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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과 고엽제로 이상한 숲이 된 철원 평야에서 고라니 한 마리를 발견했다 |
철원 DMZ, 초여름 풍경
민통선과 DMZ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기쁘기도 한 동시에 당혹스런 일이기도 하다. 금단의 땅으로 당당히 들어간다는 것은 약간의 우쭐함을 동반한 기쁨이지만 곧 그 평범하고 조금은 뻔해 보이는 풍경을 맞닥뜨리는 순간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그곳에 특별한 것이 존재하리라 믿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곧 전쟁 후 60년 동안 방치된 황폐한 풍경일 뿐이라는 매우 사실적인 현실 앞에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도대체 이곳은 전쟁과 평화 사이의 어디쯤일까? 새벽녘 어스름 속 철조망 건너 흘러가는 물줄기도, 안개로 뒤덮인 울창한 숲과 드넓게 펼쳐진 논밭도 우리에게 ‘전쟁’과 ‘평화’ 사이에 어디쯤 위치했는지 말해주진 못했다. 긴장으로 채워진 일상의 반복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쉽게 포장되지만, 우리는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이어진 155마일의 철조망 사이에서 긴장이라는 새살을 끊임없이 요구하게 된다.
나는 300mm 망원렌즈에 ‘2곱하기’ 컨버터를 끼우고 분단의 풍경을 접수하러 다녔다. 하지만 병풍처럼 늘어선 산줄기의 아름다움도,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깊은 계곡도, 고라니와 백로가 함께 물을 마시던 그 에덴동산 같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가지 못해, 억지로 움켜쥐기라도 하듯 망원렌즈로 당겨보지만, 피사체는 커지기만 할 뿐 그 곳으로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 풍경에 가슴이 시렸다. 그리하여 이 땅을 사랑하기로 다시 결심했다. 이곳의 사람, 동물, 풀 한포기 마저도 의미 없는 것은 없었기에, 이것을 기록하고 누군가에게는 보여주어야 하는 사진이기에 그랬다. 먼 훗날, 이 땅이 평화로울 때. 우리의 빛마저 ‘긴장’ 되었던 때를 떠올릴 교훈의 도구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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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방한계선 GOP에서 바라 본 철원평야. 이곳에는 신라말 궁예의 도성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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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한 곳이다. 어떻게 사람의 손길이 닫지 않았는데 이런 모양이 됐을까? DMZ는 이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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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을 관통하는 3번국도. 누군가 계속 관리한 듯한 모양새이다. 그런데 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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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은 철새들의 낙원이다. 이들에게 경계선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
이상엽/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