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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년 전 ‘다뉴세문경’의 비밀을 풀다

용인의 문화예술인 14. 이완규 주성장

 

 

 

청동기 유물 실체의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
전통방식 활석 거푸집 사용… 완벽 재현 성공
국내 고고학계 외면 속 일본 등 세계적 관심

 

[용인신문] 2400년 전 우리나라 고대인들이 만들어낸 불가사의한 비밀의 결정체 다뉴세문경. 국보 제 141호인 다뉴세문경의 오랜 미스터리가 풀린 지 13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오랜 비밀이 풀렸을 때 국내 고고학계의 반응은 냉담했고 그 기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민족의 우수한 역사와 문화의 실체를 만 천하에 드러낸 대 사건이었건만 다 같이 기뻐해도 모자를 결과에 이견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여전히 학계와 외로운 싸움을 벌이면서 청동기 유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인 이완규 주성장을 만났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7호인 그는 오로지 장인의 입장에서 청동기 시대 장인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청동기시대 장인의 입장에서 청동기 유물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고 있다.

 

이완규 주성장은 다뉴세문경 거푸집을 전통방식 그대로 활석으로 만들었다. 그의 실증적 재현은  모래와 점토 재질로 거푸집이 이뤄졌다는 기존 학설을 뒤엎고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완규 주성장은 오히려 고고학계가 추정만으로 실증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이완규 주성장은 다뉴세문경의 비밀을 풀어낸 장인으로 2018년 국제학술지에 이름이 올랐다.

 

우리나라 고고학계가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고고학자들마저 이완규를 연신 찾아와 청동기 문화를 배우고 간다.

 

이완규 주성장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흥분하게 하고 잠을 설치게 한 다뉴세문경의 실체.

 

다뉴세문경이 놀라운 것은 테두리 3cm를 뺀 지름 18.2 센티미터의 원 안에 삼각형과 사각형, 동심원(중심이 같은 여러개의 원이 겹쳐 있는 모양)을 활용한 정교한 선이 0.3mm 간격으로 1만3000여개가 새겨 넣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재현에 도전했던 우리나라 카이스트 박사들조차 두 손 들고 포기했다. 거푸집이 문제가 아니었다. 박사들은 슈퍼컴퓨터로도 동심원을 그리지 못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기하학적 무늬를 재현하는 것은 도저히 풀 수 없는 고대의 수수께끼였다.

 

하이테크 첨단 과학조차도 밝힐 수 없던 청동기문명의 최고 절정 다뉴세문경.

 

우리나라보다 앞서 다뉴세문경이 발견됐던 일본 역시도 오랜 세월 재현 실패만 거듭 했다. 결국 세계학술지에 다뉴세문경은 재현 불가능한 고대 유물로 게재됐다. 그러나 지난 2007년에 이완규 주성장이 전통의 방법과 기술로 완벽한 원형 복원에 성공했다.

 

이 주성장은 당시 1년여의 피나는 노력끝에 다뉴세문경의 핵심 기술인 동심원 치구를 주물 제작함으로써 재현에 성공,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인 2008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러나 세상이 깜짝 놀랄 성공을 거뒀음에도 우리나라 고고학계에서는 이론적 토대가 없는 일개 장인이 만든 것으로 치부해 오늘날까지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그런 와중에서도 세계학술지에 게재될 수 있던 것은 우리나라의 학자 가운데서도 이완규 주성장을 인정하는 일부 학자가 세계학술지 발표회에서 이완규가 재현할 수 있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 후 일본의 많은 학자들은 모현면에 위치한 이완규 주성장의 공방을 찾아오고 있다.

 

일본 학자들은 이완규 주성장에게 꼼꼼하게 묻고 기록하고 장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가져간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찍을 때마다 이 주성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해 고대 비밀을 풀어낸 장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 고고학계는 여전히 다뉴세문경을 재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현대적 기법으로 재현 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의 방식인데도 말이죠. 아마 일본식 교육 때문일 거에요. 일본 잣대로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재는 것이죠.”

 

이완규 주성장의 재현 기법은 다뉴세문경을 조각한 활석 거푸집에 그을음을 입혀 완성하는 방식으로 전통 방식이다. 특히 활석에 그을음을 입히면 코팅 효과가 있어 무수한 무늬가 깨끗하게 살아난다.

 

“1982년에 KBS 청동검 재현 촬영 때문에 청동검이 전시된 숭실대학교박물관을 찾아가 실물을 봤어요. 청동검 옆에 거푸집이 있는 것을 보았죠. 다뉴세문경도 그때 처음 보았어요. 박물관의 허락 하에 거푸집을 꺼내봤는데 거푸집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표면이 미끌미끌하고 조직이 치밀한 게 활석이었어요. 거푸집에 까맣게 그을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영문은 몰랐지만 거푸집에 그을음을 입힌 것으로 보였어요.”

 

당시 그는 곧바로 활석을 구해 음각으로 청동 거푸집을 조각했다. 그리고 그을음을 입혀 쇳물을 부어보았다. 완성된 청동검은 전율을 느낄 정도로 완벽했다. 칼날을 갈지 않고도 종이를 벨 정도로 날이 서 있었다. 거푸집이 튼튼해 몇 번씩이라도 칼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청동기 장인들의 하이테크 기술력을 자랑할 수 있는 전통적 제작 기법이 아닐 수 없다.

 

"고정관념을 깨야만 제대로 된 청동기 유물을 재현해 낼 수 있습니다." 돌에 쇳물을 부으면 가스가 빠져나오지 못해 폭발한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그러나 활석에 조각을 한 뒤 다뉴세문경과 청동검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청동 주물을 해보지 않은 학자들은 도저히 이해 안되는 부분이다. 실제 그후 청동도끼 활석 거푸집 뒷면에서 세문경 거푸집을 만들다 실패한 흔적이 발굴됐다.

 

“나는 우리 조상들의 청동 유물을 재현하면서 우리 민족이 당시 최고의 청동 문화를 창조해 냈다고 확신해요. 청동유물은 채광 기술과 합금 기술, 주조 기술, 문양 조각 등 어느것 하나라도 빠지거나 모자라면 만들 수 없어요. 당시 청동유물 제작은 최고의 하이테크였습니다. 다뉴세문경은 최근까지도 그 비밀을 알지 못했을 정도로 신비함을 지닌 최고의 문화재입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