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소문난 잔치 망건 팔더라고? 지금 강호는 차기 대권을 누가 거머쥐느냐로 생난리가 났다. 이제 팔 십여 일만 지나면 누가 되는 그중에 한 명은 대통령이 된다. 남아로 태어나 나이가 스물이 먹도록 나라를 평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누군들 나를 남아라 하겠는가. 이십 중반 나이에 느닷없는 모함으로 비명에 횡사로 남이장군이 썼다는 시구인데 이게 어찌 스물 갓 지난 약관 선비의 붓끝에서 나온 경구라 하겠는가. 그야말로 으리으리한 호연지기라 하겠다. 이십 대 중반 나이에 병조판서를 지냈다는 남이南怡로 말할 것 같으면야 17세에 무과 장원급제하고 이시애의난을 평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썼다는 북정가. 예종 원년 1468년에 역모로 간신배들의 낡은 것은 없어지고 새것이 펼쳐질 징조라는 제구포신지상除舊布新之相에 죽어갈 때까지 숨 가쁜 일생이었으리라. 조선 개국공신 전 영의정 남재南在의 현손이요 태종대왕의 부마인 의산군 남휘南暉의 손자요 아버지 군수 남빈에 이르기까지 왕족 대우를 받았다 하니 그야말로 조선사에서 몇 안 되는 명문 중의 명문의 손이다. 어디 이뿐이랴 한명회. 신숙주. 권람. 수양대군 3걸로 불린다는 그중 장인이 권람이라는 데야. 그러나 일찍 피는 꽃이 빨리
[용인신문] 현재 처인구는 기흥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국도 42호선 우회도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버스노선이 개통조차 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최근들어 Y버스가 투입되었지만, 이는 출퇴근용 노선버스라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회도로를 이용하면 기흥역까지 소요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재 명지대학교는 학교에서 기흥역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는데, 편도로 15분 만에 기흥역에 도착합니다. 현재 운행중인 시내버스가 30~40분이 걸리는 것에 비하면 매우 빠른 시간입니다. 현재 동백~분당을 연결하는 마을버스 810번도 자동차전용도로와 유사한 도로를 경유하여 분당, 죽전까지 운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흥역~처인구(용인터미널)행 노선도 충분히 운행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용인터미널에서 기흥역까지 20~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마을버스 또는 일반버스 노선의 신설을 강력히 요청드립니다.
[용인신문] ‘불장’으로 치닫고 있는 국내 경매에서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pumpkin.1981)이 54억 5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패턴을 활용해 리드미컬하고 유머러스한 매력을 담아내 관람객들로 하여금 위로와 평화를 느끼게 한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야외조각공원과 아트테인먼트 리조트 파라다이스 시티의 로비에 전시되어있다. 마스크만 쓰고 가면 공짜로 힐링할 수 있다. <본지 객원사진기자>
[용인신문] 맹자 이루-장구 하편에 “군주가 죄 없는 백성을 죽이는 일이 있다면 선비는 주인을 바꾼다”고 했다. 시경 관저편엔 ‘언자무죄言者無罪 문자족계聞者足戒’라는 말이 있다.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나니 듣는 사람이 경계로 삼으면 족하다”라는 말이다. 논어 양화 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선비가 덕을 버리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길에서 들은 것을 길에서 말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저잣거리의 말을 확인도 안하고 옮겨 대면 안 된다는 경책이다. 그럼에도 예외조항을 두는데 시詩가 그것이다. 논어 위정편의 기록은 이렇다.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생각에 삿됨이 없다. 사람 살이에는 크게 두 개의 줄기로 나뉜다. 오늘만 살 것인가, 내일 저 너머에까지 살 것인가. 논어 위령공편의 기록은 이렇다. 군자는 죽기 전에 명성을 알리기를 원한다. 그런데 400년 후 사람 사마천은 죽기 전의 명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죽은 다음날 아침에 있을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서만 걱정한 인물이다. 보임안서報任安書는 이렇게 심정을 밝힌다. 내가 구차하게 살기 위해 더러운 감옥에 갇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까닭은 비루하게 죽어 후대에 나의 글이 드러나지 않을까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달달한 크리스마스 딱이네~ [용인신문] 수지구 성복동 안쪽 깊숙하게 자리 잡은 아담한 카페 로가든. 갖가지 케이크가 너무 맛있는 꼭꼭 숨은 케이크 맛집입니다. 가까운 주민분들에게는 소문나 인기 많은 카페지만 위치가 좀 어려운 곳이라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열심히 소문내서 여러분들이 다녀가셨는데 모두 흡족해하셨어요. 요즘 새로 오픈하는 카페들처럼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화이트 톤의 실내에 무심히 놓아둔 듯한 화분들 하나하나가 모두 잘 어울리게 배치되어 세련되고 편안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머무는 내내 편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커피와 다양한 음료들도 눈과 입을 둘 다 만족스럽게 만들어 주시는데 특히나 꾸덕꾸덕 진한 망고 스무디는 최애 메뉴! 케이크는 6~7가지 정도이고,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지는데 종류는 모두 20여 가지. 맛본 케이크들이 너무 마음에 들어 모든 종류의 케이크를 다 맛보고 싶어졌어요. 일반적인 부드러운 시트의 케이크도 진짜 맛있었지만 로가든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묵직한 시트의 바닐라 갸또는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외에도 단팥 설기, 쑥 절미, 백설기 케이크처럼 독특한 로가든만의 케이크들이 많아 어떤 케이크를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한
[용인신문] #장면 1 현종 12년(1671) 함경도 관찰사 약천 남구만은 기근이 들어 민초들이 굶어 죽게 되자 조정에 장계를 올려 임금의 윤허를 받아 강원도·평안도의 곡식과 영남지방의 쌀을 얻어다 구제했다. 또한 변방의 궁벽한 곳의 성과 보루를 두루 돌며 정비하고 이를 손수 지도로 제작했다. 약천 선생이 임기를 마치고 조정으로 돌아온 뒤, 함경도 백성들이 약천 선생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생사당(生祠堂)을 세웠으며, 1711년 세상을 떠났을 때는 함경도 백성 7000여 명이 함흥에 모여 통곡하였다. #장면 2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으로 영의정이 되어 조정으로 복귀한 약천 선생은 일본의 간교한 울릉도와 독도 침탈 계략을 간파하고 “왜인들이 울릉도에 거주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강토를 어떻게 남에게 줄 수가 있겠습니까?”고 건의하여 숙종의 명으로 ‘울릉도와 독도는 엄연히 조선 땅이므로 다시는 이곳에 귀국 사람들이 침범하지 말라’는 강경한 서계를 써 보냈다. 이듬해 대마도 도주는 다시 서계를 고쳐 달라고 청해왔으나, 약천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지난 11월 27일 ‘2021 약천 남구만 문학제’를 마쳤다. 용인문학회는 2009년부터 약천 선생의
나는 약해 이근화 고작 숲이야 고래야 발이 젖었어 나는 버스야 굴러가는 바퀴야 알록달록해 나는 언제나 나는 그러나 쓰러지고 말거야 기어가고 말거야 집이 잠긴다 창문이 녹는다 골목길이 터진다 나의 실핏줄이 파도야 흘러가는 봄이야 멈추지 않는 손이야 감기지 않는 눈이야 이근화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시 언어의 혁명적인 가능성을 조용하게 밀고 가며 독특한 발상과 낯선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평을 듣는 시인이다. 「나는 약해」 또한 그녀의 독특한 발상과 낯선 화법으로 쓰여진 시다. 첫 연의 숲과 고래와 젖은 발은 서로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걸 연결하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이다. 둘째 연으로 미루어보면 나는 고작 숲이고 고래고 젖은 발을 가졌다고 읽어도 될 듯하다. 다음 연은 나는 버스고 굴러가는 바퀴고 알록달록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고 읽힌다. 나는 언제나 숲처럼 조용하고 고래처럼 젖은 발이지만 그러나 나는 쓰러질 것이고 기어갈 것이다. 나는 집을 향해서 그렇게 할 것이지만 집은 잠기고 있다. 창문은 녹고 있다. 집이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의 집은 실제의 집은 아니다. 언어의
[용인신문]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내러티브의 도서이다. 저자는 “우리네 삶에는 또라이 외에도 생각해야 할 게 숱하다”(255쪽)라고 말한다. 맞다. 대부분의 사람은 특정인에게 ‘또라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모든 미움을 깔때기로 모아 자신의 똘끼까지 얹어 미워한다. 하지만 “세상에 또라이 말고도 눈물을 흘려야 할 대상이 수둑룩”(255쪽)하다고.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또라이 무리의 하나이니 그로부터 빨리 도망치라고 말한다. 가능할까 싶은 대안들이다. 주어진 일과 환경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마음대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그리고 어른이 되었지만 정작 그러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방황한다. 주류를 마실 수 있는 풀밭으로? 한강에서 사건 사고가 많아서 이런 말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놀이동산으로? 아니면 방구석에 앞뒤로 찍기를 반복하며……결혼을 하면 드디어 집중할 일이 생긴다.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이 『불안한 사람들』에 말한 것처럼 갓 돌을 지난 리트리버처럼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은 아이가 생기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애를 안 키우는 부부도 많던데…. 구체적인 파이팅 파트너가 생기는 것도 새로운 관심사지만 그마저도 현대의 바쁜
[용인신문] 용인시가 잇따라 천문학적인 재정 투자를 강행, 제2의 경전철 사태 우려를 낳고 있다. 정부도 지방자치단체에 민간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용인시는 유독 재정 투자에만 몰두하는 등 폐쇄적 재정운영을 하고 있다. 특히 논란이 되었던 장기 미집행 공원 용지인 ‘신봉3근린공원’까지 부채까지 얻어 막대한 재정 투자를 강행해 비판을 받고 있다. -편집자 주- # 경전철, 민자에서 재정 ‘자초’ 민선 1기부터 시작한 용인경전철. 민자유치 사업이었던 경전철은 국내외 민간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투자했다. 전국 최초의 경전철이라는 희망의 수식어가 붙었지만, 이후 혈세 낭비의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민자로 시작했지만, 현재 공영화 요구 여론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2011년 당시 김학규 전 시장은 경전철 개통을 앞두고, 안전 등의 이유를 들어 준공검사를 반려했다. 급기야 30년간 민간위탁 운영을 맡았던 시공사 캐나다 봄바디어사와는 계약까지 해지했다. 아울러 시는 국제중재재판소까지 가서 시행사에 거꾸로 배상금 8000억 원대를 물어주라는 패소 판결을 받아왔다. 시가 자초한 경전철 부채는 원리금만 8211억 원. 문제는 그 이후 다른 업체에 경전철 위탁운영을 맡겼지만
[용인신문] 민선 1기부터 민자유치로 기획된 용인경전철 사업은 중간에 취임한 민선 시장들의 잘못된 정책판단과 아집으로 1조 원대의 손실을 초래했다. 그 영향으로 용인시는 지금까지 매년 수백억 원의 운영비를 부담 중이다. 급기야 노조를 중심으로 공영화 촉구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선 3기 이정문 시장 시절, 민자유치 사업으로 80만㎡ 규모의 ‘레포츠공원(가칭)’ 계획이 세워졌다. 하지만 민선 4기 서정석 시장이 취임하면서 면적 축소를 거듭하던 중 재정사업으로 전환, 결국 시간만 끌다가 보조경기장도 없는 주 경기장 하나만 달랑 남게 됐다. 반면, 백군기 시장은 취임 후 처인구의 알짜배기 땅인 마평동 일원 구 종합운동장을 평지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백 시장은 주민반발이 거세지자 경안천에 조성되었거나 계획 중인 수변공원까지 합쳐 ‘어울림파크’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 누가 봐도 종합운동장의 평지공원화를 합리화시키는 눈가림식 행정이다. 용인공용터미널 역시 주민들의 숙원사업으로 이전 신축을 요구해 왔지만, 시는 민자유치 기회는 원천봉쇄한 채 그 자리에 신축예정이다. 수지구의 경우 공원일몰제와 관련, 시 재정으로 빚까지 내서 수천억을 투입 예정이지만 처인구는 땜질식
[용인신문] 서호(처인구 남동)
[용인신문] 특별 객원작가 최승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