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개울가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 [용인신문] 신봉동 외식타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뷰 맛집이 있습니다. 커피 맛집이기도 하구요. 상호는 ‘코나 헤이븐’. 언제 오픈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2013년도에 처음 방문했으니 적어도 8년여, 신봉동 외식타운에서 장수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네요. 외식타운의 수많은 식당, 카페 중에 제일 안쪽, 계곡과 바로 맞닿아 있어 접근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커피 맛 좋기로 소문나 평일에도 커피마니아들로 제법 북적이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인기 많은 데이트 코스가 되어 주말에는 더 많이 복잡하답니다. 특히 더운 여름철에는 바로 앞 개울가에 시원하게 발을 담그기도 좋고, 바로 인접한 계곡에서 온 가족이 시원하게 더위를 피할 수 있어 수지 근방에서는 최고의 인기 카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광교산 등산로 입구여서 등산객들도 오며 가며 들릴수도 있답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곳이니 여름철 주말, 특히 방학 때는 그 인파가 상상 이상이라 평소에는 여유 있는 주차 공간이 완전히 다른 모습이니 감안해야 합니다. 나름 분위기 좋은 실내에서 향기로운 커피 한 잔도 좋지만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형용욱 국민연금공단용인지사장 [용인신문] 코로나19 2차 예방접종을 코앞에 두고 있는 나는 지금껏 감염 예방을 위해 인내하고 행동을 조심해 왔는데 접종 이후에는 일상생활에서의 불안감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연초만 하더라도 언제쯤 나에게 접종 기회가 올까? 그사이에 감염되면 어쩌지? 등 걱정이 많았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며칠 전에는 우리나라도 2차 접종을 마친 국민에게 추가 접종하는 이른바 부스터샷을 고려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초에 느꼈던 걱정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 접종을 받지 못한 사람이 일부 있지만 추석 전에 전국민의 70%까지 1차 접종을 마치겠다는 정부의 계획이 나오는 등 백신 접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은 지인들이나 직원들과의 대화 내용 일부가 백신접종 이야기다. 1차 접종 후에 조금 아팠다는 친구, 아프지 않았다는 직원, 열이 나고 몸살이 심했다는 동료 등 다양한 형태의 경험담이 이야깃거리가 되고 개인적으로는 추석을 앞두고 있기에 오랜만에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들을 만날 생각도 해 본다. 마스크 착용 및 생활 속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을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냥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
[용인신문] 용인시는 현재 기흥구 분구 추진에 대해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도 찬반논란이 생길 정도로 민민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용을 보니 찬반 모두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분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흥구 인구(44만명)가 처인구(27만명), 수지구(38만명)는 물론 웬만한 도시보다도 많아서일까? 인구가 많으면 주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분구가 되면 과연 지역이 발전할까? 화성시(89만명)와 남양주시(72만명), 평택시(56만명)는 일반구 설치가 가능하지만 아직까지도 구제를 실시하고 있지 않다. 서울의 경우 송파구(65만명)를 비롯하여 인구 50만 명 이상인 구가 5곳이다. 부천시(84만 명)의 경우는 구청을 자진해서 폐지한 후 책임 읍‧면‧동제를 거쳐 광역동제를 운영하고 있다. 경남 창원시의 경우도 1997년 인구 50만 명을 달성하여 법적 요건을 갖추었으나 그대로 유지하고, 마산시, 진해시와 통합한 2010년 6월까지는 분구를 하지 않았다. 분구를 함으로써 나타나는 비용은 천문학적이 될 것이다. 인력(공무원) 증가는 물론 구청, 보건소 등 신축과 확보는 모두 세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잖
[용인신문] 아침 7시에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고, 24시간 식사가 가능한 곳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빙 로봇이 최소 85cm의 평평한 바닥이 보장만 되어 있다면 근무를 기피하는 새벽 시간이나 바쁜 점심 저녁 한두 시간도 거뜬히 일해낼 수 있다. 사실상 24시간 근무 가능한 인력이 상시 대기 중인 것이다. 주문은 테이블에서 태블릿으로 하고 서빙모드 ‧ 크루즈모드 ‧ 퇴식모드 ‧ 이벤트모드를 장착한 로봇이 생일축하곡까지 불러주니 이젠 식당에서 ‘여기요’~‘이모님~’ 소리는 곧 사라질 것 같다. <본지 객원 사진기자>
[용인신문] 정치, 경제, 사회 이야기로 뉴스가 시끄러운 사이에도 하늘은 기어코 가을을 품었다. 수확의 계절답게 추수된 작물들이 마트에 진열되었다. 그런데 ‘국내산’을 달고 있는 열대 작물들도 간간이 보인다.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먹거리들이 이렇게 우리나라에서도 재배된다는 건 두 가지다. 종자가 수입되거나, 종묘가 수입되거나. 종자산업의 중요성을 국내에 알리기 위해 씨없는 수박을 소개했던 우장춘박사도 있었다. 인류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종자산업은 인류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를 준비하는 것이라 중요하다. 필자는 경제성 때문에 작물의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다보니 시시각각 변하는 지구 환경에 종자들이 적응하지 못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한다. 종자를 저장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제적 노력의 결실이라고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노르웨이 농업식품부, 북유럽 유전자원센터(스웨덴 알나르프), 세계작물다양성재단(독일 본)과 협력한 비영리 국제 협력 시설이다. 언제라도 폭설을 만날 수 있고, 한가롭게 유모차를 밀며 산책을 하더라도 북극곰을 걱정해 총을 들고 다녀야 하는 도시 스발바
처인구 문수봉 ‘문수샘’이 발원지 경안천 명칭 광주 경안동서 따와 대동여지도에 ‘우천’ 일제 ‘김량천’ 과거엔 주민들 ‘금령천’으로 불러 최근 정체불명 호칭 정체성 위협 [용인신문] 물은 생명이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물줄기를 중심으로 모였고, 그곳에서 삶과 공동체 문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런데 급격한 도시화로 물줄기가 바뀌었고, 아름다운 소하천들은 명칭조차 사라져가고 있다. 심지어 국가하천에 가려진 지방하천과 소하천의 존재는 명칭조차 희미해져 가는 상황이다. 하천명을 통한 ‘지역 정체성 찾기’와 하천 이름 기억과 불러주기 운동으로 ‘지역공동체 회복’을 제언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하천 이름=지역 정체성 ‘논란’ 용인시에 맞닿은 안성시와 평택시가 최근 들어 하천 이름 변경을 놓고 첨예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평택시가 ‘안성천’ 명칭을 ‘평택강’으로 변경하겠다고 선포하면서 안성시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평택시는 지역 정체성 찾기 일환으로 시민여론을 수렴, 환경부에 정식으로 명칭 변경을 건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달엔 ‘평택강 민·관·정 간담회 및 선포식’까지 마쳤다. 안성시민들은 즉각 명칭 변경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안성시이통장협의회는 기자
[용인신문] 오랫동안 난관에 부딪혔던 수원IC 명칭 변경이 수원‧신갈IC로 변경된 지 5년이 지나갔다. 용인시민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지만 주무 기관인 한국도로공사는 IC 명칭 변경 건만 나오면 각종 이유를 들어 반대했었다. 하지만 정치권 인사들이 나서서 도로공사 사장 등을 설득한 결과, 지역명을 함께 적는 조건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용인시민들은 경부고속도로 용인나들목(IC)이 용인 땅에 있으면서도 수원IC라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정치인들은 IC 명칭 변경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울 정도였다. IC 명칭 변경은 도로교통 행정문제라기보다는 정치와 힘의 논리가 더 크게 작용했다. 당시 모 의원은 노골적으로 한국도로공사 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웠고, 적당한 여론몰이와 함께 일사천리 진행했다. 명분은 용인시의 정체성 회복 운동 차원이었다. 여하튼 용인시민들은 절반의 성공에도 큰 박수를 보냈다. 이어 기흥구 상하동 용인효자병원~구갈레스피아 간 하천 명칭을 ‘수원천’에서 ‘상하천’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또한, 신갈동을 관통하는 ‘오산천’을 ‘신갈천’으로 바꾸는 데도 일조했다. 돌아보면 정치권과 행정력, 시민들의 응원이 하나 된 결과였다. 그런데 최근 평택시가 안성천을 ‘
[용인신문] 용인시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죽전 디지털밸리는 넓은 부지만 남긴채 버려지고 있습니다. 근처에 판교가 있고 용인시에서 준비하는 플랫폼시티가 있는데, 죽전 디지털 밸리에 기업이 들어올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죽전지역의 지리적 이점과 부지의 면적를 고려해보면 대형 쇼핑몰로서의 입지는 경기도 내에 최고라 생각됩니다. 부지만 남아있는 디지털 밸리. 회생 가능성도 회생 의지도 없는 작금의 실태를 보면 부지 용도 변경을 통해 대형 쇼핑몰을 유치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양시와 인근 안성, 수원, 하남시 등 용인보다 인구가 적거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스타필드가 생기거나 생길 예정인것을 보면, 죽전의 사업성은 충분히 높다고 판단됩니다. 대형 쇼핑몰 유치를 통한 상시 근로자의 유입과 내점하는 관광객의 수요만 하더라도 용인시가 추진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용인신문] 도마가 묻는다. “그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에 예수는 천고에 길이 남을 답변을 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도마의 우문에 대한 예수의 현답인데 정작 도마는 깨닫지 못한다. 예수 부활 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결과는 그악스러웠고, 도마는 의심의 아이콘으로 낙인 찍힌다. 당시의 도마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이지만 그는 생전의 예수를 따르면서 예수의 모든 말씀을 들었고, 예수의 모든 기적을 보았다. 그런 그였지만 단 하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 있었는데 죽은자가 살아난다는 부활의 신앙이 없었다. 그의 의심의 정도를 사도요한은 그의 고백을 토씨하나 안빼고 그대로 기록한다. 내가 내 눈으로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3년을 동고동락한 스승을 향해서 세상에 이보다 더 지독한 불신이 충만 탱천한 말이 또 있을까(요한복음20:25). 그런 일이 있은지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도마와 함께 집 안에 있을 때 문이 닫혔는데 부활한 예수가 나타난 사건이 있다.
[용인신문] 작고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2년 무렵 와인을 오랫동안 즐겼다고 소개되면서 와인붐이 일기 시작했다. 마침 국민소득도 증가한 때였다. 다가오는 추석 선물 세트에 2000만 원짜리 ‘보르도 5대 샤토세트’가 등장할 만큼 와인은 술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전통적 수입 주류 1위였던 맥주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만큼 추석 연휴에도 ‘혼술’과 ‘홈술’의 사랑을 듬뿍 받는 술이 될 것 같다. <본지 객원사진기자>
[용인신문] 요즘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뜻하는 이 말은 이중적인 평가의 잣대를 비틀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최은영의 『밝은 밤』은 전혀 반대의 이야기다. 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현재의 나를 돌보지 못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증조모는 차별과 의무 때문에 위안부로 끌려갈 위기에 있었다. 그런 증조모를 구한 증조부. 그러나 증조부의 정의감은 위선이었다. 자식을 키워내느라 증조모 삼천이 밷어내지 못한 슬픔은 영옥을 지나 미선에게, 그리고 현대를 사는 지연으로 이어진다. 삼천은 딸인 영옥을 위해 견뎌야 했고, 영옥은 또 그 딸을 위해 견딤의 시간을 보내야 했으며, 엄마 미선 역시 자책감으로 딸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당당하지 못하다. 그런 슬픔들이 유전되어 지연의 삶 역시 운명적으로 얽혀 있다. 이들은 딸들을 키워내기 위해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엄격해야 했다.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정작 고개를 낮추고 숨죽여 살아야 했던 슬픔. 삼천의 가족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은 새비 아주머니네 가족의 등장으로 지연 일가의 슬픔은 더욱 굴곡져 보인다. 새비 아주
사랑 김수영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김수영(1921~1968)은 서울 관철동에서 출생했다. 선린상고를 졸업한 후 일본에 건너가 1941년 동경상대 전문부에 입학했으나 1943년 학병징집을 피해 귀국했다. 이듬해 만주 길림성으로 이주해 길림 제육고 교원으로 일했다. 광복이 되자 귀국해서 연희대 영문과 4학년에 편입했으나 중퇴했다. 1945년『예술부락』에「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하며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1949년에는 김경린, 박인환 등과 합동시집『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소시민적 비애와 슬픔을 모더니즘적인 감각으로 펼치다가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현실에 대한 비판과 민중의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참여시로 바뀐다. 김수영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회통하는 자리에 시의 세계를 완성하고 있다. 「사랑」의 화자는 너로 인해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운다. 그러나 너의 얼굴은 불빛이 켜지는 찰나에 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