더(Gary Snyder) 등 근본생태론자들은 오늘날의 생태위기와 현대인의 자아 및 정체성 상실에 주목하고, 이것을 현대 문명의 쇠퇴 증후로 파악한다. 드발과 세션즈는 사람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은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생명중심적 평등(biocentric equality)을 지향하는, 유기체적 전체(organic wholeness) 또는 큰 자아(Self)라고 불리는 공동체에서 사람과 사람이 아닌 생명체들이 모두 동등한 중요성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머레이 북친(Murry Bookchin)을 개조(開祖)로 하는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은 생태위기의 원인을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 세계를 상품화하려는 시장 논리에 기인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기 때문에 사람이 지닌 지배 속성에 주목한다. 정치학에다 생태학을 접목시킨 사회생태학은 자연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분열을
개인용 옥상 김유미 꽃들은 지고 옥상이 떠오른다 저녁은 가만히 내려앉아 너를 잠재울 수도 너를 깨울 수도 있는 사물이 울 수도 사물이 웃을 수도 있는 질서를 꾸미고 나는 가만히 바닥을 뒤집어쓴 너를 집게가 물고 있는 빨랫줄의 성질을 익히고 있다 다 증발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때 소리치고 싶은 너는 너대로 울음을 물고 있는 집게는 집게대로 먼 세계를 끌어들여 희석시키고 있다 김유미는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다. 2014년 『시와 반시』로 등단했다. 이번 시집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처럼』은 그녀의 처녀 시집이다. 그녀의 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시편마다 복선이 깔려 있고 은유가 놓여 있는바 은유의 원관념을 찾아가기가 녹록치 않다. 「개인용 옥상」은 옥상이라는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 사물로써의 빨래집게와 빨래줄과 너라고 하는 시인의 분열된 자아 혹은 빨래가 있다. 개인용 옥상이라는 설정이 그녀만의 사유공간이거나 심리적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꽃이 지고 떠오르는 옥상에는 저녁이 내려앉는 시간이다. 그 옥상은 사물이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는 질서 아래 놓인다. 너의 의식을 잠재울 수도 깨울 수도 있기는 하다. 이때의 너는 시인의 분열된 자아다. 바닥
튀김과 밥의 ‘환상 궁합’ [용인신문]튀김! 단어만으로 여러 가지 맛있는 메뉴들이 상상이 되면서 침이 고이네요. 신발을 튀겨도 맛이 좋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재료가 뭐든 튀기기만 하면 맛이 배가되어 거의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데, 그 고소하고 맛있는 튀김을 밥 위에 올려 먹는 튀김덮밥, 텐동 맛집을 소개해 드릴께요. 튀김을 무척 좋아하지만 밥 위에 올려 먹으면 좀 느끼할 것도 같고, 덮밥이라 소스가 부어 나오면 눅눅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방문을 미뤘었는데 한번 먹어보고는 그 맛에 반해 자주 찾는 식당이 되었답니다. 상호는 ‘고쿠텐’, 보정동 카페거리에 있어요. 본점은 분당이고, 큰 인기를 얻어 용인 보정동 외에도 몇 군데 더 오픈해 성업 중인데 맛으로 인정받은 곳이라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 깔끔하고, 이국적인 외관이 돋보이는 ‘고쿠텐’은 완전 오픈 주방이고, 모든 좌석은 다찌석입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먼저 해야 해요. 메인 메뉴는 총 4가지, 고쿠텐동, 새우텐동, 장어텐동, 로우텐동이 있는데 튀김 구성이 조금씩 차이가 있으니 확인하고 원하는 메뉴로 고르면 됩니다. 주문 후에는 바로 자리에 착석해서 맛있는 텐동
[용인신문]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2017년 승격)에 위치한 어비리魚肥里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정겨운 고향이다. 본래 어비울(村)은 1971년 12월에 어비울 저수지(이동저수지) 제방이 완공되기 전까지 600여 년의 전통과 역사를 지닌 마을이었다. 지금은 원어비울元魚肥村 마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몰되어 경기도 최대 규모의 담수량을 자랑하는 ‘이동저수지’로 명명되고 있다. 어비리는 맑은 물이 흐르고 기름진 땅에서 해마다 풍작을 거두는 풍요로운 농촌 마을이었다. 세거가문인 강릉 김씨의 24세조 회와공 김언신은 ‘어동팔경魚洞八景’을 노래했는데, 그중 ‘어비낙조’는 현재의 ‘용인 8경’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저수지로 변해버린 지금의 모습은 저수지 수면과 황금 들판을 동시에 붉게 적시는 낙조의 황홀함으로 표현된다. 마을에는 수령이 500년은 족히 넘은 신수神樹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수몰로 잘려서 땔감으로 팔려나가는 비운을 겪었다. 그 흔적으로 마을에서 보관하던 뿌리마저 도난을 당해 사라졌다. 수백 년을 살아온 마을에는 대동大同의 전통이 살아있었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대동제大同祭가 해마다 열렸다. 집마다 축언을 하고, 천지 만물에 대한 감사함을 전
[용인신문] 지방자치실시 이후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주요 정책이 폐기, 또는 축소된다면 과연 누가 행정력을 신뢰할 수 있을까. 용인시는 아직 한 번도 재선 시장이 나온 적이 없기에 행정이 불안정해 보인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결국 행정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공무원들은 윗사람 눈치 보기에 바쁘다. 게다가 시민들이 보기에도 변별력이 없어 보이는 시정 구호를 때마다 바꿔댄다. 그 덕분에 정작 도시브랜드는 유야무야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도시 정체성이 4년마다 바뀌는 꼴이 됐다. 그러니 어느 누가 도시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며, 시정이념을 기억하겠는가. 도시의 정체성이나 도시브랜드는 그렇다치고 주요 정책조차 공론화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지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의 사업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력과 예산이 소요되는지 알면서도 여론수렴없이 만들었다가 폐기해 버린다면 과연 행정력을 신뢰할수 있을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반 기업과 다른 것은 정책의 안정감과 연속성에 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정책이 단체장 한 명 바뀌었다고 사라진다면 지방자치가 무슨 소용이 있나. 이는 자치단체 역사를 부
[용인신문] 송나라 사마광司馬光은 영종英宗의 명으로 편년체編年體 역사서를 편찬하여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 명한다. 그 책 71권 위기魏紀3卷 명제태화 太和4년 서기230년 5條에 난이진퇴難以進退라는 말이 나온다. 나아가기도 물러서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본래 사람은 세류에 머문 시간이 적을수록 ‘섭세천涉世淺’ 깨끗한 법인데 ‘점염역點染亦淺’ 그마저도 염천인染淺人 보기가 어려운 게 작금의 세태다. 맹자는 이루장구하離婁章句下23문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될 때 받으면 청렴은 손상될 것이며, 줘도 되고 주지 않아도 될 때 주면 은혜는 손상될 것이다. 청렴과 은혜를 통치 덕목으로 삼았던 인물이 있는데 노魯나라 제15대 군주 환공桓公으로 그에게는 유좌지기宥坐之器의 고사가 있는데 공자孔子가 노魯 환공桓公의 사당을 둘러보는데 바로 서지 못한 채 넘어지듯 한쪽으로 기운 그릇이 있어 물으니 사당지기가 답한다. 이것이 바로 유좌지기라는 겁니다. 이에 공자가 말한다. 그렇다. 가득 채우고도 기울지 않는 것이 천하에 있을까마는 나도 유좌지기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비면 기울고 중간쯤 차면 바르며 가득 차면 엎어진다. 이에 자로子路가 가득 채우고도 지키는 방법을
[용인신문] “주변이 주변인 것은 상황이 변했는데도 자기를 억압하는 기존의 위계를 스스로 고수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중심과 주변이 어디냐갸 아니란 것이다.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사라져가고, 유동적이다. 중심이든 주변이든 내외부의 시선보다 내부에서의 생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용인은 이제 서울의 주변도시가 아니다. 용인시 최대의 면적을 점유하는 처인구도 주변구가 아니다. 선거철 마다 ‘일류 수지’라고 찬사를 보내(?)는 낙하산 후보들의 낯뜨거운 구호에 전국구 스타를 만들어 줬던 수지구도 용인의 외곽이 아니다. 1973년 10만에 불과했던 용인은 2002년 50만의 중소도시로 성장했다. 팀 마샬의 주장대로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땅’에 의해 형성돼 왔다.” ‘생거용인’의 마음으로 들어 와 살기 시작한 용인의 가치는 현재형이자 미래형이다. 그러므로 2017년 백만을 돌파한 대도시로 성장한 용인을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는 이분법 자체가 시대 착오이다. 사람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니 지금, 용인시야말로 발상의 전환, 그것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해볼 수 있는 막바지 기회다. 1789년 혁명이후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