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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삶의 낙서

 

봄날은 간다

 

뜻한 봄이 오면 눈 딱 감고 여행 한번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년을 목표로 작은 적금통장을 만들었습니다. 이 돈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쓰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평소 배우고 싶었던 뭔가를 공부해볼까? ‘마음이 맞는 친구들이랑 멀지않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올까?’, ‘아니면 용기내서 혼자 한번 여행을 가볼까? 혹시 우연히 여행지에서 첫사랑을 만나지 않을까…….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이 내게도 생기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그럼 우선 꼭 사고 싶었던 옷 한 벌을 살까? 아니 옷을 살려면 우선 살부터 빼야하니까 그 돈으로 한 달 동안 헬스를 하고 살을 뺀 다음 옷을 사고 여행을 가면 되겠다. 이렇게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시작된 거창한 적금이 이제 딱 한 달 남았습니다. 한번만 더 넣으면 드디어 꽉 찬 통장이 내 손에 쥐어질 것입니다. 꿈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지금 너무 소박해져버린 내 꿈이 초라했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큰 꿈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이루기 쉬운 작은 꿈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를 위해서 오롯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저절로 생겼습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이 꿈이 되기도 하고 직업이 꿈이 되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이 꿈이 되기도 합니다. “꿈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 대답할까요? 지금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뭐라고 대답했나요? 사실 그렇긴 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보면 대부분 직업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처럼 되고 싶다라는 말 속에는 그 사람의 성품보다는 직업에 더 큰 비중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꿈은 그렇게 좁은 의미의 단어가 아닙니다. 당장 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꿈이 되기도 하고 아주 먼 미래의 계획도 꿈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꿈을 이루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꿈을 이루면 또 다른 꿈이 생깁니다. 더 큰 꿈을 꾸기도 하고 소박한 꿈을 꾸기도 합니다. 큰 꿈을 이루었다고 해서 행복의 크기가 반드시 큰 것도 아닙니다. 소박한 꿈에서 오는 행복도 크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꿈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가져야 합니다. 취업이 꿈이었다고 꿈을 멈출까요? 그렇다면 엄마가 되었다고 꿈이 없을까요?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꿈이었다면 결혼한 후에 더 이상 꿈꾸지 않을까요?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는 꿈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꿈의 모양도 참 다양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떻게 보면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꿈꾸는 여행이 소박한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소박한 꿈 때문에 느꼈던 행복의 크기가 결코 작지만은 않았습니다. 화장대 서랍에 소중히 넣어둔 꽉 찬 적금 통장은 서랍을 열 때마다 행복을 주었습니다. 고등학생 딸아이의 시험이 끝나면 꿈 하나를 이루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입니다. 딸아이의 시험이 끝나면 한 달 동안 열심히 운동을 하고 평소 눈여겨 봐뒀던 멋진 옷을 사러 갈 것입니다. 드라마 같은 여행을 꿈꾸며 컴퓨터로 키보드를 행복하게 두드리고 있는데 벨이 울렸습니다. 시험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가 치아가 욱신거린다면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시험공부가 힘들 정도로 볼을 부여잡고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가까운 동네 치과로 딸을 데리고 갔습니다. 충치가 진행되어 치통을 유발한 것이었습니다. 당장 시험공부에 지장을 줄 것 같아 치료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충치 치료가 끝나면 금을 씌어서 치아를 보호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의료보험이 되지 않는 치과 치료라서 치료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치아 세 개만 치료했는데도 말입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지출 금액에 고민하다가 적금 통장이 떠올랐습니다. 떠올리기 싫었지만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딸아이의 시험이 끝나면 이루려던 내 꿈은 딸아이의 시험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돌아보니 어느새 나는 내 꿈이 사라지는 아쉬움보다는 딸아이의 고통이 더 참기 힘든 엄마가 되어있었습니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은 먼저 사버렸던 여자보다는 초과되는 생활비를 걱정하는 주부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내가 꿈꾸었던 드라마 같은 여행보다는 딸아이의 치통을 치료하는 것이 더 중요한 엄마니까. 지금은 엄마도 아내도 내 삶의 중요한 역할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애써 위로했습니다.

 

렇게 봄날은 갔습니다.

그렇지만 또 봄은 올 것입니다. 꿈이 깨어졌다고 해서 꿈을 멈추면 안 됩니다. 꿈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어쩌면 그것은 꿈이 아닐 수도 있지요. 계획했던 꿈이 이루어지는 경우보다는 깨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니까요어쩌면 더 슬픈 일은 꿈이 깨졌을 때의 상실감 때문에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두려움과 상실감은 우리 삶을 행복과 점점 멀어지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통장을 만들었습니다. 내년 봄이면 꿈은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내년 봄에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꿈꾸며 화장대 서랍에 새 통장을 소중히 넣어두었습니다.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 내 삶의 행복은 그렇게 또 일년 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박소현 프로필

부산 출생으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EBS 교육방송에서 딩동댕 유치원’ ‘전통문화 속으로’ ‘자연과 과학’ ‘역사 속으로의 여행’ ‘다큐 프라임등의 다양한 교양 다큐 프로그램을 집필했다. MTN 머니투데이 방송에서는 기획특집 오아시스 특강 1,2를 집필하기도 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청소년 드라마를 꼭 쓰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틈틈이 중고생에게 논술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삶을 듣는 것도 중요한 일상이 됐다. 현재 기흥구 마북동 연원마을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