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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62 |술빵 냄새의 시간|김은주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62


술빵 냄새의 시간

김은주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에 어떤 걸 제일 좋아해?**
떼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떼
젖꽃판 같이 달아오른 맨홀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
나는 보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후끈 달아오르고 싶었으나 바리케이드,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
곧게 편 허리며 잎겨드랑이며 빈틈이 없어
부러 해 놓은 설치처럼 신비로운 군락을 이룬
이 한통속들아
한낮의 햇빛을 모조리 토해내는
비릿하고 능란한 술빵 냄새의 시간
끄억 끄억 배고플 때 나는 입 냄새를 닮은
술빵의 내부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


*1991년에 발표된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
** ‘추억은 방울방울’에 나오는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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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실업수당을 받으러 가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처지와는 무관하게 도시의 빌딩은 울울창창하고요. 방울나무들도 묵묵히 서 있을 뿐입니다. 방울나무를 보니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고요. 언젠가 당신에게 전했을 질문 하나.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 어떤 걸 제일 좋아해?” 그날의 대답이 기억날 듯 나지 않을 듯 아득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바리케이트 속에서 살아가고 있네요. 누가, 왜 이렇게 많은 바리케이트를 쳐놓았을까요. 그렇게 볼 때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가 됩니다. 그 사이로 “비릿하고 능란한 술빵 냄새의 시간”이 피어오릅니다. 우리는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하는 존재들. 그러나 아직은 떠오르지 못한 존재들. 암울한 세계에 대한 사회적 예언들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가는 자신의 예언이 맞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지요. 예언이어, 우리를 미래를 배반하라!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