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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은 ‘너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엄마들은 너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옆집 아이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아침 신문을 가지러 현관문을 열면 언제나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던 아이였다. 처음에는 방학이라서 늦잠을 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작년 여름 방학 때는 학교 등교시간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서는 그 아이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슬쩍 말을 걸었다. 방학인데 아침 일찍 어딜 가냐고 물었다. 아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학원을 간다고 했다. 방학 특강이 과목마다 있어서 하루 종일 밥 먹을 시간도 없다고 했다. 방학이 방학이 아닌 것이었다. 말하고 싶지 않은 하루 일과를 괜히 물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아이는 우울해보였다. 그런 아이가 겨울 방학이 한창일 요즘 보이지 않았다. 혹시 엄마가 아이를 생각해서 학원을 줄였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아이의 표정을 보니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던 딸아이의 공개 수업을 간 적이 있다. 교실 뒤에는 벌써 엄마들이 한 줄로 포진해 있었다. 엄마들의 관심이 이 정도일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딸아이의 자리를 확인한 후에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지켜보았다. 수업은 시작되었고, 선생님은 준비한 질문을 아이들에게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선생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들었다. 너무 열심히 수업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 분위기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손을 들기로 약속했던 아이들이 귀찮았는지 막상 실전에서는 손을 들지 않은 것이다. 선생님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손을 드는 학생 한 명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학생만 계속 시키는 것이 무안했는지 간절한 눈빛으로 다른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딸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은 구세주를 만난 듯한 표정으로 딸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딸아이는 답을 틀렸다. 딸아이는 애초에 손을 들기로 계획된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틀린 답을 들은 선생님의 표정은 너무 밝아서 참 묘한 수업이었다. 나는 열심히 손을 드는 남학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저 학생은 너무 혼자 손을 드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우아한 표정으로 서있던 한 엄마가 미소를 띠며 제 아들이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무안했지만 그 엄마의 표정을 보니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 듯했다. 그 엄마의 표정이 너무나 뿌듯한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딸에게 그 아이는 왜 그렇게 혼자 열심히 손을 들고 대답하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딸아이는 작년 공개 수업 때 손 안 들었다고 엄마한테 엄청 혼났대, 그러니까 오늘은 작정하고 자기 엄마 보란 듯이 열심히 손을 든거지

 

나는 말을 돌리며 그건 그렇고 너는 왜 답도 모르면서 손을 드니라고 딸아이를 타박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내가 손을 든거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자랑스러워하는 딸의 표정을 보면서 기가 막혔다. 그 남학생의 엄마는 공부 잘하는 아들 덕분에 학교에서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엄마의 표정은 늘 밝았다. 하지만 가끔 길에서 만나는 그 남학생의 표정은 늘 어두웠다. 생각해보니 그 남학생보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고 답도 모르면서 선생님을 위해 손을 드는 내 딸아이의 표정은 그 남학생보다는 밝다. 대신 내 표정은 그 엄마보다 밝지 못하다.

 

방학을 잃어버리고 사는 아이들이 많다. 방학은 학교 다니느라 고생한 아이들이 그나마 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학원은 방학을 놓치면 큰일 난다는 위기의식을 조장하며 학교 등교시간보다 더 빠른 이른 아침부터 특강 시간표를 부모들에게 제시한다. 우리 아이만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엄마들은 방학에 학원 몇 개를 더 다니게 한다. 아이들에게 방학은 결코 즐거운 방학이 아닌 것이다.

 

옆집 아이는 학교 개학과 함께 돌아왔다. 어디를 다녀왔냐고 물으니 기숙학원을 다녀왔다고 한다. 세상과 단절된 채 공부만 하다 왔다고 했다.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너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데 자녀들은 그 말이 엄마를 위해서라고 들릴지도 모른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다르게 해석되는 부모와 자녀의 대화를 들으면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면 될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녀와 대화할 시간이 없다고 속상해하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사춘기 탓이라고 합리화하면서 부모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문제다. 자녀의 사춘기를 이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은 사랑과 관심이다. 그런데 그 약에 성적이라는 성분이 들어가면 약효가 없다.

 

그래서 자녀의 사춘기가 불치병이 되는 것이다그림=김미진(기흥고1학년)  사진=용인신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