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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핀 사랑 이야기

이상엽의 사진 창작 노트 3

 

사막에서 핀 사랑 이야기

 

 

쿠차는 카라부란(흑폭풍)으로 어두워지고 거리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모래바람에 갇혔다. 신호등이 고장났는지 차들은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대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건물로 피신한다. 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으며 인간이 자연 앞에 무력한 풍경 속에서 쾌재를 부르며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도시 쿠차는 북쪽으로 천산의 황토고원을 남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두고 있다. 두 곳의 모래먼지가 만나 거대한 폭풍을 만들면 이름도 으스스한 흑폭풍인 카라부란을 만든다. 흔히 생각하는 봄철 황사를 100배쯤 강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나던 기차도 전복하고 사람도 날라 간다.

 

이 같은 불가항력의 풍경을 만나면 사진가는 흥분한다. 세로토닌이 평소 몇 배는 분비된다. 이 폭풍이 사진가에게는 프로작(항우울제)이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들고 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몸을 가누기가 힘들다. 거리를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는 내게 지나던 사람들이 미쳤다는 표정을 짓는다. 슬슬 눈을 뜨기 힘들고 입에서는 서걱서걱 모래가 씹힌다. !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카메라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자동 초점이 느려지더니 멈췄다. 모래가 들어가서 작동을 멈춘 듯하다. 이런! 조금 있으니 카메라의 노출장치가 춤을 춘다. 이번에는 센서가 문제다.

 

결국 이 폭풍 속에서 내 전자식 카메라는 장렬히 사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준비해온 것이 있다. 전자장치라고는 전혀 달고 있지 않은 50년대 완전 수동식 카메라. 사막에서도, 남극에서도, 에베레스트에서도 작동되는 그런 카메라다. 이놈을 들고 돌아다니다가 폭풍에 갇힌 두 남녀를 봤다. 연인은 꼭 끌어안고 비장한 로맨스를 연출하고 있다. 이 인물들을 거친 풍경 속에서 어찌 표현할까를 순간 고민한다. 마침 먼 곳에서 힘겹게 자전거를 끌고 오는 아줌마도 보인다. 이제 내 카메라 프래임 안에 이 요소들이 완전한 조화를 이룰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떤 요소도 사라져서는 안된다. 이윽고 셔터를 누른다. 내가 원하는 풍경 속 인물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이 한 장을 위해 카메라 한 대를 고장 낸 셈 이다. 하지만 사진은 내게 충분히 보상한다.

 

흔히 인물사진이라는 것은 사진의 주요 피사체가 사람인 사진이다. 주변의 배경이 없이 오직 사람만을 찍는다면 포트레이트(초상사진)에 가깝다. 이 사진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자. 풍경 속에 인물이 있는 사진을 얻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카메라를 메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특별한 장면을 작가의 의도대로 파인더 안 프레임에 결정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예로 결정적인 순간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을 들 수 있다. 그는 35mm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재빠르게 사물이 어떤 조화의 정점을 이룰 때 그것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사진은 비 연출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구도와 인물의 포즈를 포착함으로서 당대 사진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세기 초만 해도 35mm 소형카메라 보다는 4x5inch 이상의 대형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충분한 여유와 연출된 피사체를 찍던 것이 관행이었으니 카르티에-브레송의 순간적인 포착은 경이로울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자동노출과 자동초점으로 무장한 디지털 카메라는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찍을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찍을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거리로 나가 인물과 풍경이 어우러진 좋은 사진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로 사물을 충분히 관찰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지나가다 괜찮다 싶어 한 장 누른 사진은 별 볼 일 없다. 그 장면이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면 다시 한 번 관찰하며 어떻게 찍어야 완전한 작품을 얻을까 고민해야 한다. 나는 영하 30도의 단둥에서 그런 사진을 얻기 위해 30분을 한자리에서 기다린 적도 있다.

 

둘째, 자신이 찍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예를 갖춰라. 거리에서 몰래 찍은 사진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사진가 스스로를 불편하게 한다. 상대방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악의가 없음을 표시하고, 그의 행동과 표정이 풀어질 때까지 기다려라. 그리고 상대방이 찍힌 대가를 원한다면(예를 들어 그곳이 인도라면) 관습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지불하라. 그래야 페어한 것이다.

 

셋째, 다가가라. 찍고자 하는 대상에 접근할수록 사진은 점점 좋아진다. 로버트 카파가 한 명언은 여러 번 이야기해도 지겹지 않다. “너의 사진이 충분히 좋아 보이지 않는다면, 너는 충분히 다가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