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전 인조반정때 종갓집 피난… 처인구 능원3리에 뿌리내려 [용인신문] 처인구 모현면 능원 3리는 연안이씨 종갓집과 저헌(樗軒) 이석형(1415~1477) 선생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석형 선생은 조선 세종대에 과거시험에 3장원한 집현전의 학자이며 성삼문, 신숙주 등과 함께 8대 문장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이석형 선생의 집안이 이곳에 터를 잡게 된 것은 조선 인조반정 때부터였으니 400년 전통이다. 연안이씨 18대 손으로 능원 3리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이문자(81) 선생은 “인조반정 때부터 400년”이라며 “실패하면 3족을 멸한다지 않았어요. 후손이 이곳으로 피난을 온 거에요. 원래 종갓집 터는 여기(문강재실 소재지)가 아니었어요. 여기는 문강재가 세워지기 전 희귀본과 책을 많이 보관하고 있는 서재가 있었고 공부를 하던 곳이었어요. 따라서 서재골이라 불렸어요. 여기는 마을이 없던 것 같아요. 삼거리 모현농협 능원지소 자리가 원래 집터였어요. 할아버지가 3살 때 큰 불이 나서 여기로 집을 짓고 옮겼대요. 내가 어렸을 때는 시작골, 새작골 그랬어요. 왜 그런가 족보를 보니까 서재골에다 다시 종가를 지었다고 나와 있더군요”라고
[용인신문]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국토부에 집값 안정을 주문하면서 도시재생 뉴딜사업 확대를 강조했다. 이는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긍정적 시그널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이후 40~50년이 지나면서 도시 노후화 현상이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뉴시티를 비롯한 아파트 재개발사업이 뜨거운 감자가 된지도 오래다. 무엇보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발생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의 사회문제화로 갈등 양상도 심각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어원은 상류사회 계층인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되었다. 1964년 영국에서 특정 도시를 고급스럽게 변화시키는 젠트리파이(gentrify)과정에서 발생한 주거지의 고급화 현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시재생 과정에서 도시의 원주민들이 내몰리고 중산층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부정적인 말로 변용되어 쓰이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은 노후한 도시를 물리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까지 개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제는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도시의 활력을 되찾자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기존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부작용이 속출, 도시재생사업이 기존
[용인신문] 용인시처인구선거관리위원회 지도주무관 김규현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고 있지만 민족의 명절인 설을 앞둔 시점이면 모두가 설레고 바쁘다. 오랜만에 고향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안부인사도 드리고, 만날 약속도 잡아야 하며, 명절에 심심하지 않게 선물도 준비해야 한다. 또 효율적으로 명절을 보내기 위해 여행 계획도 잡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쁘지만 특히나 명절에 더 바쁜 직종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치인’이다. 흔히 ‘명절 밥상머리 인심’이라고 할 만큼 명절 밥상에 얼마나 오르내리고 가족들의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그 해를 넘어 가까운 공직선거의 지지율과 당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명절에 유독 촉각을 세우고 자신들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각인시키면서 선거를 준비하려는 나름의 전략을 세운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의 명절 특수효과를 위한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주로 유권자들에 대한 인사와, 사회 취약계층을 향한 기부가 있다. 기부의 미담 사례가 간간이 들려오는 요즘 기부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선거에 있어 기부는 매표행위로 연결될 여지가 있기에 공직선거법에서는 정치인의 기부행위를 상시 제한하고 있다.
[용인신문] 안녕하세요. 기흥구 하갈로122에 위치한 우주어린이집입니다. 보육활동 중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산책이나 바깥놀이는 아이들 성장에 꼭 필요한 활동으로 매일 하도록 돼 있습니다. 다행히 지자체의 노력과 수고로 주변 하천과 호수공원이 잘 가꾸어져 아이들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하지만 코 앞에 있는 좋은 환경을 실제로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산책과 공원을 이용하려면 길을 건너야 됩니다. 어린이집 앞에 횡단보도와 좁은 인도가 있지만, 사실상 사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 인근에는 대형 물류창고. 재활용업체 등이 많이 있어 초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다니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앞 횡단보도 건너에 있는 좁은 인도는 큰 차들로 인해 사실상 인도와 차도 구분이 어렵고, 좀 더 나은 건널목을 건너려면 횡단보도 없이 무단횡단을 하게 돼 안전은 물론, 아이들 교육에도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과 바른 교통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어린이집 건너편 인도에 산책로까지 안전하게 이동 할 수 있는 안전봉을 설치 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무엇을 심어도 되겠지 심을 수 있는 마당 새로운 날씨가 된다면 새로운 곤충이 온다면 심을 수 있는 마당 돋아나는 나물을 심고 그 나물 속으로 내 발자국과 현기증이 들어간다 심을 수 있는 마당 내 방을 심고 우주본도 심었다 파헤쳤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계속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태운은 1986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201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시인의 말에서 “시작, 하면 다들 흩어질 것이다/ 그래 흩어져서 각자 시를 써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무슨 일이었을까/ 그건 어떤 일이었는지/ 문득 의아해지고/ 그러니까 어떤 마음이 흘러가고 있었을까/ 어떤 풍경이// 거기서 다시 시작해보려고”라고 쓰고 있다. 흩어져서 각자 시를 쓸 것이지만 시를 쓴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어떤 마음이 흘러가는 것인지 의아해지지만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게 시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 쓰기의 지난함이 엿보이는 문장이다. 「심을 수 있는 마당」은 심리적 공간이다. 날씨도 심고 곤충도 심을 수 있는 마당이니 그 심리적 공간에 나물이 돋아나면 발자국과 현기증이 나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 공간에 화자의 방도 심고 우주본도 심었다 파헤칠
[용인신문] 입춘이면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고 써 붙이는 글귀가 있다. 지금도 가끔 상점이나 대문에 붙어 있는 걸 보면 어릴 적 뛰놀던 주택가 골목이 생각난다. “새봄이 시작되니 상스럽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번 겨울은 이동을 못해서 그런지 유난히 길고 지겹게 느껴진다. 어서 봄이 와서 꽃망울 차례로 터지는 구경이라도 하고싶다. 봄을 세우고 싶다. <본지 객원사진기자>
[용인신문] 노나라 25대 군주 소공은 19세에 권좌에 올랐으나 하는 짓마다 백성들 눈 밖에 났다. 결국 계손씨에게 쫓겨나 제나라로 도망하여 간신히 연명하던 어느 날 제나라 군주 경공이 찾아와 담소하던 중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소.”라고 물으니 소공이 “현자를 버리고 우자를 거뒀기 때문이지요”라며 “군주 노릇 할 때는 현자가 안 보였고, 모든 것을 잃고 나니 비로소 보이더군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잘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쯤 듣고 나니 경공은 노나라 소공이 측은하기도 하고, 또 많이 깨달은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노나라로 돌려 보낼 요량으로 재상 안자에게 의향을 물으니 안자가 펄쩍 뛰면서 말한다. “본디 어리석은 자들은 일을 그르친 뒤에야 큰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 마치 크게 깨달음이나 얻은 듯 그럴싸한 말들을 하곤 합니다. 권좌에 오르면 방탕 하느라 백성을 돌아보지 않으며 권좌를 잃으면 저 살 궁리하느라 또 백성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런 자들은 다시 돌아간들 현군은커녕 뭔들 제대로 하기는 이미 글렀습니다”라고 반박했다. 재상 안자의 독설에 군주 경공은 노소공을 내쳐 결국 망명지의 객으로 생을 마감한다. 군주 노릇을 한다는 것은 제 한몸 살자고 호위호식
[용인신문] 필자는 신학생 시절부터 현장에서 교회를 섬기는 담임 목회자였다. 외조부, 외조모로부터 이어받은 기독교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친가는 철저한 유교 집안이었다. 그 갈등 속에서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이혼을 했다. 그 과정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정신적, 정서적, 육체적 학대를 당했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남달리 강하고 열정적이었다. 신학 과정을 공부한 후 현장 목회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전인적으로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정 사역, 목회 상담학, 치유신학 등을 공부하면서 직면한 성도들과 수많은 내담자의 숨겨진 깊은 상처들을 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이해와 공감과 자비의 사랑으로 그들을 섬기게 되었다. 마치 설교는 상수도와 같은 기능을 하였다. 구원받는 성도, 변화되는 성도, 치유되는 성도 등 많은 열매가 있었다. 동시에 가정 사역, 상담, 치유 등은 하수도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십 년이 훨씬 지난 어느 날 밤, 새벽 1시가 조금 지나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직감적으로 큰 사고가 났거나 심각한 상담 전화일 것으로 생각
[용인신문] “6·25전쟁은 전쟁도 아니다”라는 유머 아닌 유머가 있었다. 학생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를 못하고, 확진자가 생기면 직장이고 사업장이고 모두 폐쇄조치를 한다. 밖에 나가면 불안해서 볼일도 채 못 보고 서둘러 돌아오는 이 사태는 정말 사변 중의 사변이라 할 수 있겠다. 운동하지 않으면 몸이 굳어지는 우리 장애인들의 상황은 더욱 안타까웠다. 공원에도 출입금지 줄을 쳐놓았다. 살다 살다 이런 경우를 만나다니 집에서도 소독은 필수, 밖에서 들어오면 현관에서 분무기 소독세례를 받아야 들어 올 수 있다. 그래도 연일 뉴스는 우리를 우울하게 하고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다.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뇌 병변 편마비 장애인인 나는 의욕도 입맛도 없어져 굶기를 밥 먹듯 하며 어서 하늘나라로 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집에만 있으니 우울해져서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는 가족들의 제의에 나가기 싫다고 주저앉는 나를 달래는 진풍경 속에 가족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나가도 불안하고 집에 있어도 답답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어이없는 현실을 이겨 나갈 길은 어려웠다. 마스크 잘 쓰고 집에 들어오면 손 잘 씻으면 괜찮다고 외출을 권하는 바람에 차를 이용해 산책했다. 더 힘
[용인신문]
모현서 태어난 조선시대 대학자 백과사전 문집 ‘문통’ 역작 저술 시장 바뀌며 ‘가치 재조명’ 외면 [용인신문] 태교신기를 쓴 사주당 이씨가 낳은 천재 아들 유희(柳僖1773-1837). 용인시는 사주당 이씨가 쓴 역작 ‘태교신기’를 스스로 걷어찼다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그의 아들 유희 선생 역시 중요한 역사 인물임에도 용인시에서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본보 1269호 1면 실제 용인시에서는 묘역 외엔 별다른 연고가 없는 정몽주를 비롯 여타 인물들에 대해서도 해마다 크고 작은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용인 출생으로 대학자인 유희 선생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학계에서는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실학자이며 음운학자인 유희가 용인 출신이라는 점과 어머니 사주당 이씨와 함께 용인에 잠들어 있다는 점을 소중한 문화유산 콘텐츠로 꼽고 있다. 그간 용인시에서 사주당 이씨의 태교신기를 콘텐츠로 한 ‘태교도시’선포 사업은 앞으로 학계에서 새롭게 조명 될 유희 선생을 염두에 둔 전초전이었다. 그럼에도 용인시는 단체장이 바뀌면서 사업의 연계성을 상실, 타 지자체에 주도권을 빼앗기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용인시 처인구 모현에서 태어나 모현에 잠
경기도기념물 제44호 [용인신문] 풍전등화의 고려를 구출한 처인성. 처인성은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으며 둘레 425m, 높이 3~6m 가량의 작은 평지토성이다. 처인성은 당시 거침없이 유라시아를 재패하던 몽골 2차 침입시(1232) 적장 살리타이를 사살하면서 승전고를 울린 유서 깊은 항쟁터다. 그러나 그동안 처인성의 위치가 맞느냐 아니냐를 놓고 오랜 논의가 있어왔다. 논의의 시발은 1990년대 말, 본보가 처인성이 산성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데서 비롯됐다.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의 ‘고산성’ 표시를 근거로 한 주장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위치비정 문제가 확실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용인신문은 그 후에도 한국지명총람의 자료를 근거로 해발 238.9m의 산성임을 주장하는 등 간간이 관련 자료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국지명총람 기록대로 답사해보니 남사면 아곡리, 북리, 완장리 경계지점의 ‘십자봉’ 정상 부근은 한눈에 봐도 천혜의 요새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용인신문이 고지도 등 문헌을 찾기 시작한 이유는 당시 몽골의 기세를 꺾기에는 야트막하고 조그마한 평지성이 과연 가능하겠냐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같은 의구심이 가능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