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의 사진 창작 노트2
‘아우라’를 아십니까?
-미술관과 다큐멘터리 사진
한국사회에서 미술관이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공공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었으며, 사립 미술관의 존재도 미미했다. 이것이 최근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일반의 소득의 증대와 여가, 문화적 욕구의 증가 탓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경쟁적인 건축 붐은 이러한 요구와 맞물려 전국에 문예회관 또는 아트센터라는 이름의 건축을 만들었다. 이 거대한 시설 안에는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전시 공간이 만들어졌으며, 유화와 사진의 다양한 기획전이 아이들 방학 중에 경쟁적으로 열렸다. 이는 대중들의 호기심과 관람료 수입을 동시에 충족시키기도 했다. 외형적으로 본다면 미술관과 사진은 최근 들어 매우 만족스런 파트너십을 유지한 듯 보인다.
기원을 따지자면 19세기 내내 사진은 미술관에서 예술이 아닌 예술의 복제 도구로 활용된다. 따라서 사진가들은 예술 작품이라 주장하는 사진을 작은 갤러리나 사교클럽의 전시장을 이용해 전시했다. 이 사진들의 대부분은 살롱 풍의 회화주의 사진들이었다. 대신 사진을 수집하는 곳은 미술관이 아닌 기록보관소나 도서관이었다. 20세기 초반, 사진은 비로소 독자적인 예술의 장르로 분리되며 고유한 매체적인 특성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앗제, 독일의 잔더, 미국의 스티글리츠 등에 의해 현대적 사진의 특성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들의 사진은 비평가들에 의해 새로운 대안적 예술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대표적으로 발터 베냐민은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이라는 소논문을 통해 사진은 오직 한 점만이 존재하는 예술품의 아우라를 걷어낸 현대적 예술이라고 평했다. 특히 베냐민은 미술관을 고대 신전의 제의적인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권위주의적인 계급의 공간이자 반민주적인 이상향의 실존적 존재로 이해했다. 그 예가 베를린에 세워질 나치의 제국미술관이었다. 그는 무한정 기계 복제가 되는 사진이야 말로 예술품의 아우라를 벗겨내고 민주적인 기능을 확대시킬 예술이며, 미술관을 벗어나 인쇄와 포스터 등을 통해 대중적인 공간으로 확장할 것으로 봤다. 실제 이때까지 사진은 신문과 잡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성장했으며 프로파간다를 통한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권력을 행사한다. 대중의 99%는 예술을 사진으로 접했으며 1% 정도만이 미술관을 통해 오리지널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사진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진다. 뉴욕에 세워진 현대미술관은 유럽 미술관과 달리 역사적 맥락이나 여러 형식과 구분해 벽면에 독립적으로 작품을 설치하는 유미주의적 전시를 시도하면서 일대 미술관의 변화를 주도한다. 또한 유럽에 비해 세계적인 예술가가 희소했던 당시 미국의 입장에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미국작가와 양식을 소개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사진도 이 때 그러한 현대미술관의 수혜자가 된다. 대표적으로 에드워드 웨스턴과 워커 에반스이다. 이들은 당대 스트레이트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의 대표적인 인물이었고, 사진이라는 장르를 대표하는 미국 사진가들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후 사진은 미술관에 안착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전후의 대표적인 사진가 그룹인 매그넘의 예를 살펴봐도 그들의 활동무대는 종이 인쇄 매체들이었다. 정작 미술관에 사진이라는 매체를 집어넣은 것은 포스트모던 한 미술가들이었다. 즉 회화나 조각대신 사진을 활용한 것이다. 서구 미술관이 사진을 본격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90년대 이후 상황을 보더라도 개념미술에서 파생한 사진작품이나 이제는 클래식이 되어 오리지널 프린트가 희귀한 빈티지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한국적인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다. 사진가들이 미술관의 문턱을 넘은 것도 최근의 일이며, 수많은 사진 기획전과 개인전이 미술관에서 열려도 수집, 보존보다는 미술관 관계자들의 기획력과 시민 개방성에 대한 평가, 관객 입장료에 더 관심을 보이는 신자유주의적 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나마 작품 수집에서도 가장 비중이 작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경우, 예를 들면 미술은행 등을 통해 수집을 하더라도 사진의 에디션 넘버를 문서상으로 강요함으로써 다큐멘터리 사진 고유의 본질인 복제 확장성을 가로막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약 10여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대중 인쇄 매체의 폐쇄성(다큐 사진가의 작품을 게제하는 것을 회피하는) 경향과 갤러리나 미술관으로 진입하려는 작가들이 매체에 무상으로 사진 이미지를 대여함으로써 전업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에 종사하는 이들의 존립을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모든 다큐멘터리 사진의 목적이 미술관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갖고 있는 기록의 공공성과 복제성은 예술을 포함할 수 있지만 전자를 제거하고 예술만이 남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