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공자의 유학이 종교가 될 수 없는 것은 정치에 너무 가까이 가서다. 유학 경전의 기본 교과서라는 논어, 맹자, 중용, 대학 어디를 펼쳐봐도 정치를 비껴가기는 쉽지 않다. 공자는 평생을 정치와 정치 언저리에서 살다간 인물이다. 노나라 정치가 혹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정치를 하지 않습니까?” 평생을 정치하고 잠깐 쉬고 있는 처지인데 혹자가 그새를 못 참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께서는 ‘상서 일문’의 말을 인용해 절묘하게 맞받아 말한다. “효를 하는 것과 형제간에 우애하는 것, 여기서 정치는 비롯되니 어찌 정치한다는 것 자체만을 따지겠는가?”. 쉽게 말해서 정치라는 것은 부모에게 효도하듯이 백성을 섬겨야 하는 거고, 형제간에 우애하듯이 백성을 아껴야하는 것이라는 말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이를 좀 더 쉽게 풀어쓰면 백성을 돌아보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 혜택을 주는 데까지를 일러 정치라는 말이다. 이를 두 글자로 압축해서 말하기를 ‘민생’이다. 민생은 그야말로 民이 산다는 말이다. 정치인들이 입을 열어 가장 많이 말하는 단어가 민생일 것이다. 그러나 민생정치라고 떠들어는 대는데 정작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없는 듯하다. 정치라는 것은 부자
[용인신문] 논어 자장편에 자공에 관한 이야기 몇 편이 있다. 내용은 대체로 자공이 스승 공자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게 세상의 평가이다. 그중 한 대목을 쉽게 풀어 쓴다면 이렇다. 하루는 진자금이 스승 자공에게 말한다. “선생님께서 공손하셔서 그렇지, 중니 따위가 어찌 선생님보다 낫겠습니까”. 그러자 자공이 정색을 하면서 말한다. “내가 공자 선생님보다 더 현자는 아니니라, 차라리 사다리를 놓고 하늘을 오르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자공은 위衛나라 사람으로 공문십철사과의 인물로 돈을 버는 것과 말하는 것으로는 신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이는 스승 공자께서도 인정하신 바이시다. 논어 선진편 11-18문장에서는 돈을 잘 벌었다고 기록한다. 공자의 말을 옮기면 이렇다. 자공은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장사를 했는데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자공의 돈버는 법은 폐거廢擧로 가격이 내려가면 잔뜩 사들이고, 물건이 귀하면 비싸게 내다 파는 방식이다. 공자께서는 돈 벌기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돈이라는 것이 내가 원한다고 벌어질 것 같으면야 나는 말 채찍을 잡는 천한 일도 하겠다. 그러나 그렇게 안되기 때문에 차라리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이다.” 스승
[용인신문] 논어 · 맹자 · 중용 · 대학을 일러 ‘사서’라 한다. 조선 시대 선비라면 누구를 무론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어야 하는 인생 교과서였다. 특히 이 중 대학은 말이 좋아 책이지 글자 수라야 천칠백 여자 남짓, 그럼에도 이 책이 주는 중량감은 실로 여타의 이론이 없다. 곧,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엄청난 문장이 있어서다. 풀어쓰면 이렇다. “몸을 닦고, 그다음에는 결혼하여 가정을 잘 이루고, 그런 다음에는 나라를 다스리고, 그런 다음에는 천하를 편하게 하라”는 게 그 골자다. 이 말은 남자의 인생을 압축해 놓은 거다. 남자 인생의 시작은 공부에서 시작되어 백성을 다스려 천하를 이롭게 하는 데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치국과 평천하에 뜻을 두고 공부하는 것은 남자로 태어난 자들의 숙명과 같은 거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천하에 뜻을 두고 공부하는 이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옛날 강호의 어느 싯구는 이렇다.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났거늘 공부를 이루지 못하면 살아서 고향 땅 밟지 않으리. 지금은 이런 결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사대보험 되는데 취직만 해도 인생 성공한 것으로 아는 시대가 됐다. 그만큼 짧고, 가벼운 세상이 된 것이다
[용인신문] 국정을 운영하거나 백성을 목민하거나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은 성장 과정이 깨끗해야 하고 평소의 생활이 흠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떤 일에 의혹의 여지를 남겨 둬서도 안 된다. 사흘이 멀다 하고 법원 문턱을 제 안방 들락이듯 하고, 하루 벽두부터 새로운 의혹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부덕의 소치 임에 틀림없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그런 의혹이 불거져 나온단 말인가. 나랏일을 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아내와 처가와 측근을 말하는 게 아닐 터, 곧 백성이다. 백성을 지킨다는 것은 압박감이 심한 일이 분명하다. 특히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더욱더 그렇다. 그래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곧고, 또 곧아야 한다. 일찍이 남송 때 학자 여본중의 문도였던 임지기는 ‘논맹강의’를 하면서 맹자의 말을 조금 쉽게 풀어 말한다. 태어날 때 받은 선한 바탕을 흐리지 않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 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그런 자리는 백성을 이끄는 자리이다. 그리하여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나라에 도가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이 무조건 백성을 위해 멸사봉공을 한다. 논어 위령공편에 이르길, “곧 도다.
[용인신문] 민주정치에서 중요한 덕목은 법을 어겼느냐, 어기지 않았느냐를 묻고 따지기 전에 그보다 더 앞서는 것이 국민의 눈높이에 얼마만큼 다가섰느냐일 것이다. 국민의 정서나 감정선을 넘어서는 것은 비록 그것이 칭찬일 찌라도 위태롭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야당 존재의 첫 번째 덕목은 선명성이다. 여기다가 개혁을 주장한다면 그야말로 주머니 털어 먼지 안 나게 살아야 한다. 옥중에 죽어갔던 어느 시인의 시구를 들지 않터라도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야 하는 게 특히 야당 정치인의 숙명이다. 집권 여당에서 몇억이 어떻고 저떻고 해도 그건 맘먹기에 따라서 하룻밤 뉴스거리도 안 될 수 있지만 야당에서 단돈 100원어치 떡볶이를 얻어먹었다 치자. 이건 다음 날 되면 100억이 되어 뉴스를 도배할 수 있는 휘발성을 갖는다. “기껏 떡볶이만 먹었겠어?” 하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 이건 돌이킬 수가 없는 거다. 사실 여부를 따지기 전에 이미 여론은 한방에 돌아선 거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다. 야당이란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삐끗했다 하면 그 한 사람의 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야당 전체가 도매금으로 풍비박산이 나지 않으
[용인신문] 공자께서 노나라 대부이자 권신인 계강자와 차담을 나누던 중에 위나라 영공이 무도하다고 말하니 계강자가 “그런 자가 나라를 잃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에 공자는 “외치인 외교의 일은 중숙어가 담당을 하고, 내치인 종묘사직의 일은 축타가 담당을 하고, 군대의 일은 왕손가가 담당을 하니까 나라를 잃을래야 잃을 수가 없다”라고 했다. 사실 위령공은 암군이고 혼군이 맞다. 하다못해 제 처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과거에 어떤 여자였는지도 모르는, 그런데 나라 안 백성들은 걱정 없이 편하게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가 재임한 기간이 장장 42년이나 된다. 백성들은 그가 40년 동안 왕 노릇을 해 먹든 말든 관심도 없다. 왜냐면 지금도 충분히 잘 먹고 잘살고 있으니까. 이게 위나라 영공의 이해 불가한 단면이다. 분명히 머저리가 맞는 거 같은데 나라 안 백성들은 잘 먹고 잘살기 때문이다. 설원 8권 존현편에 내용을 여타의 전적과 연의해서 풀어쓴다면 이렇다. 노나라 군주 애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오늘날 군주 중에 누가 현자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말한다. “위나라 영공이 현자입니다.” 어째서 현자냐고 물으니 “사람을 쓰는데 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