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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53 |나비를 읽는 법 |박지웅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53


나비를 읽는 법

박지웅


나비는 꽃이 쓴 글씨
꽃이 꽃에게 보내는 쪽지
나풀나풀 떨어지는 듯 떠오르는
아슬한 탈선의 필적
저 활자는 단 한 줄인데
나는 번번이 놓쳐버려
처음부터 읽고 다시 읽고
나비를 정독하다, 문득
문법 밖에서 율동하는 필체
나비는 아름다운 비문임을 깨닫는다
울퉁불퉁하게 때로는 결 없이
다듬다가 공중에서 지워지는 글씨
나비를 천천히 펴서 읽고 접을 때
수줍게 돋는 푸른 동사들
나비는 꽃이 읽는 글씨
육필의 경치를 기웃거릴 때
바람이 훔쳐가는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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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 나비와 꽃 가까이에 머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시인이 시를 쓰듯, 꽃은 ‘나비’라는 활자를 통해 어떤 전언을 보내고 싶은 걸까요. 구구절절이 아니라, “저 활자는 단 한 줄”이랍니다. 그러니 “번번이 놓쳐버려/ 처음부터 읽고 다시 읽고/ 나비를 정독하”는 일이 무리는 아니겠지요. 정독의 정독을 거듭하다 깨닫습니다. “문득/ 문법 밖에서 율동하는 필체” 즉 “나비는 아름다운 비문임을” 말이지요. 어쩌면 세상 모든 편지는 비문들로 가득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네요.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가까워지는 환상처럼, 또박또박 떨어지지 않는 마음들로 가득한 비문의 편지. 그보다 더 아스라한 것은 “울퉁불퉁하게 때로는 결 없이/ 다듬다가 공중에서 지워지는 글씨”이겠지요. 봄날, “나비를 천천히 펴서 읽고 접을 때” 우리는 오래 간직하고 있는 편지 한 장을 떠올리게 됩니다. 봄날은 간다, 라는 말에 힘입어 끝내 가고 마는 절기처럼. 세월이거나 혹은 “바람이 훔쳐가는 글씨”에 붙들려 가는 한 시절.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l.net